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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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 호텔 '킵'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인가... 그러한 환상적인 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판타지 가득한 동유럽 어딘가의 고성과 중독성 강한 스마트 폰이 위세를 떨치는 뉴욕이 공존하면서 '킵'은 쉴새없이 두 세계를 보여주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다 이 이야기에 익숙해질만했을 때, 난데없이 이야기 속에 적극 개입하는 화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누구인가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이 이야기 전부를 쓰고 있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 레이이며 그를 글쓰기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홀리의 이야기로 연결되며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미로 속으로 내달리게 된다. 

뉴욕에서 커다란 성공을 꿈꾸었지만 이인 자에서 결코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그나마 그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인생의 고달픈 기로에서 선 대니는 꼬여가기만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동유럽 어딘가에서 9백년 된 고성을 신개념 테마파크로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사촌 하위의 연락을 받고 무조건 떠나오게 된다. 그런데 사촌 하위와는 어린시절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껄끄러운 관계이고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하위에 대한 대니의 죄책감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도착한 고성은 유선 전화도 먹통이고 스마트 폰도 되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었기에 통신 중독자인 대니는 거의 공포에 질리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나약했던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르게 변한 부자 사촌 하위는 당당한 자신감과 함께 고성 테마파크를 진행하고 있고 아름다운 아내, 아이들, 그리고 거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믹과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니는 그들과 동화되지 못한 채, 겉돌며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앓게 되고 우연히 고성의 가장 안전한 곳이자, 위험한 곳인 '아성'의 창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금발머리 소녀를 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 고성의 복도와 비밀로 가득한 미로로 이루어진 9백 년 된 성으로 정처 없이 이끌게 된다. 그리하여 읽는 독자는 살짝 흥분되는 기대감과 두려움과 함께 작가가 이끄는 그 곳으로 한 발 내딛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그 이야기 속으로....... 

'킵'은 우선 묘하다. 9백 년 된 고성에서 환상 가득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가도 레이와 홀리가 있는 현실의 삭막하고 짠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고 온통 회색빛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바로 그 때, 다시 환영과 환상이 공존하고 우리가,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인 호텔 '킵'으로 안내한다. 물론 호텔 '킵'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바로 '킵'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되는 곳이고 당신이, 내가 만들어내고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킵'의 이야기는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인 것이다. 이쯤에서 갑자기 살짝 골몰해지고 두려워지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텔 '킵'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상상이 무엇일까? 무수한 비밀과 사연이 가득하고 환영이 가득한 고성에서 고딕소설, 영화 한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완전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의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럼 완전 공포인데......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킵'의 세계를 만나보고 싶어진다. 무한한 상상력과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소설 '킵'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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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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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편인 '오셀로'를 읽다보면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가볍기가 이를데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고로 인해 시작된 한 번의 의심은 천 번의 의심을 오셀로 마음에 부르게 되고 의심의 병이 시작된 눈에는 지고지순한 아내 데스데모나의 모습이 점차 천하의 악녀이자 창녀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전장의 훌륭한 장군이자 부하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을 받던 무어인 오셀로는 한 순간의 판단의 실수와 불필요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사랑도 명예도 목숨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에게 어떠한 약점(?)이 있었기에 천하의 협잡꾼이 이야고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끔찍한 비극을 불려오게 되는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다. 나이도 지긋하고 전장의 경험도 풍부했던 오셀로가 그렇게도 쉽게 이야고의 계략에 걸려들고 의심에 의심을 더해 데스데모나와 충실한 부하 카시오를 불신하게 되고 그들의 사이를 천박한 눈으로 보게 되면서 비극적 상황은 극에 달하게 되는 이유를 셰익스피어는 오셀로가 가진 배경과 이중적인 마음을 이유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검고, 안방출입 한량들의 능숙한 사교술이 없기 때문이거나  

내 나이가 황혼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

하지만 깊이 들어간 건 아닌데 -

그녀는 떠나갔어. 난 속았고 내 위안은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야.(3.3.297-302)> 

오셀로의 마음은 이미 데스데모나와의 사랑에 있어서 비극적인 자격지심의 마음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야고의 의심의 씨앗을 덥석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마음은 지옥이 되었고 데스데모나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의 병이 깊어가게 된다. 천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어린 아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강력한 불신의 마음으로 변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증오를 키우게 된다.  

