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소개된 책들은 의외로 눈에 띄는 인문사회,경제서적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최근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등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째째하다며 비판을 가한 선대인씨의 책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적해 왔던 그가 이번엔 세금에 대한 지적을 해왔다.  

  

프리라이더 / 선대인

 

“책 제목 ‘프리 라이더’는 무임승차자를 뜻한다. 부패가 사전 뜻 그대로 ‘정치?사회제도?의식 따위가 타락한’ 상태라면,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도, 타락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도 않고 그 세금으로 제공되는 공공재(공공서비스)에 거저 올라타서 온갖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무임승차자들은 재벌기업들과 부유층, 고소득 전문직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세금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걷히고 있는지, 세금을 걷어야 할 곳에서 정부와 제도가 얼마나 과세를 방기하고 있는지, 따라서 무임승차한 이 사회 특권층이 누리는 특혜실태를 분노에 찬 필치로 까발린다.

지은이는 우리가 더 분노할 대상은 구조적으로 잘못 짜인 현행 과세제도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 세금제도는 ‘1970년대 개발연대’에 만들어졌다. 경제 부문을 ‘자산경제’와 ‘생산경제’로 나눌 때, 당시 한국경제는 생산경제 중심이었다. 곧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아 소비지출을 하는 경제가 주축을 이뤘다. 그렇게 부가가치세?법인세?근로소득세가 국세 수입의 3대 축을 형성했다.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조세체계 근본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내내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며 주식?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경제 규모가 비대해졌다. ‘7500조원의 자산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경제의 7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자산경제의 각종 자본이득,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걷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17.8%에 불과하다. 자산경제 규모는 생산경제의 7배인데 그 세금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대부분 자산소득이 ‘불로소득’인 셈이라고 말한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제도는 월급쟁이들의 근로소득엔 칼 같은 반면 자산소득에는 헐겁다. 집값이 올라 수억 차익이 생겨도 1가구1주택일 경우 시가가 9억원을 넘지 않는 한, 세금이 필요 없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역시 세금이 필요 없다. 국내 부동산 보유세 부담액은 부동산 자산가치의 0.09%에 불과한데도 부유층은 이를 ‘세금폭탄’이라 호도한다. 지은이는 반문한다. 실질 보유세율이 1%를 넘는 미국 같은 나라는 세금 핵폭탄이 떨어지는 나라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5698.html


21세기 초반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 이 담근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데 이전처럼 반자본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묻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책은 정치가 우선한다 와 이론 이후 이다. 일단 독서목록에는 올려놓지만 실제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정치가 우선한다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1만7000원

<정치가 우선한다-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은 정치학자 셰리 버먼(사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006년에 펴낸 책이다. 2006년이면 자유시장주의의 21세기적 극단형인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을 최대로 휘두르던 때다. 20세기 역사를 자유주의의 승리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이 책은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맞서 전혀 다른 명제를 제시한다. 20세기에 승리한 것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였다!

그동안 사민주의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실용주의적인 타협으로 이해돼 왔다. 사민주의자는 ‘혁명적 신념이나 용기가 없는 사회주의자’라는 다소 경멸스러운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사민주의를 이런 어정쩡한 타협 혹은 타락으로 보는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단순한 정책방향의 차원을 뛰어넘어 명확한 자기완결적 이념체계를 지닌 정치이데올로기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사민주의 이념이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성립했는지, 또 누가 사민주의 성립 과정에 노력과 희생을 바쳤는지, 그리고 그 사민주의가 왜 우리 시대에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이념인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사민주의가 분화돼 나오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다.
……..
지은이는 이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인식이 19세기 말에 이르면 현실 설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데,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응해 등장한 것이 ‘정치의 우선성’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판본, 곧 ‘민주적 수정주의’와 ‘혁명적 수정주의’다.
……..

이 두 이념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자본주의의 ‘사회 파괴’에 대항하여 맹렬하게 타오르던 민족주의적 공동체주의를 받아들여 내적 성격을 변화시켰다. 소렐의 혁명적 수정주의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민족주의와 결합해 파시즘으로 나아갔다. 또 독일에서는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을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적 수정주의는 공동체적 연대에 눈을 돌림으로써 사회민주주의로 진화했다. 지은이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주의에 맞서는 이념으로서 이 파시즘과 사민주의가 서로 격렬하게 경쟁했는데, 결국 승리한 것은 사민주의였다고 말한다. 파시즘과 그 급진적 형태인 나치즘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과격한 성격 때문에 파산했다.
 
사민주의는 민주주의를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으로 인식했다. 또 자유주의를 ‘자유시장에 대한 집착’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이 이념의 본질적 핵심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전후에 사민주의는 가장 유력한 정치이념이 되었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서 벗어나 ‘정치의 우선성’을 앞세우고, ‘계급 투쟁’을 넘어 계급 타협을 통한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하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외면했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탄력 있는 정치이데올로기로 자립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민주의자들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경제성장의 ‘귀중한 도구’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했다. “동시에 그들은 시장이 하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서는 끔찍하다는 주장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060.html
 

이론 이후
테리 이글턴 지음?이재원 옮김/길?2만5000원

<이론 이후>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1943~?사진)의 2003년 저작이다. 2003년이면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이라크를 초토화하던 시점이다. 이글턴은 “미국 정부를 장악한 극단주의자들과 반(半)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날뛰고 있는데도, 이런 반인륜적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진보운동이 주저앉은 이유 가운데 하나를 ‘이론의 무기력’에서 찾는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시대의 통설”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제다. 아무런 전망도 저항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의 이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글턴은 바로 그 포스트모더니즘이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한다. 이 책은 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경로로 서구 좌파의 대세를 장악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 이념이 무기력 속에서 파산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글턴 특유의 생기 넘치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이론’이란 ‘문화이론’을 가리킨다. 문화이론은 1960년대의 격동 속에서 태어났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의 흐름을 타고 격렬해진 서구 학생운동이 문화이론의 산파 구실을 했다. 당시 학생운동은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격하게 거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문학이 전면적인 자기성찰을 감행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문화이론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이란 것은 바로 인문학의 비판적 자기 성찰이다.” ………‘문화이론’은 1980년대에 들어와 소비주의가 만연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몰락해 버렸다. 그 이론의 폐허 위에 깃발을 꽂은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글턴은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의 대항문화가 낳은 이론들 속에서 자라났으나 결국에는 그 이론들의 건강한 비판성을 잃어버린 껍데기 이념이다
………….
이글턴이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적 흐름은 “총체성, 보편적 가치, 거대한 역사적 담론, 인간 실존의 튼튼한 기반,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또 “진리?통일성?진보에 회의적이다.” 요컨대, 영원한 보편적 진리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가치도, 인간 실존의 굳건한 토대도 없다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부분적이고 상대적이어서, 거기서 진리나 보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주장들이 모두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이글턴은 말한다. “초국적 기업들이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펴져나가는 동안 지식인들은 보편성이란 일종의 환상이라고 목청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2003년의 전 지구를 뒤덮은 네오콘 광기였다. 이런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끝없이 자기 회의와 자기 부정에만 골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끝에 다다른 듯하다.” 이글턴은 “이론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숙고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결코 ‘이론 이후’에 존재할 수 없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론적 파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이론이 자본주의의 저 야심만만한 전 지구적 역사와 싸워나가야 한다면 자기만의 책임있는 원천을 지니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문화이론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저 숨 막힐 듯한 통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들을 탐구하라.”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83.html

