도서관에 갔다가 김숨 작가님 책을 세권 빌려왔다.
셋중 가장 얇은 책, <당신의 신>을 먼저 읽기로 했다. 부담없이 읽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볍게 읽지 못하는 소설이었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져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주변인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온갖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이혼이라면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시선으로 힘들어진다. 특히 여자에게는 상당히 가혹하다.

한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그 사람과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도 헤어지는 일이다. 소설 속에서도 목사와 결혼한 여자가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해도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 남편 한 사람만이 아닌 수천의 신도들과의 이별이라 어렵다고 했던 부분이 있다. 헤어짐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대학때 사귀던 선배와 헤어지고나서 후배 부친상에 갔었는데 나에게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냐고 한 선배가 말했다. 그날 이후 되도록이면 그쪽 세계에는 발길을 끊게 되고 정말 각별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었다.

헤어지는 당사자의 문제를 타인은 잘 알지 못한다. 어지간하면 참을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너무도 쉽게 말한다. 자신이 참고 산다고 남들도 참고 살 수는 없는 속깊은 이야기가 부부 사이에는 특히 더 있다.

이 소설 속에서 남편의 폭력 속에서 평생을 산 엄마의 이혼을 도우려던 딸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정에서 절대신처럼 굴림한다. 아버지로부터 두번이나 도망쳤던 엄마의 가출은 두번 다 실패하고, 끝내 남편을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삶인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남자는 어느 날 자신도 폭력 남편이 되어 있다. 사회에서는 반듯하고 젠틀한 모습의 그가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폭력의 대물림이 이웃집에서도 자행된다. 매일 비슷한 시각 환풍구를 통해 들려오는 학대의 소리, 그 소리에 진저리가 나지만 소리를 차단 할 순 없다. 아이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못 듣게 될까 겁이난다는 그녀도 똑같이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때 폭력은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법보다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도 한다.
폭력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오고, 폭력에 압도되어 올바른 생각이나 행동을 잊게 한다.
맞지 않기 위해서 잽빠르게 순종을 선택한다. 더 맞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순종과 침묵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때 간혹 폭력적인 선생님들을 만난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하기 위해 수업을 진행하는 중간중간 폭력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존중할줄 모른다.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아이는 늘 어떤 아이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그 어떤 아이에게 자신도 늘 해를 입히지만 그건 정당하다고 합리화한다. 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변명과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한다.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린다는 식의 말부터 없애고 싶다. 대부분의 폭력행사자는 폭력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합당하다고 착각한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내가 아는 한 선배의 모습이 소설 속 석구선배의 모습인데, 결국 남자들은 남자들 편이다.

정희진님의 <아주 친밀한 폭력>을 읽으면서 경악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수라 놀랐고 사례도 다양해서 놀랐었다.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폭력의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하는 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고 가해자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타인들의 어설픈 해석때문이다.
당사자 간의 문제에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이별의 이유도 분명히 있을테고, 어지간하면 참지 말고 바로 바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엉킨실타래도 풀다보면 풀린다. 물론 가위로 잘라낸들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못 푼 실타래를 버린들 어떤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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