사랑은 열정에서 시작되지만 강력하고 견고한 '믿음'이 없다면, 사랑은 부서지기 쉬운 모래 성 같아서 지키기가 힘들다. 그만큼 사랑에 있어서 어떠한 조건에도 비견할 수 없는 조건은 '믿음'인 것이다. 오셀로는 그 '믿음'을 이야고가 심어 준 '불신'으로 맞바꿨기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해버렸고 한 번도 변치 않은 '믿음'을 오셀로에게 주었건만 그 사랑이 믿음으로 되돌아오지 못했기에 데스데모나의 사랑은 이야고의 계략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사랑'은 한 줌의 재처럼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오셀로'의 악당은 말할 것도 없이 치졸한 계략 가이자 협잡꾼인 이야고이고 모든 비극의 발단이 된 자이기도 하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모든 면에 뛰어났던 장군 오셀로를 단숨에 무너뜨리고 죄없는 여인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몰게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대로 직접 한 것은 없다. 그저 오셀로의 귀에 대고 의심의 마음을 넣어 준 '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모든 마음의 병을 키우고 극에 달하게 하고 끔찍한 비극적인 상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오셀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오셀로는 모든 상황을 알게 된 후, 비극을 자신이 직접 마무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이야고가 없었다면 오셀로의 비극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오셀로'의 비극은 모든 상황을 이중적인 눈으로만 보았던 오셀로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자 삶 자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모든 사랑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랑이 불신으로 변질되는 것은 막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믿음을 향한 노력이 없다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인지, 새삼 고전 '오셀로'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된다. 열정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그 열정을 사랑으로 키우기가 힘들고 그 사랑을 '믿음'으로 단단하게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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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시피
다이라 아스코 지음, 박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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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시피'는 솔직하다못해 발칙할 정도로 여자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귀여움을 잃지 않는 소설이다. 각 6장으로 나뉘어 솔직담백한 연애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다양한 요리 레시피가 나오면서 읽는 즐거움과 함께 식욕을 돋우게 된다. 연애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래, 맞아. 그럴 것 같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거기에 나오는 요리 레시피를 읽다보면 입맛이 다셔지며, 나도 음식을 만들어 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애도 음식도 어느 정도는 편식이 가능하다보니, 어느 한쪽으로만 선호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고 그런 점 때문에 거의 비슷한 연애의 시작과 행복한 했던 순간, 이별의 순서를 겪게 되면서 일종의 체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면도 좋아하는 타입을 져버리가 쉽지가 않다. 그런 면에서는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한 번 정해지면 특별한 상황이 되기 전에는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타입의 이성이 나타나도 새로운 요리의 맛을 볼 기회가 생겨도 망설이게 되거나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점이 비슷하다. 6장의 여자들도 각기 자신의 취향과 타입이 명확하게 있다고 자부(?)하며 탐닉하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고집하며 타협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연애사가, 요리가 항상 뜻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듯, 처음 먹어보는 레시피의 음식이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지 말라는 법이 없고 전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이성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연애에도 요리에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다양한 삶의 즐거움과 요리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말이다. 

'오늘의 레시피'에는 조개구이, 감자 샐러드, 카레우동, 버터밥, 매실장아찌 등 다양한 요리가 나오는데, 어느 하나 입맛을 돋우지 않는 게 없었다. 더구나 가장 쉬워 보이는 버터 밥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셔서 먹었던 기억이 나서 작은 추억을 가지고 며칠 전 해먹었는데, 역시 맛있었다. 다음에는 버터 밥 다음으로 쉬어 보이는 감자샐러드를 해볼 참이다. '오늘의 레시피'는 우울하거나 일상적인 삶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면 이 소설의 가치를 더 느끼게 될 것 같다. 읽고 싶은 장만 찾아서 읽어도 무관하니, 책장 한 곳에 넣어두고는 비상약처럼 읽을 생각이다. 맛있는 오늘의 레시피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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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아내
테이아 오브레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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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우화를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쉴새없이 이끈다.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과거에는 공존했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상실감을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젊은 내과의 나탈리아는 세상 모든 이야기의 원전이자 그녀의 삶을 이끌어주고 있는 할아버지로부터 모든 이야기들을 들으며 성장했고 그녀를 혼란과 혼돈 속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게 해 준 버팀목이 되어준다. 여러 차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내몰릴 때마다 나탈리아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호랑이의 아내, 영원히 죽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기억하며 할아버지의 삶을 추억하며 그이 발자취를 따라가며 수세기 동안 황폐해져 변해버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조국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 전체를 오묘하게 교차하며 보여준다.

'호랑이의 아내'는 이야기가 한 없이 나오는 마법의 주머니 같다는 생각을 읽어갈수록 느끼게 한다. 한 편의 이야기에서 또 한 편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질 때, 인물들이 살짝 감추어 두었던 그들의 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 좌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현재 모습에서 더한 서글픔을 보게 된다. 빛바랜 꿈을 한순간도 져버리지도 못하고 한 줌을 손에 쥐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에서 원망과 비애가 흐르고 회한과 통탄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그들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을 비추어 극에 달하게 한다.  