 

반자본 발전 사전
볼프강 작스 외 지음?이희재 옮김/아카이브?3만2000원  


“빈곤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풍요를 만들고, 빈곤층의 굴욕은 부유층의 자부심을 낳고, 빈곤층의 의존성은 부유층의 자립성을 낳는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반자본 발전 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셋째 항목 ‘평등’을 집필한 더글러스 러미스(74)의 얘기다. 빈곤과 풍요, 독립과 종속, 평등과 불평등은 각기 독립적인 게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인과관계 또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난은 그 홀로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타인 몫을 앗아가거나 독점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누구도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만족했으나 부자라는 이질적 존재가 나타난 순간 가난이 만들어지고 의식되고 불행해졌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다른 누구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국민총생산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서구산업문명이 고안해낸 일률적 잣대에 따라 나라들 순위가 정해지면서 다양한 가치를 향유하던 멀쩡하던 나라들이 무더기로 어느날부턴가 ‘저발전’의 못살고 못난 나라가 됐다.

그 순위의 포로가 되면서 모두들 순위의 사다리를 먼저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경쟁의 광풍이 몰아쳤다. 극소수 꼭대기만 배를 불리고 대다수가 패배자가 되는 한국의 학교?학벌 서열화를 빼닮았다. 지난 반세기의 세계가 그랬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저발전의 발전이요, 프랭크식으로 말하면 저개발의 개발이다.
개발이나 발전이나 모두 영어 디벨로프먼트를 옮긴 것인데, 옮긴이는 개발이란 말은 이미 긍정적인 의미를 잃은 것이어서, 굳이 한국사람들이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개발보다 외연이 더 큰 발전으로 옮겼다고 했다. 흔히 좋게들 생각하는 단어들이 실상 얼마나 위험한 뜻을 담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발전(성장)을 고발하기 위해 끌어온 ‘환경’이란 말도 서구적 기준의 빈곤을 없애려면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일반화하면서 성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자기파괴적인 함의를 갖게 됐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간 평등이란 말도 결국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자급자족하며 유유자적 마음 편히 살아가던 사모아의 어부는 서구적 국민(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따지면 졸지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돼버리고, 카라카스 빈민촌의 빈사상태 실직 노동자는 사모아 어부들에 비하면 갑부가 돼버리는 ‘생활수준’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반자본 발전 사전>은 이들과 함께 시장, 생산, 도움, 요구,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한 세계,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등 절대선으로 믿어왔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총 19가지 개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뒤흔들어놓는 비판적 개념사전이다. 서구문명 비판론자 이반 일리치를 중심으로 1988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1992년에 초판을 마무리한 이 책은 딱딱한 개념어 풀이 사전이 아니다. 성장이 곧 발전인가? 진보는 늘 정의로운가? 언젠가는 정말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게 될까? 그리고 지금 방식의 서구문명은 존속 가능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생태학자들이 그 핵심 개념어를 중심으로 사회적?철학적?역사적 맥락까지 짚어가며 답해 놓은 에세이 모음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76.html


12월 리영희선생께서 작고하셨다. 선생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나왔는데 그 중 두 기사를 스크랩했다.

…………………………
1974년에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리영희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 아시아?중국?한국>. 리영희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전사, 우상 파괴자의 등장을 알린 그의 첫 단행본은 1970년대 유신 전체주의 억압체제하에서 “‘전논’이라는 은어로 불리면서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해일과 같은’ 폭발력으로 퍼졌다.”(김삼웅 <리영희 평전>) 금서가 된 이 스테디셀러는 이처럼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떠돌고 회자되면서 20세기 말 한국사회 격동을 예비했다. 87년체제와 민주정부 탄생이 상징하는 한국 민주화와 변혁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주역들 다수가 그 세례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리영희는 분명히 ‘의식화의 원흉’이요 ‘주범’이었다.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 사실을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와 그 사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미국사회를 분열과 해체상태로 몰아가던 반공주의세력을 비판하면서 권력의 언로차단과 비밀주의, 자유 억압이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논한 그 책 제1장은 이후 평생 변하지 않은 우상파괴자 리영희의 존재방식에 대한 예시였다. 코페르니쿠스처럼 ‘가설’임을 전제로, 6개의 장으로 구성된 그 책은 중국에 대한 접근을 축으로 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에 따른 연쇄반응인 주한미군 감축, 그 자리를 대신할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그것이 야기할 한반도 정세의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조건반사의 토끼처럼 권력과 외세의 조종에 놀아나던 한국인들에게 토끼장에서 벗어나라고 절규한다. 그가 전한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그것은 결연하고 처연했던 그 뒤 한국사회의 변혁을 예고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유명한 선언적 머리말이 실린 <우상과 이성>(1977년, 한길사)은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이후의 세상변화까지 담은 그 책의 ‘속편’적 성격을 지니면서 그 책과 더불어 리영희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광복 32주년의 반성과 중국이란 나라, 베트남전 총평가, 냉전과 독일통일문제 등을 담아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이 책 두달 전에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비평사)가 나왔다. 1974년에 한양대가 설립한 ‘중국문제연구소’를 맡은 리영희의 중국연구 성과를 담은 <8억인과의 대화>는 해외 중국 전문가들 저술의 편역이었음에도 출간 약 2달만인 그해 11월1일 중장정보부가 판매금지 조처를 내렸다. 그 책이 판금당한 바로 그날 <우상과 이성>이 출간됐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던 그 상황에서 당국은 그 이념적 배후로 리영희를 지목했고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은 그를 반공법으로 옭아넣는 구실이 됐다. “1977년 11월23일 아침 7시, 나는 집에서 세 사람의 낯선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서재로 올라가 수백 권의 책을 훑어 꾸린 다음 ‘잠깐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가 끌려간 곳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고 1980년 초에야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출감했다.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년, 동광), <분단을 넘어서>(1984년, 한길사), <역설의 변증- 통일과 전후세대와 나>(1987년, 두레)는 이스라엘-아랍 등 제3세계로 그의 시선을 더욱 넓히는 한편, 문화적 접근단계를 넘어 군사협력체제로 나아가던 한-일 보수정권 유착관계의 진화와 이를 뒤에서 조종한 미국의 세계정책 구상 분석을 중심으로 핵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킨 그의 ‘80년대’ 저작들이다. 이들 80년대 저작 중에서 특별한 책 하나가 그의 탄생부터 5?16쿠데타 직후 그의 30대까지의 삶을 뒤돌아본 <역정>(1988년, 창비)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이후 말년까지 그가 여러 글과 책에서 회고하고 재인용한 그의 삶의 형적들의 원형을 이룬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가난했던 서울 유학시절, 문사기질의 그가 경성공립학교 전기과와 국립해양대 항해과에 들어가게 삶의 궤적과 백범 김구를 연모하며 4?19혁명에 뛰어들었던 얘기, 미군 통역장교 등으로 복무한 7년간의 군대생활, 그때 목도한 군과 국가의 부패와 부도덕이 그의 인생지침을 돌려놓게 되는 과정, 언론사 입문 과정 등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장교 시절 군인들이 불쏘시개로 삼던 신흥사 목판경전들을 구한 얘기, 술 마신 기분에 호기를 부렸다가 도리어 준엄한 꾸중을 듣고 무릎꿇고 사죄해야 했던 어느 진주 기생의 기개와 인간적 무게를 보며 깨친 생각 등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다.

