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병사 - 어느 독일 병사의 2차 대전 회고록
기 사예르 지음, 서정태 엮음 / 루비박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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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 사예르 16살의 어린 병사는 독일 군복과 좋은 군화를 신는 것이 멋있어 보였고 일상에서의 변화를 꿈꾸었기에 독일군에 입대하게 된다.
대독일사단의 보병으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러시아 전선에 배치 받았던 그는 너무 어렸고 전쟁의 참혹함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저 동료들과 지내는 것이 좋았고 심한 불어 악센트로 독일군가를 배우는 것이 좋았던 그는 그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런 그는 전쟁이 본격화되고 러시아에 배치되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되고 환멸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러시아에서의 맹렬한 추위와 배고품에 지쳐가게 되었고 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고 버티어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적은 식량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저지르게 되었고 수많은 동료들이 진흙탕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도 더이상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살아있음에 안도하게 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다.
더 이상 대독일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공포와 추위를 이겨내야만 한다. 독일병사로서의 자긍심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에 어린 병사는 갈등하게 되고 전쟁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다.
희망을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회의와 전쟁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어린 병사는 영혼에 심한 상처를 입으며 성장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전쟁터에서도 할스와의 우정을 키워나갔던 기 사예르는 전쟁포로로 잡히게 되고 풀려나는 과정에서 더이상 친구들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영혼의 상처를 입은 전쟁터의 잊혀진 수많은 병사들은 전쟁이 끝난 후 현실에서 그 참혹했던 전쟁의 상처와 함께 동료들을 지워야만 했다. 

전쟁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쟁이 주는 아픔과 고통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잃게하는 가장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전쟁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들의 겪어야만 하는 참혹한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73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동안 얼마 전에 읽었던 조정래작가의 '오 하느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더이상 무의미해지던 그 전쟁터의 참혹한 현실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더이상 이러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세상을 모르기 때문일까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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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

1.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행복하고 즐겁다.

때론 실수를 하기도 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리기도 하는 행동도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나 하면서 이해를 하기도 이해를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어제 모임은 예상보다 즐거웠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

끈덕지고 질긴 사람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거의 취미생활이다시피 한 것 같은 모습에 더 기가 질린다.

