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추운 겨울 바람 싫어서 얼른 봄이 오라고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더운 여름 지나고 어느새 선선한 바람 부는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내일 모레가 추석이란다.
어릴때는 추석이 마냥 신나고 좋았다. 예쁜 옷 한벌에 새 신발 한켤레씩 사주셨기에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게다가 맛난 음식들이 가득했던 것도 사실이고, 담장 안 울타리 넘어로 대추나무에서 대추알도 따서 쓱쓱 문질러 입에 넣고 오물오물했던 기억도 난다. 그땐 아무 걱정이 없었던 것 같다. 언니 오빠 따라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일이었다. 갓 찌어낸 송편이 먹고 싶어 군침을 삼키던 기억도 안다. 콩, 녹두, 팥, 밤, 깨로 속을 만들었고, 어떤 소가 들은 송편을 골라 먹게 될까 기대도 많았다. 어릴땐 밤이 들은 떡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콩이 들은 떡이 제일 좋다. 자라면서 입맛도 바뀌었다.
점점 자라서 엄마 일손을 덜은 나이가 되어서는 함께 송편 빚는게 일이었고, 예쁜 송편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예쁜 딸 낳을 생각에 정성을 다해 떡을 빚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예쁘게 빚어지지 않았던 떡들을 생각하면 현수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결혼하고나서 맞이하는 명절은 솔직히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이 되었다. 크게 바쁜 일도 없고 힘든 일도 없지만 몇날 며칠 명절이라 들썩거리는 일이 귀찮다.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떡을 만들 필요도 없는데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챙김을 받았던 만큼 나도 누군가를 챙겨주어야할텐데 그것을 이리 귀찮아하니 좀 부끄럽긴 하다.
명절을 맞아 처음으로 시골에 내려간다. 같은 동네 살다가 귀향하신 시부모님이 작년까진 올라오셨었는데 이젠 올라오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니 별 도리가 없다. 그동안엔 서울에 있는 큰댁에서 차례를 지냈었는데 올해부터는 시부모님 계시는 영동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봄부터 집을 지으시겠다던 아버님은 아직 집을 짓지 않으셔서 지금 계신 집은 너무 불편하다. 나는 워낙 불편한 화장실도 잘 사용하니 상관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다. 매번 실외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실내에서 볼일을 봤는데, 그걸 치우는 일이 곤혹스럽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큰 일 본 것 치우는 일은 정말 싫다. 남편은 절대 치워주지도 않는다.ㅠ.ㅠ
어머님 냉장고 가득가득 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것들을 대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드실만큼 드시고 적당한 때가 되면 냉장고도 좀 비웠으면 좋겠지만 늘 가득 쌓아놓으시는데 가끔 잘못 건드리면 뒷감담이 어려울때도 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시댁 갈때마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온단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처음 귀향하시고 냉장고를 막 들여 놓으셨던 그때가 그립다.
오늘 오전부터 출발하자던 남편이 갑자기일이 생겨 일을 나갔다. 현수는 어린이집에 꼭 가고 싶다고 하고, 현준이는 어제 스케이트를 타고와서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단다. 지금 신나게 어지르며 노는 중이다. 오전 중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다고 했으니 나도 얼른 집정리하고 짐챙겨서 시골에 내려갈 준비를 해야겠다. 제발, 길이 밀리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ㅎㅎ 아니다. 길이 좀 막혀야 좋은 걸까? ㅎㅎ 아니다. 길이 밀리지 않고 편안하게 내려가고 싶다.
어제 오늘 비가 내린다. 추석에는 활짝 개인 가을의 쾌청한 날씨였으면 좋겠다. 아이들 모두 데리고 달님 보며 소원도 빌었으면 좋겠다. 옛날엔 무슨 소원을 빌었을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이번 추석엔 어떤 소원을 빌까? ㅎㅎ
귀향하시는 알라디너분들 모두 편안하게 내려가시길,
추석 차례 음식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시길.
모두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실 빌고 또 빌겠어요.^^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그럼, 저도 영동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 책 세권을 옷가방에 담아 가야겠어요. 할일이 많지 않을테고,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신나게 놀테니 말이에요. 남편도 당연 부모님이랑 즐겁게 놀겠죠. 그럼, 전 책이랑 놀아야겠어요. 책과 함께 추석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