<自由人, 자유인>(1990년, 범우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년, 두레), <스핑크스의 코>(1998년, 까치), <반세기의 신화-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1999년, 삼인) 등 그의 ‘90년대 저작’들에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급속히 진행된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지켜봐야 했던 리영희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고뇌가 깊게 배어 있다. 하지만 그의 1970년대적 시선과 문제의식은 일관되게 유지되며 종교?문화?언론?통일문제를 아우르는 그의 사유는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1996년 지중해 일대를 여행한 뒤 쓴 <스핑크스의 코>는 지식?문화?종교?예술?정서 등 모든 면에서 오로지 자기 것만을 내세우며 약자에게 이를 강요한 지배적 문명, 그 폭력숭배와 잔인성, 반지성, 반문화, 몽매와 독단이 이집트 스핑크스의 코를 무참하게 뭉개버린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를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의 한국사회를 대비시킨다.

2005년에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와 대담형식으로 엮은 회고록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리영희의 삶과 사상의 종합편이다. 리영희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맡은 임 교수의 주도면밀한 진행에 따라 리영희의 삶과 기억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풍부하게 종합된다. 원숙과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달관의 경지까지 느낄 수 있는 <대화>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문제의식이 세상과의 사투를 벌이며 마침내 당도한 변증법적 종합이라 할 수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4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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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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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배신, 정의와 휴머니즘이 버무러진 재미있는 드라마 뒤 슬픈 대한민국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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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해를 마감하는 출판계 기사들을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이슈는 아마도 '정의란 무엇인가'일 것이고, 하반기에 돌풍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11월에 소개된 책들중에는 보수, 진보를 주제로 한 책들이 보인다.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등의 책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노골적인 제목의 '진보집권플랜'이다.



<진보 집권 플랜>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2012년, 늦어도 2017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 재집권 가능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재집권 방안을 모색한 <진보 집권 플랜>.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대담집은 6·2 지방선거의 핵심 의미를 진보·개혁 연대의 학교 ‘무상급식’ 전략에서 찾는다. 이거야말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서울 강북 ‘뉴타운’공약이 서울표를 휩쓸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파를 6·2 지방선거에 몰고 왔을 뿐 아니라, 무엇이 차기 대선 판을 휩쓸어버릴 진보·개혁 세력의 초강력 무기가 될 것인지를 보여준 강력한 예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체적인 공약, “진보가 밥 먹여 준다. 뿐만 아니라 더 좋은 밥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먹게 해 준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피부 깊숙이 각인시켜줄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4분5열을 극복하고 6·2 지방선거 때처럼 연대하고 뭉치는 것이다.

 

조국과 오연호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을 참패로 몰고간 요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교육, 일자리, 의료, 주택 등 진보·개혁 세력 발목을 잡았던 핵심 민생문제 실패를 이젠 현 정권이 훨씬 더 열악하고 증폭된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49.8%에 달하는 비정규직 비율, 더 심화된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문제, 거품붕괴 위기 속에 더 멀어지고 있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 상생이 가져다줄 무한대의 실익을 외면하는 파탄상태의 대북정책, 대기업만 살찌운 기업프렌들리, 4대강 개발 등 막무가내 토건사업….

 

두 사람은 현 정권의 이런 실정과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무상급식, 반값 (대학)등록금,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회임금, 무상의료 또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원가공개와 반값 아파트, 검찰 개혁, 종부세 개선 부활, 산업·기업 민주화 등 획기적인 대안들을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들이대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집권당이 차기 대선을 겨냥해 내놓은 복지국가론이 그들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 정책)정책과 어떻게 모순되는지를 지적하고 탈신자유주의 대안 복지정책의 진수와 진정성을 보이라고 촉구한다. 이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것은 진보·개혁이 아니라 수구·보수 세력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이탈리아 올리브 동맹이든 무지개연대든 2단계 소통합 방식의 야권통합이든 386(486)과 20대의 연대든 유권자들 변화욕구를 최대한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라고 강조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8509.html

 

조국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부드럽지만 촌철살인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그의 바람처럼 이 망국의 개발시대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많지는 않지만 조국교수는 몇 권의 대중적인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생각해보니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가 몇 년째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허시먼 지음·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보수에 대해 분석한 책도 소개되었다. 진보,개혁정책에 대해 역효과를 내세우며 무용론을 내세우는 보수의 논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앨버트 허시먼(1915~)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제 The Rhetoric of Reaction: Perversity, Futility, Jeopardy)는 예컨대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비판 논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개입에 부정적인 경제학적 시각에서 실업자와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의 일부를 돌리는 ‘이전지급’이 야기하는 갖가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런 이전지급 방식들은 ‘나태와 타락’을 조장하고, 의존을 부추기고, 더 건설적인 국가의 다른 부양제도들을 파괴해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은 허시먼이 이 책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개혁이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들이대는 전형적인 ‘수사적 무기’(rhetoric of reaction, 반동의 수사학)로 든 세 가지 명제 가운데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다.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 추천자 우석훈은 이를 “너희들이 뭘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는 말로 요약하면서, 차라리 감세가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던 이명박 대선 공약,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며 이를 ‘줄푸세’라 불렀던 박근혜 경제공약이 이 명제 위에 선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둘째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무용 명제’(futility thesis)다. 셋째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에 얻어낸 소중한 성취들마저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하는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봤자 소용없어!”라는 얘기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는 인간과 사회의 활동 목적을 보는 관점이 거의 정반대다. 역효과 명제는 인간 세계를 매우 변덕스럽다고 보고 그 때문에 변화 시도가 뜻밖의 반작용을 낳는다고 보는 데 비해 무용 명제는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돼 있고 내재하는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고치려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떤 면에선 무용 명제가 역효과 명제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역효과가 나더라도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세계와 개입의 여지조차 없는 세계의 차이. 무용 명제는 마르크스주의 사조에 맞서는 무기였고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도 무용론 중심으로 전개됐다.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진보와 개혁을 저지하려던 세력이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20세기 복지국가 논쟁에 이르는 시기에 동원한 보수주의 담론과 주장, 수사법을 좌우한 ‘논쟁의 규범’들을 역사적·분석적으로 살핀다. 바로 그 가공할 역추진력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역효과·무용·위험 명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등과 함께 동아시아국가들 경제성장 기적에 기여한 “다른 종류의 경제학자들” 중 한 명으로 꼽은 허시먼이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991년이다. 레이건 정권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를 이어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쟁’을 지휘하던 당시와 정치적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 사정이 닮은꼴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68.html

 

가난한 사람들이 맹렬히 보수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에 대한 마땅한 대답을 갖지 못한 내게 선거와 정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이다. 조지 레이코프를 설명할 때 종종 노암 촘스키에 빗대기도 한다. 그가 촘스키의 제자인데다가 언어학자이면서 현실정치에 활발히 참여하기 때문인데, 그런 설명에서 놓치는 점이 하나있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는 촘스키와 전혀 다른 입장이라는 점이다. 물론 정치를 분석하는 시각도 전혀다르다. 촘스키의 경우 자신의 학문과 현실정치라는 분리된 두개의 세상을 가지고 있지만 조지 레이코프의 경우 자신의 전공인 인지언어학 개념을 확장시켜 현실정치에 참여한다.