음악이 그저 좋아 구슬라 악사를 꿈꾸었으나 백정이 된 귀머거리 소녀의 남편 루카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놨다는 원망으로 귀머거리 소녀를 폭언과 폭행 속에 방치하며 그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생과 사의 예지능력을 갖고 있으나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한 징벌로 결코 죽을 수 없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동물 박제를 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곰사냥꾼으로 알려진 다리샤, 새로운 삶을 향해 술수와 지독하리만큼의 인내심으로 새 신분으로 살고 있던 약제사,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호랑이의 아내가 되어버린 가여운 귀머거리 소녀의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현재, 손녀 나탈리아에게로 삶과 죽음의 이야기로 이어져 온다.

'호랑이의 아내'는 한 때는 빛을 발하며 아름다웠던 '꿈'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또한 한 때는 소유했지만 그 가치를 잘 몰랐던 모든 것에 대한 회한과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읽는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이야기는 새로운 힘을 부여받고 또 다른 이야기로 구전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점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힘은 분명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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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하프 위크 에디션 D(desire) 3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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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둘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나의 상상력이 너무 빈약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읽고 있는 나는 남자에게 살의를 가진다.' 

'나인 하프 위크'를 반 정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한, 두 장 읽고는 나도 모르게 답답하게 막혀 있는 것만 같은 숨을 내쉬게 된다. 남자의 강요에 의해서 나인 하프 위크 동안 감금당한 것도 아니었고 온전히 그녀의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만 둘의 관계가 부당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택을 했다. 남자에게 중독되기를, 자포자기할 정도로 자신을 놓아 보기를, 완벽하게 종속되기를.......  

5월의 뉴욕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남자는 매력적인 외모와 매너로 여자로 사로잡는다. 여자는 처음에 사랑의 기술을 잘 아는 남자로 생각했었지만 곧 그의 치명적 매력과 점차 드러나는 기이한 행동과 요구에 하나 둘 길들여가며 여자는 자신 안에 숨겨진 욕망을 느끼게 되고 별 거부감 없이 따른다. 그는 여자에게 완벽하게 자신의 말을 듣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며 매질을 시작하고 식탁다리, 커피 테이블에 수갑을 채운 채, 그녀를 묶어 둔다. 그는 그녀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먹이고 목욕을 씻기고 비싸고 고급스런 브러시로 머리를 매일 밤 빗겨준다. 그 후 그 브러시로 그녀에게 매질을 한다.  

이러한 일들이 나인 하프 위크 동안 반복되며 극한의 욕망을 위해 남자의 요구는 점점 더 강도가 세어지고 그녀의 매질 당한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욕망의 한계를 느껴보기 위해 여자는 수갑에 묶이고, 개처럼 바닥을 기고, 창녀처럼 입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애인이 다른 사람과 하는 섹스를 지켜보는 등 여자는 무슨 일이든 남자가 시키는 대로 이끌려가면서 자신의 육체와 자아를 분리시킨다. 그저 육체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미끼일뿐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다른 낮과 밤의 생활을 한다. 낮에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으로 밤에는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고 남자의 완벽한 보살핌 속에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살면서 쾌락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아와 삶을 방관하며 지낸다. 남자의 도를 지나친 요구와 피를 부르는 매질과 죽음의 공포를 여자가 느끼고 자기 보존 본능이 되살아나기 전까지는....... 

남녀의 사랑 표현방법은 다양할 수 있고 타인들이 모르는 둘만의 소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소통이든, 육체의 소통이든 둘만이 가지는 방법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낯설고 공포감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사랑방식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를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로 수갑을 차고 식탁다리에 묶어 있는 여자를, 심한 매질 뒤에 오는 섹스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을 방치하는 그녀를, 모멸감,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 심한 요구에도 결국 남자의 요구대로 다 응하는 그녀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자에게 느꼈던 감정은 좀 더 복잡한데, 여자가 느꼈던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이 아니라 시종일관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라 더 공포감 있게 다가왔고 분노, 살의를 동시에 느끼게 했다. 시종일관 매력적인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여자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며 완벽한 옷차림에 점잖은 매너, 매혹적인 미소를 지닌 남자이다. 그는 여자를 죽을 만큼 매질을 하면서도 결코 흥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자를, 자신을 극한의 욕망의 상태로 내모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입장에서 타인의 입장에서 둘의 관계를, 나인 하프 위크 동안의 일들을 무조건적으로 이해 불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최대한 이해하고 싶었다고만 말하고 싶다. 일반적인(정상적인) 사랑방식의 시각으로 보아서 자꾸만 남자가 가하는 모든 일들이 여자에게 부당하고 상처를 준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한다. 좋았다고....... 그녀는 선택을 했고 남자와 함께했던 나인 하프 위크를 인생의 한 장으로 만든 것이다. 더 이상 말이, 판단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다.   

'밤 시간이 되면 나는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고 완전히 보살핌을 받았다. 어떤 결정도 내릴 필요가 없었고, 아무런 책임도 없었다. 선택권도 없었다.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았다.' -139쪽 중략-

*사디즘이란 성적 대상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을 말하며, 마조히즘은 이와 반대로 학대를 받는 데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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