나한테 관심 좀 꺼주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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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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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인간이 만든다.'
1만 2천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죽은 동료를 무덤에 고이 묻으며 뼈와 장식물을 놓아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화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어렵고 힘든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개척하면서 살아왔고, 그 힘든 시기를 신화를 만들어가며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를 접어 들면서 자연이 주는 놀라운 혜택과 공포스런 재해를 온 몸으로 받으면 살아왔어야 했다. 그러기에 하늘과 대지에 대한 신화가  이 시기에 많이 생성되었고 변덕스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신화를 통해서 배워나갔다.
초기 문명시대로 들어서면 인류는 새로운 변환기를 맞이하게 되고 세계 곳곳에서 4대 문명이 발생하게 된다. 더 이상 이들은 전 세대와는 다른 자신감에 차 있게 되었고,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게 된다. 신적인 존재와 더불어 사는 좀 더 대등해진 인간 상을 만들게 된다.
기축시대로 들어서면서 인류신앙의 발전에 중추된 시기였고 놀라운 사상들이 많이 발생한 시기였다. 그리스에서 발전된 로고스와 미토스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 시기였고, 동서양에서 많은 사상과 신화가 심화된 시기였다.
16세기를 걸쳐 19세기, 20세기를 걸치면서 새로운 문명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스에서 발전된 로고스가 서구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과학정신과 실용주의 정신 기반에서 발전된 서구사회에서는 신화가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원시시대부터 책임져왔던 신화를 멀리하게 된 인간들은 점차 정신적인 공황기 속으로 빠져들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정신병적인 불안감이 고조화 되고 있게 된다.
오늘날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신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게 게 된다. 
1억만  2천만년 전부터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되게끔 도와준 신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화를 낳게 되었다. 
작가는 현대의 소설에서 새로운 신화읽기가 시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의 깊게 읽쓰고 또 읽는다면, 소설은 신화 또는 여는 훌륭한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입문식의 일종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읽어 오는 내내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에 대해서 새삼 애정이 생겼다.
인간이 자신들의 힘들고 고달픈 수렵생활과 농경시대를 걸치면서 새로운 문명을 발생시키고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견디어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신화는 신적인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적인 잣대로만 보지말고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책임져왔고,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주었던 고마운 신화로 이해하고 재해석하면서 살아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서 니호프교수의 '사람의 역사'를 읽고 읽어서인지 더 흥미롭고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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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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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가 되어 있는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왜 그러한 표시가 쓰여져 있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첫 장면부터 미소를 짓는 범인이 잡히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 첫 장면부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는데, 반쯤 읽었을 때에는 어느 장면에서는 눈으로만 읽어지고 가슴으로는 읽어지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섬뜩하고 소름이 돋는 공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호러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도 아닌데, 작가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고 스멀스멀한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시체를 잔인하게 훼손하고 시간(시체를 강간)을 하는 범인, 대학생인 아들의 방을 샅샅이 뒤지는 어머니, 사건의 피해자가 사랑했던 퇴직형사의 시선을 오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몇년 전에 퇴직한 전직 형사 히구치는 아내의 간호사였고 자신을 사모하고 있었던 여인의 잔인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직접 범인을 검거하고자 마음을 먹고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 둘은 죽은 여인에게 죄책감어린 사연이 감추어져 있고 그래서 더 사건에 매달리게 되고 연쇄 살인사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1992년작으로 신본격 추리소설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며 '강렬하고 아름다운 트릭이 논리적인 추리로 허물어지는' 추리소설을 꿈꿔 왔던 신본격파 작가답게 그 결과는 매우 놀랍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마지막 장에서 경악할 것이라 장담한다.
아...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트릭에 완벽하게 속아왔구나를 느끼면서 추리소설의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이상심리, 현대 가정의 황폐화에 따른 문제점들과 함께 최강의 반전을 기대하시길 바라며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하기로 한다.
직접 읽고 느껴보시길 바란다.(단 가벼운 추리소설을 원하신다면 읽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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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 나는 원한다! 권력과 부 그리고 영원한 젊음을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5
필리스 A.티클 지음, 남경태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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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모든 욕망의 모체이며 개인과 국가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최대의 유혹이자 악의 근원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모든 종교마다 악의 근원을 '탐욕'으로 몰아세우고 있고 질타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 인간은 아무리 오랜 세월 투쟁하고 저항을 해와도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탐욕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그 이상을 갖고자 노력하고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은 인간이 저지르는 일곱가지 욕망 중에서도 가장 모태가 되고 있으며 최악이라고 하지만 그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자하는 의지가 없을 것이며 희망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긴장이 필요하다고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용기, 신념, 인내, 사랑, 희망, 분별, 정의의 선이 있다면 그것들의 분신인 자만, 시기, 화, 정욕, 게으름, 탐식, 탐욕의 균형추가 맞아야만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종교적인 죄악으로서의 탐욕, 근대의 이성적인 탐욕,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며 탐욕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탐욕은 종교적인 죄악으로 비난을 오랜 세월동안 받아오고 있고 전염성 강한 질병으로 불리우기도 하면서도 인간이 숨을 내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종교적인 시기에는 청빈을 종교적으로 인정하고 지향하였기에 탐욕은 죄의 근원이었고 벗어나야만 하는 악의 유혹이었다. 실질적으로 벗어나기는 힘이 들었다.
근대의 이성적인 탐욕 시기에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으로 종교적인 재구성이 일어나며 자율성이 증대되고 이성이 분출하는 시기가 되며 좌와 탐욕은 종교적인 쟁점에서 사회의 도덕적 쟁점으로 옮겨가게 된다.
탐욕은 여러 모습으로 위장하며 탐욕스런 인간자체보다 탐욕스러운 행위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권력과 부를 향한 현대의 탐욕의 시작은 저자는 1882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선언한 해로 보고 있다. 현대인들은 탐욕, 시기, 증오를 중심으로 권력추구라는 탐욕의 다른 위장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부를 원하게 되었고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대는 종말로, 부, 탐욕에 빠진 사람들이 동시에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면서 탐욕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인식의 변화를 겪고 있다. 

마호메트에 의하면 '탐욕'이란 마땅히 필요한 것 이상을 바라는 마음을 가리킨다 라고 하며 "등을 똑바로 펴고 살 수 있는 정도" 이상을 바라는 게 곧 탐욕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나에게는 너무나 지키기 힘든 '비움'이다.
책을 읽는 동안 든 생각은 '탐욕'이 인간이 가지는 기본 욕구이며,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도 쉽지가 않음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 '탐욕'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절제라는 미덕이 꼭 함께 해야만 하는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해볼 만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개인에서 시작한 탐욕이 사회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진 '탐욕'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 역시 '탐욕'이 마음 속에서 들끊기 시작하면 제어하기가 힘들고 얼마나 강력한 무기를 가진 것인지를 알기에 조심스럽고 힘이 든다. 하루에도 몇번씩 탐욕은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온통 한가지 생각만을 강요하기도 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탐욕스러운 욕망에서 벗어난 적이 한번씩 생기기 시작한다면 탐욕의 분신인 '절제'가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하게 되며 작은 희망을 갖게 된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며 '탐욕'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나는 원한다.
권력과 부 그리고 영원한 젊음을 적절한 수준에서 탐욕과 절제와 함께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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