           
 

11월에는 조지 레이코프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가 소개되었다. 이번 조지 레이코프의 번역 출간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책은 이미 작년에 출간되었던 자유전쟁이 출판사만 바뀐 경우인데 지난달에 소개되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 역시 2004년에 '도덕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같은 역자가 번역 출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저자의 책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흥미롭다. 하여간 조지 레이코프의 책은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프레임(Frame)이란 말은 흔하게 쓰인다. 가볍게 생각하면 ‘생각의 틀’쯤으로 해석되지만, 그것이 지배하는 힘은 깊다. 우리의 믿음과 행동, 주의와 철학은 늘 그 틀 모양대로 생성되고 변형되며 작동한다. 프레임은 말의 영향을 받는다. 언어는 곧 인지의 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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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프 교수가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주목한 것은 ‘자유’라는 단어다.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자유, 해방이라는 단어를 20분 동안 49차례나 사용했다.” 이라크 전쟁은 자유를 지키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 숭고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지은이는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진보의 가치였던 ‘자유’가 보수주의의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자유는 프레임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부의 재분배나 의료보험을 한쪽에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른 쪽에선 부를 누릴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고 시장의 자유 작동 원리를 억압하는 해악으로 해석한다. 공항 알몸투시기도 한쪽은 개인 자유의 영역을 훼손하는 폭력으로, 다른 쪽은 테러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인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일방적인 승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후진적인 의료보험제도가 용납되고, 부자 감세가 횡행한다. 종교의 자유는 억압되고 영장 없이 사생활도 뒤질 수 있다. 미국 국민이 이런 폭력을 용인하고 따르는 이유는 뭘까? 보수주의자들이 붙인 ‘자유’라는 딱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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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진보주의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보수주의자들의 언어를 따라하지 말고 본원적 ‘자유 프레임’을 서둘러 복원하라는 것이다. “자유를 잃는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자유의 개념을 잃는 것이 훨씬 더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65.html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후 대한민국은 한미합동훈련에 이어 포사격훈련까지 수행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당사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어떤 판단의 근거도 허용하지 않는 일이다. 평화롭던 우리 땅에 포격을 가했으니 우리땅에서 우리가 훈련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그런데 이게 당연할까?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세계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가 남한의 사격훈련에 대해 유엔안보리를 소집한 것이다. 당한 것은 우리인에 어째 세상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뜻과 같지 않다. 이런 시대에 시각을 조금 폭 넓게 볼 만한 책이 나온 것 같다. 

 



정세현의 정세 토크
정세현 지음·황준호 정리/서해문집·1만5000원



" 북핵 폐기냐, 아니면 북핵 관리냐. 지난해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까지만 해도 미국의 평화협정 논의에 상당한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걸 워낙 견제하고 반대하니까 미국이 슬그머니 중단했고,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미국이 변했다. 사고 직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없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도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을 먼저 설정해 놓고 그걸 입증하는 증거자료를 찾아내거나 또는 만들어내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서서히 동조했다.

 

아마도 미국은 사건 초기에는 그게 일본하고 갈등을 빚고 있던 오키나와 미 해병대 기지 이전 문제 해결에 유용한 카드가 되리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으로 북풍몰이를 하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을 적당히 활용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하토야마 내각을 압박할 수 있고, 결국 미국 국익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6자회담 재개 동력이 떨어져버렸다.

 

미국이 왜 이러나? 미국의 본심 자체가 겉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어영부영 나중에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려는 건가? 다시 말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

지난해 7월 토크에선 이런 얘기를 했다. “해마다 하는 한-미 군사훈련도 사실은 미국이 신형 무기 들고 나와서 성능 보여주면 우리 국방부가 신무기 구매계획을 세우고 예산 신청을 하는 거잖아요.” 올해 4월에는 이런 얘기. “2009년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이 한국에 ‘확장된 억지력’을 제공한다는 합의를 했습니다. …사실 ‘확장된 억지’는 ‘확장된 의존’과 표리관계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군사·안보적으로 더 의존하게 된다는 건데, 달리 말하면 미국산 무기 수입을 더 늘린다는 얘깁니다. 확장된 억지가 명문화되는 시점을 전후로 미국산 무기와 군사장비를 구매하는 한국의 자격(FMS)이 최상위로 격상됐는데, 그거 다 돈 나가는 얘깁니다.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가면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MD)에까지 들어가자는 말이 나올 겁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9747.html


11월에는 스님의 주례사와 한겨레특강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또한 읽어볼 만하다. 

 



<스님의 주례사>
법륜 지음/휴·1만2000원


 

"정토회라는 불교 수행단체를 이끌고 있는 법륜 스님은 지난해 정해진 주제 없이 현장에서 나온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즉문즉설’(則問則說) 전국 순회강연을 했고, 그때 강연 주제가 사랑과 결혼이었다. <스님의 주례사>는 그 즉문즉설 녹취문 중 일부를 가려 뽑아 간추린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 문제예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왜 갈등이 생길까요?” 스님은 그게 다 상대방 덕을 좀 보자는 지극한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잘라 말한다. 스님 얘기는 길게 에두르거나 번다한 장식이 없다. 쉽고 명쾌하다. 하지만 그 정도 얘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끌릴까.

 

그다음 얘기는 “결혼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 않을 때 해야 합니다”로 이어진다. “내가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을 때 …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덕을 보려 하지 말고 덕을 베풀라는 것, 그런 걸 깨친 경지가 ‘온전한 상태’인 듯한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결혼한 아내와 남편은 자식이 없는 스님들보다 열배, 백배는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끝없는 연습” “수도” “마음공부”도 같은 말인데, 먼저 이치와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 중심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설이 자리잡고 있다. 스님 얘기는 사랑과 결혼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관계, 개인의 절망감, 무지, 행복, 운명 등 닿지 않는 데가 없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7385.html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겨레출판·1만2000원


"세상은 ‘드럽고 치사하게도’ 1등만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를 ‘술 푸게’ 한다. 술만 푸지 말고 제대로 반기를 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마쓰모토 하지메. 그는 대학 식당 밥값 인상에 항의해 구우면 악취 나는 ‘꽁치 굽기’ 데모를 하고, 모두가 자기계발에 열 올리는 ‘바쁜 사회’에 저항하며 역 앞에서 고타쓰(일본식 난방기구) 놓고 술 마시는 ‘한가한’ 데모를 했다. <예스맨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찍은 앤디 비클바움은 신자유주의의 첨병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투표권도 사고팔 수 있다”며 이들의 생각을 정론직필한다. 이런 방식으로 주류 권력의 음모를 널리 알리는 셈이다. 지지율로 따지면 ‘하위권’이었음에도 끝까지 서울시장 후보를 완주해낸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얼핏 1등처럼 보이는 소설가 공지영씨, 한국 사회 비주류인 ‘좌파’ 안에서 또 ‘비(B)급’을 지향하는 김규항씨 등도 참석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매년 주제를 정해 벌이는 ‘인터뷰 특강’에서다. 올봄 이들이 모여 전수한 ‘무한경쟁사회에 발칙한 발차기를 날리는 비법’을 모아 묶었다.

