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돌아온 현수의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선생님이 현수 손가락의 물집을 직접 보여주시며 잘 살펴봐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어젯밤 아이들이 기침도 조금 했기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
요즘 골치 아픈 일들이 자꾸 생겨나 잠도 잘 못 잔 탓에 운전하고 나가기가 싫었고, 현준이 태권도 시간도 촉박하여 집 가까운 병원을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 병원이 신통치 않긴 하다.
예전에 현준이가 중이염을 앓았을때 그 병원에서 한달을 넘게 항생제를 먹었는데도 낫질 않다가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나서야 나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시기가 나을 시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뒤로 그 병원을 멀리하긴 했는데 얼마전 가벼운 기침때문에 갔을때는 그래도 괜찮았기에 다시 믿어본다는 마음으로 그 병원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현준이, 현수는 기관지염이 심하다고 하고, 나는 가볍다고 했다. 물론 며칠 전까진 심했는데 오늘은 기침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같이 간 김에 진찰을 받았는데 결과가 그렇단다.
여하튼, 현수의 손가락의 물집은 대수롭지 않은 물집이며 나중에 터뜨려버리면 된다며 다음에 더 커지면 자기가 터뜨려주겠단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 진료비 계산하고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내려왔다.
약국에 내려와서 약을 짓고 있는데 현수가 등이 엄청 가렵다며 박박 긁고, 내게도 긁어달란다.
그래서 아이 등을 긁어주려고 손을 넣었는데 아이 몸이 뜨겁고 등에 무언가가 생겼다.
얼른 옷을 들추고 봤는데 아무 것도 아닌게 아닌 것 같았다.
아이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올라가서 보여주었는데 의사는 연고 하나 처방해주겠단다.
너무도 태연스럽고 태평하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래서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벌레가 문 것도 같고, 경과를 지켜봐야 알 것 같다며 처방해주는 연고나 바르란다.
애 몸에 열도 나고 온 몸에 자잘하게 올라오고 있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며 이상하다고 했지만 그 의사 계속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왜 자기 말을 못 믿느냐는 표정을 하며 그냥 약이나 바르면 된다는 것이다.
순간 화가 났다. 이런 돌팔이 같은 XX
내가 볼땐 거의 수두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수두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처방전 취소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진료비는 환불할 수 없단다. 이미 진료는 받지 않았냐고 한다. 제대로 진단도 못하면서 뻔뻔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평소 다니던 소아과로 갔다. 현준이 태권도장 보내놓고 차를 끌고 옆동네에 있는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그 의사 대뜸 "어머니, 현수 수두에요." 하는 것이다.
수두란다. 수두가 분명하단다.
그래서 좀 전의 상황을 얘기했더니 그 선생님 더 황당해하신다.
일주일동안 유치원 보내지 말고, 약 잘 먹이고 연고 잘 발라주란다.
현수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우선 깨끗하게 씻기고 온 몸 구석구석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 위에 가려움증을 방지하는 칼라민로션도 발라주었다.
약을 먹고 연고를 발라주고 났더니 온 몸에 땀이 흥건해지고 열이 먼저 내렸다.
아무리 조그만 시골 동네의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진료과목에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를 큼직막하게 적어놓고 진료를 하는데 수두를 몰라볼 수가 있나 싶다. 환자가 계속 의심스러워해도 무조건 아니라고 버티는데 정말 의사가 맞나 싶었다.
다시는 이 병원에 절대로 가지 않겠다.
이 동네에 이사와서 처음 피부과를 찾아 들어 간 적이 있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 현준이 몸에 물사마귀가 생겨서 떼어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라도 다시 생길 수 있으니 생기면 바로가서 떼어내라고 했었다.
이사를 와서 다시 생겨난 물사마귀를 떼어내려고 피부과에 갔는데
이 의사도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진료를 한다며 아이를 진료실 침대에 눕혔다.
그러더니 나더러 오라고해서는 아이를 잡으란다. 그러더니 대뜸 물사마귀를 떼어내는 것이다.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현준이는 현준이대로 엄청나게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이런 법이 어딨냐고 했더니
그 의사 하는 말이 괜찮단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란다.
원래, 원래, 원래,
현준이와 처음 갔던 병원에서는 물사마귀가 난 곳에 마취 크림을 바르고 30분후에 물사마귀를 떼어냈었다.
아이가 겁 먹지 않게 어르고 달래가며 떼어줬었다. 내게는 이게 원래다.
게다가 나중에야 보였는데 그 의사의 손톱 밑이 새까맸다. 심지어 니코틴에 절은 냄새까지, 최악의 의사였다.
그때 현준이에게 얼마나 많이 미안했었는지 모른다.
그 뒤론 절대 이상한 병원에 데려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내가 귀찮아하는 바람에 괜히 아이만 더 고생하게 되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제대로 처방을 받았다는 것일 거다.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의사같지 않은 의사가 있는 병원엔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