 

노회찬 전 대표는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서울대의 ‘1등 독식’이 없도록 16개 국공립대가 통합되는 ‘꿈을 꾸라’고 말한다. “천만명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되니까.” 마쓰모토는 등록금 투쟁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대학을 그만둔 다음 매일 학교에 가라”고 제안한다. 수입이 없어진 대학은 당혹스럽고, 학생들은 간판 획득이 아닌 공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 저항하지 않는 당신, 모두 유죄!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9757.html

 

일년을 갈무리 하는 독서내용을 담은 정혜윤의 글도 관심을 끌었다.

올해 읽은 책들을 돌아보며…
정혜윤의 새벽 3시의 책읽기 /


"볼라뇨의 <칠레의 밤>에 대해선 죽기 전날 밤의 변명이란 부제를 내 맘대로 달아뒀다. 죽기 전날 변명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 배웠다.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서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인 조제프 자코프는 어떤 지적 모험을 하게 된다. 즉 네덜란드에 가서 프랑스어를 가르쳐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정확히 말하면 스승은 네덜란드어를 모르고 제자들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상황), 그런데 이들이 겪은 일이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학생들은 프랑스어 철자법도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프랑스어를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다. 교육에 있어서 유식한 자 무식한 자 유능한 자 무능한 자 똑똑한 자 바보 같은 자의 분할이 깨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약 천재 교육을 원하는 부모라면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이 책에서 “나는 인간이다. 고로 생각한다”로 뒤집을 때 인간에 대한 어떤 강력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신뢰가 사람을 얼마나 해방시키는지 알게 될 것 같다.

 

           


<감정노동>은 언제나 친절한 항공사 승무원의 미소로 시작한다. 감정노동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고양시키거나 억제할 때의 노동을 말한다. 승무원들뿐 아니라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미소가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요구된 것의 결과물일 가능성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감정노동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까지 이르게 된다. 서비스직의 비중이 늘어가는 사회에서 감정이 상품이 된다면 그렇다면 내 진짜 감정은 언제 어디서 표현해야 하나부터 나는 도대체 정말은 뭘 느끼는가까지 다 궁금해질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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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에는 세계석학들의 책 출간소식이 돋보인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를 비롯하여 엔트로피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 노벨상 출신의 세계적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그리고 프레임이론을 정치에 접목시킨 조지레이코프의 책이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저작을 테마로 삼아 읽어보려고 미루고 있던 터라 이번 신간출간으로 이제는 읽어야 할 때를 잡아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조지레이코프의 책은 이미 3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불온서적으로 지정이 되면서 유명세를 탄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상인 뮈르달상과 레온티에프 상을 수상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불온서적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경제학자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라는 포장을 한 비정상적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 발끈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인지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장하준교수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소개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비금융 기업이 소유한 금융자산은 비금융자산의 40% 정도였으나 2000년대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조차 금융수익에 의존하는 사실상의 금융업체로 변신했다. 2003년 지이그룹 이윤의 45%가 지이캐피털에서 창출됐고, 2004년 지엠그룹은 이윤의 80%를 금융자회사 지맥(GMAC)에서 올렸으며, 2001~2003년 포드그룹의 모든 이윤은 포드파이낸스가 벌어들인 것이었다. 월스트리트를 부정한 투기수익에 취한 광란 상태로 몰아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생금융상품을 “대량금융살상무기” (Weapons of Financial Mass Destruction)라 불렀던 투자가 워런 버핏의 예언은 2008년 금융위기로 실현됐다. 금융 허브를 꿈꾸던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장 교수가 보기엔 신자유주의 강자들이 부르짖는 재정안정 등을 통한 인플레 억제와 자유로운 자본이동, 노동 유연성(고용 불안정을 가리는 미사여구)도 결국은 금융자산가들의 투기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는 장 교수는 인플레 억제정책을 “장기적 안정과 경제성장,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희생해서 금융자산 보유자들에게나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기 위해 사용해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 많은 교육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는 것도 허구라고 논박한다. 신자유주의가 유발한 고용불안으로 성적 높은 학생들이 직업적 안정성이 높은 의대나 법대 쪽으로 쏠리고, 학력 인플레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예를 들면서 그는 대학교육의 절반 정도는 생산성과는 별 상관 없는 일로 낭비되고 있다며 학력 인플레의 폐해를 이기적 영화 보기에 비유했다. “(앞쪽 관람석에서)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 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서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말이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화면을 더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6260.html

 


                   

 

 


또 다른 경제학자 스티글리츠의 신작 역시 출간되었다. 스티글리츠의 전작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Making Globalization work)를 원서로 산 덕에 읽지 않고 있는 시점에 <이단의 경제학> 에 이어 <끝없는 추락>까지 출간되었다. 사실 <스티글리츠 보고서>라는 책도 바로 얼마전에 출간되었다. 미국중심의 그것도 금융중심의 자본주의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경제학에서 스티글리츠는 그 이름값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스티글리츠 역시 자본주의경제학자인데 금융자본주의(신자유주의) 일색인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큼 소개될 자리가 적기 때문일것이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 끝은 아직 멀리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느린 기차의 난파와 같은 것이었다. … 구조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때 분명한 건 임박한 참사를 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벼랑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역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경제의 회복이 굳건한 기반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며 글로벌 경제는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새로운 비전을 담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임기응변식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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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추락>이 시종일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금융규제 완화정책과 그 사상적 이론적 배경인 시카고학파류의 시장근본주의다. 스티글리츠는 공화당 조지 부시 정권이 촉발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확연해진 미국 경제 실패의 주범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화에 집약돼 있는 시장근본주의와 금융규제 완화, 그것을 극단적인 사익 추구에 활용한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라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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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들의 시장만능을 비판해온 스티글리츠는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자체를 바꾸고 사람과 이념도 바꾸자고 말한다. 실패를 부른 정치 세력을 문제삼고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했다. 적절한 정부 개입과 확고한 금융규제를 통한 공정한 게임 룰을 새로 만들자는 얘기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5153.html


       
 


<엔트로피>,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해 온 제레미 리프킨의 전작 <유러피안 드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손에 잡은 책으로 유명하다.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민과 공정이라는 잣대를 국민에게만 강요하는 2MB는 수준차이가 너무 난다. 꾸준히 현실사회를 비판했던 제레미 리프킨이 전작부터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신작 <공감의 시대>가 인간은 공감능력의 확장을 통해 문명을 진전시켜왔다고 한다는 것을 보면.

 

그는 그간 왕성하게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때론 그 폐해를 비판하며 에너지 대안을 탐색해왔는데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는 기왕의 저작들을 아울러 인류문명의 과거와 미래의 진로에 대한 견해를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그의 견해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는 육십대 중반, 노년의 길목에서 집필한 이 책에서 인간과 인류 문명의 ‘결말’에 대한 낙관을 부여잡고, 절멸의 위기에 처한 문명의 현재상태를 조망하고 그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자고 역설한다.

 

그의 낙관은 문명의 행위자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천착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공감능력이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는 게 리프킨의 기본 생각이다. <공감의 시대>는 그 원제목이 드러내는 대로 인류 문명을 ‘공감의 문명’으로 파악한다. 리프킨은 인류 문명사를 공감이란 열쇳말로 새로이 직조할 뿐 아니라, 문명의 진전은 공감의 확장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다. 리프킨은 고대 이래 1700년 동안 인간을 본질적으로 타락한 존재라 못박았던 기독교 문명, 18~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사상가들의 견해를 차례차례 반박하면서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를 정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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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은 “지금 세계적으로 만연한 폭력은 인류사에서 흔한 일이 아니”며 “예외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뒤 지난 반세기에 걸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공감’이 보편화됐으며, 지금 이 시기 우리는 세계적 차원의 공감 의식에 바짝 다가섰다고 주장한다.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유색인종, 소수민족, 소수 종교 신봉자 등 종전엔 동료로 생각지 않았던 다른 인간에게까지 공감의 범위를 확대했다. 심지어 동물보호법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공감적 감성을 확산시켰다. “우리는 ‘다른 사람’, ‘외부인’을 몰아내는 게임의 막바지에 와 있다.”

그러면 인류문명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요컨대 리프킨은 지금 우리가 공감의 보편화, 세계화에 바짝 다가선 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멸종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역설에 놓여 있다고 답한다. 이는 ‘공감?엔트로피의 역설’이다. 역사를 통틀어 새 에너지 제도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통해 훨씬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이 기술 진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공감적 감수성을 고조시켰다. 그런데 그럴수록 에너지 사용은 급증하고 지구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다. 리프킨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손실, 곧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인류 미래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4053.html


         
 



<코끼리는 생각하지마>,<프레임전쟁>이라는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다른 투표행위를 설명했던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 출간되었다. 소개기사에서는 이번에 처음 출간된 것 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책은 <도덕의 정치>라는 책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프레임 전쟁>이 출간될 당시 세권의 책을 함께 읽었는데 <도덕의 정치>라는 책을 읽으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프레임전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어 지루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책이다.

"<코끼리…>에서 그는 2003년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나와 승리한 일을 둘러싼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 당시 캘리포니아 노조원들은 민주당 후보이자 현 주지사인 그레이 데이비스가 내건 공약이 자신들에게 유리한데도 슈워제네거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다. 여기서 저자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슈워제네거가 보여준 ‘엄한 아버지’ 모델이 당시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더 컸던 것이다.

그는 이어 현실정치의 복잡성을 ‘프레임’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프레임이란 생각의 틀로 그 틀 안에 들어오는 이야기 외에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더라도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면 전달되지 못한다. 따라서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는 프레임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며, 프레임을 만드는 건 언어라는 주장을 <프레임 전쟁>에서 펼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국내 출간 순서는 가장 늦지만 원서로는 가장 먼저 나온 책(1996년작)이다. 그런 만큼 ‘엄한 아버지’ ‘자애로운 부모’ 모델을 정립해가는 이론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 의원 선거에서 보수주의자가 승리를 거둔 94년쯤, 도덕의 비유를 연구하던 저자는 선거유세를 지켜보다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완전히 다른 도덕관을 가졌고, 양 진영의 정치담론은 상당 부분 그들의 도덕관에서 비롯된다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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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엄한 아버지’로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들에게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인생살이 또한 어렵다. 또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악에 대항해 선을 유지하려면 자제와 극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강해져야만 한다. 이들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비판하고 누진세에 반발하는 데는 이런 도덕관이 작용한다. 사회복지는 사람들을 공공의 도움에만 의지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으며 부자는 절제와 노력을 통해 꿈을 이뤘기 때문에 누진세와 같은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것은 ‘보상과 징벌의 도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 기반한 진보주의자들에게 세상이란 충만하고 공정하며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사회적 약자의 경우 사회적 지위나 건강 문제 등으로 공정한 경쟁을 제한받았기 때문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처럼 불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152128175&code=900308

 

          
 

 

장하준교수의 책은 서너권 정도 서가에 꽂혀있다. 책 내용은 그 때 그 때 파악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유일하다. 이번 신작과 더불어 올 겨울 네 명의 저자들을 책을 만나볼 생각을 해 본다. 조지 레이코프의 책은 진작에 읽었던 터라..

 

올해 노벨문학상은 페루출신 스페인작가 바르가스 요사에게 돌아갔다.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였던 만큼 아쉬움이 있는 노벨문학상이지만 여전히 한국문학이 세계로 번역되어 나가는 통로와 기회가 적다는 점에서 이를 계기로 세계문학과 소통할 수 있는 번역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달라져야 겠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 출신 스페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대가의 한 사람이지만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등의 보수적인 정치 행보로 구설에도 오른 인물이다. 청년 시절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는 그 뒤 자유시장주의자로 ‘전향’했으며, 199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중도우파 후보로 나섰다가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한 독특한 전력도 있다.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난 바르가스 요사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콜롬비아에서 성장하다가 1946년 페루로 돌아왔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문단에 데뷔한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면서 공산주의 계열의 지하 조직에 몸담기도 했다.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아에프페>(AFP) 통신 기자와 텔레비전 방송 캐스터 등으로 일했다. 그의 언론 활동은 그 뒤에도 이어져 그는 여러 매체에 이런저런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다. 지금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강의하면서 스페인의 권위있는 일간지 <엘파이스>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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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제와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역사, 그리고 개인의 은밀한 성적 욕망을 두루 다루는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국내에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어 있다. 열네 살 연상의 친척 아주머니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금지된 사랑의 유혹을 그린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새엄마를 상대로 한 소년의 에로틱한 욕망과 그것을 지켜보는 새엄마 쪽의 ‘길티 플레저’를 다룬 <새엄마 찬양>, 그리고 페루 국경 아마존 지역에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창설한 ‘특별봉사대’를 소재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페루 군부 및 사회의 모순된 행태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녹색의 집>을 비롯한 몇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이런 작품들 덕분에 바르가스 요사는 1994년 스페인어권 최고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노벨상 후보로 줄곧 거론돼 왔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올해 수상 결정 사실을 접한 뒤 “후보에 올랐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수상이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스페인어문학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2794.html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민족을 생각하면서 몇가지 의문이 들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과연 한민족이라는 틀로 묶어둘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그 시발점이다. 고등학교 시절 잠시 신화, 설화를 통해 역사를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결국은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문학이나 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나의 의문점 중에 하나는 신라의 독특한 건국설화 때문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난생신화(주몽이 알에서 태어나는)를 가지고 있는 반면 신라는 여러 신화가 엮여있다. 석탈해의 경우는 바다에서 흘러온 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신라가 복잡하게 민족이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즉, 옥저,동예처럼 한반도 토착민과 만주에서 내려온 민족 그리고 동남아,인도 등의 외부민족이 얽힌 나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백제가 멸망했을 때 신라는 적으로 여기고 일본은 형제의 나라로 여긴것도 민족의 흐름이 고구려, 백제, 일본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신라는 다른 민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한국의 성씨 중 절반이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인데... 이런 나의 관심을 만족시켜줄 만한 책이 하나 소개되었다.


독서가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가 이번에 출간되었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씨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의 ‘진보 논객’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같은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허위의식을 가차없이 통박해온 박노자씨의 본디 전공은 ‘한반도 고대사’다.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박노자씨가 처음 펴내는 고대사 대중서다. ‘우리의 위대했던 고대사’ 담론에 열광한다거나 그 고대사에 일말의 자부심을 품고 있는 이들이라면 박노자씨의 논지가 도발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국경으로 장벽을 친 땅덩이 안에 국민국가의 일원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고대사’를 보는 시각에 오늘의 민족?국가의식을 투영시키지 말 것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
 ‘남북을 초월한 이런 합의’의 밑바닥에는 구한말과 식민지시대 민족사학이 놓여 있다고 책은 말한다. 민족사의 틀이 확립된 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 시기다. 나라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신채호를 위시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 수호 정신으로 고조선과 고구려?발해의 강성함과 만주 벌판 지배를 부각시키는 민족사 쓰기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수난의 현대사’가 ‘위대했던 고대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백제를 없앤 김춘추”를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했고, 손진태는 “민족적으로 최대의 죄악”이라고 비판했다. 두 거두의 시각은 물론 일제강점기 친일파 비판과 궤를 같이한다. 박노자씨 역시 “우리가 현재적 이상들을 소급 적용해 과거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책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삼국의 싸움을 동족상잔으로, 당나라와 손잡은 신라의 행동을 배신으로 보는 태도는 “오늘날 동질화된 한인(韓人)이라는 종족적 집단의 모습을 1500년 전 과거에 투영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중?일 간 ‘(민족주의적)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바, 이 역사전쟁의 극복은 어느 한쪽의 독선적 민족주의나 다른 쪽의 자아중심적 논리가 아니라, 근대적 민족주의를 더는 고대사에 투영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1939.html



            

여전히 천안함 사건은 논란중이다. 요즘은 스크루에서 발견된 조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정부의 주장은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천안함 관련자들에 군대 사기를 문제로 법적징계를 하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가만히 있는 천안함에 북한이 몰래 어뢰를 쐈다'는 논리인데 그럼 군대는 뭐하러 있는가? 천안함이 북한이 저지른 일이라면 군대가 자신의 본분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관련자들은 모두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다음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에 대한 소개이다.
"천안함 최종보고서는 이밖에도 갖가지 모순으로 가득하다. 천안함을 두쪽 낼 정도의 어뢰가 터졌다면, 승조원들이 “총알처럼 튕겨나간다”는 민군 합동조사단 자문위원의 증언이 있는데도 최종보고서는 ‘뫼르쇠’다. 폭발은 천안함의 왼쪽에서 일어났는데, 스크루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 휜 데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선체에 붙은 흡착물은 폭발물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은 국방부가 주장하는 사고시각보다 짧게는 4분 가까이 일찍 끊겼다.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북한 어뢰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은 녹슨 어뢰추진체는 더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합조단이 이 어뢰 추진체의 것이라며 5월20일 발표한 실물 설계도가 가짜임이 밝혀져 국민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겨레>가 특종보도한 러시아 천안함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단은 이 추진체가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2개월 물속에 있었다고 판단한 국방부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다시 살펴봐도 국방부가 펴낸 천안함 최종보고서엔 “북한이 했다”는 주장은 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은 지극히 빈약하다. 달리 표현하면, 국방부는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공격당해 침몰했다는 가설을 내놓았으나 최종보고서에서도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셈이다. 한마디로 천안함과 관련한 진실은 여전히 ‘봉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가설 단계의 ‘북한 어뢰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대내외 정책들을 펴나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북풍몰이’를 해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이외의 경협을 전면 중단시켰다. 또 미국과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는 등 확연한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펴나간다. 이런 모습에 중국은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산둥반도에서 대규모 맞대응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남한 대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각종 인허가를 늦추고 있는 현상이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 정부의 이런 편향된 외교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천안함이 한반도의 안정을 급격하게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놓고 한반도 주변국들이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탓이 크다. 심지어 지난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한 국민들도 32.5%만이 정부의 ‘북한 어뢰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다.


이런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지난 9월29일 유엔 총회에 참석중인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을 이용한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부상은 또 “남조선 당국은 사건 진상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을 위하여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제기한 검열단의 현지 파견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검열단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 등 정책 변화를 ‘북한의 천안함 공격 사과’와 연계시키고 있다. 천안함과 관련해서 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갈등이 심화됐을 때 중재에 이르기가 어렵다. 한반도 정세가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구도로 짜이고 있는 속에서 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천안함 해석에 빚대어 정당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천안함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의 행보를 이런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이익을 바라는 마음들을 천안함의 봉인에 기대어 숨기는 이런 구조에서 분쟁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47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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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눈에 띄는 책은 책과 관련된 책이다. 누군가, 그 누군가의 책읽기의 고수라면,의 책읽기를 엿 볼 수 있는 책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로 대표되는 장정일과 인터넷 서평꾼으로 널리 알려진 필명 로쟈 이현우의 책이 9월에 소개되었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 지음/마티 1만3000원.


"소설가 장정일씨의 독서 습관이 참 독특하다. 그는 우선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빌린 책을 읽다 너무 아까운 좋은 책을 보게 되면, 필히 곁에 두어야 할 책을 뒤늦게 산다. 이런 검증을 거치지 않고 산 책 가운데는 읽은 뒤 버리는 것도 많다. 그는 버릴 책은 아무 공중전화 부스의 전화기 위에 놓는 방법으로 버린다고 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제목은 그의 이런 독서 습관에서 따왔다. 빌리고 사고 버리면서 인연을 맺은 책 80여권이 담겨 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건간에 책들은 나름대로 문제를 던지고, 지혜를 준다. 우선 책을 읽는 방식에 관한 책들은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가령 그는 “300쪽짜리 책을 10여분 만에 읽을 수 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류의 속독술을 “사고의 숙성을 본질로 하는 ‘책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비판한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하게 한다. 지은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 대통령이 읽은 책의 제목을 써놓지 않았고 존경하는 스승도 거론하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점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낸” 이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성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 밖에도 역사문제를 서술한 책 속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발견하거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을 통해 나 자신을 살펴보기도 한다. 독자들이라면 이런저런 책을 소개한 이 책을 통해 내가 궁금해하던 책이 빌릴 책인지, 살 책인지, 아니면 버릴 책인지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190.html

 

인터넷 서점계에서는 Yes24와 인터파크가 대기업수준이고 그 뒤로 교보문고, 알라딘 정도의 순서로 보면 된다. 그러나 영향력으로 놓고 보면 알라딘과 Yes24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지 않나 싶다. Yes24의 경우 소설연재 등으로 콘텐츠를 살렸다면 알라딘의 경우는 독서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리뷰가 대표적이다. '파란여우', '로쟈의 저공비행' 등이 대표적인 대표적인 알라딘 서평 블로그인데 그 '파란여우'는 지난해 <깐깐한 독서본능>이라는 책을 엮어냈고, '로쟈'는 <로쟈의 인문학서재>에 이어 <책을 읽을 자유>가 엮어져서 나왔다. 서평 블로그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독서와 인터넷이 만나 유저들의 공감으로 책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독서문화의 긍정적인 현상이다.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 지음/현암사 1만8000원.



"그는 책벌레다. 그것도 지독한. 아마도 우리 시대 가장 큰 위를 가진 책벌레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평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의 선두에 섰던 그의 이름은 이현우, 아니 서평꾼 로쟈다.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깊이 있고도 성실한 서평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홀대받던 인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면서, 실용서의 범람에 지쳐 있던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 로쟈가 두번째 책을 냈다. <책을 읽을 자유>는 지난 10년간 로쟈의 책 리뷰를 골라 묶은 책이다. 주제별로 수백권의 책들이 들어서 있는 모양은 도서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로쟈만의 분류법으로 가꿔져 있으며, 또 언제나 그렇듯 꼼꼼하고 진지한 서평들이 함께한다. 때로는 일부 책들의 오류에 대해 꽤 신랄하게 짚어내고 있어, 독자로서는 거대한 책의 바다를 항해할 때 요긴한 항해도를 얻은 기분이 든다.

 

책 첫머리에서 지은이는 자신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바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라 고백한다. 매일 갈아먹어야 할 양식에 물렸던 시간들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끔찍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바로 ‘책을 읽을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로쟈가 이 자유를 정말 만끽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올가을 이 땅의 책벌레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은혜로운 양식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24.html

 

9월에 소개된 책들 중 위 두 권은 작은 기사로 처리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갔던 책이다. <공부> 이후에 만난 장정일의 책이 반갑고, 블로그 서평의 지평을 계속 넘기는 로쟈의 책도 곧 읽어보고 싶다. (참고로 말하자면 알라딘에서 책을 고를 때 로쟈님의 설명이 있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내가 책을 구매할 때 판단기준이 되고 있는 서평 블로그이다.)

로쟈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http://blog.aladdin.co.kr/mramor

 

 

조지 오웰의 책을 모으고 있거나 조지 오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소장목록을 더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1만8000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그런 따위의 욕구다. <1984>와 <동물농장>을 쓴 치열한 작가이자 <카탈루냐 찬가>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 위대한 기자였던 오웰이 고백하는, 글쓰기의 제1 동기다.

......

오웰은 글을 쓰게 하는 힘을 네 가지 욕구로 꼽는다. ‘순전한 이기심’에 뒤이은 제2, 제3의 동기는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인바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주는 묘미,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다. 글꼴이나 여백 따위에 대한 매혹일 수도 있다. ‘역사적 충동’은 기록 욕망이다. 사물을 있는 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보존하려는 욕구다. 영국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삶을 기록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스페인 내전 참전기 <카탈루냐 찬가>를 쓴 기자 오웰이 고백하는 글을 쓰는 이유다.

 

영어판만 해도 4천만부 넘게 팔렸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오웰이 꼽는, 글을 쓰는 마지막 네번째 욕구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다. 정치와 예술의 분리 담론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오웰은 말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오웰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술은 정치적으로 무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라는 주장은 우리나라 문학, 예술이 새겨 들을 말이다. 순수문학, 순수예술이라는 족보도 없는 용어를 만들어 낸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들여다 보면 순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치적 행태를 볼 수 있다. 순수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2MB 정권의 문화정책이야말로 얼마나 정치적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02.html

 


〈한국의 학생, 교사, 시민이 함께 읽는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
모니크 아벨라르 외 지음?유재명 외 옮김/휴머니스트 6만원


 

시절이 21세기인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교과서라는 허튼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구하기가 힘든 시절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 교과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대중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 대한 연구가 발전되었고 교양 수준 또한 높아진 그리고 언제 어디서난 원하는 지식을 찾을 수 있는 21세기의 교과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3~40년전으로 돌려놓은 2MB는 교과서에 대해서도 과거로 돌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만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검인정 문제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데 2MB 정부에서 가장 우려할 사안은 바로 이 교육에 대한 문제이다.
프랑스 사회경제 교과서가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곧바로 서점으로 향했지만 아쉽게도 손에 넣지는 못했다. 책 크기에 의심스럽게 본 가격은 6만원이었다. 아쉽지만 내려놓고 말았던 책이지만 언젠가는 정독을 해봐야 할 책이다.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전국사회교사모임 소속 교사 네 명은 “프랑스의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를 통해 우리 교육 현실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번역 출간을 기획한 교과서는 프랑스에서 보급률 2위로 알려진 나탕 출판사의 교과서다. 일반계열 고등학교에서 2학년 경제사회 전공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이며, 원제를 그대로 풀이하면 ‘경제사회학’이다.

교과서 자체만 서로 견줘보자면, 우리 교과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를 보면, 국내에서 벌어진 쇠고기 판매업자들의 짬짜미(담합)에서부터 파업?노사갈등과 같은 경제주체들끼리의 갈등, 사회 불평등 등 온갖 현실의 문제가 그대로 제시된다. 그렇지만 다양한 관점의 책과 신문기사 따위를 근거 자료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편향된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토론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있다.

우리 교과서는 어떤가? 김원태씨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 갈수록 교과서가 추상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교과서에서 ‘정당활동’을 설명하는 단원에 생뚱맞게 미국의 전당대회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야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여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냥 외국의 사진을 쓴다는 것이다. 천희완씨는 “학문 분과에 맞춰 경제?사회?정치?법 등을 따로따로 가르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경제?사회 영역을 통합해 가르치는 프랑스 교과서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교과서는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남몰래 감추고 있어서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정년퇴임 뒤 프랑스의 교육체제에 대한 연구로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송용구씨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프랑스 교과서와 달리, 우리 교과서에서는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견해가 마치 객관적인 사실처럼 제시된다”고 지적했다. 이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 만능주의라고 한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 첫 장의 제목은 ‘다양한 사회관계’다. 여기에서는 공동체 관계, 상업적 관계, 사회관계와 정치적 관계를 차례로 제시하고,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시민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룬다. 이것은 교과서 전체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하다. 엄인수씨는 “프랑스 교과서가 어떤 시민을 길러낼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는 반면, 우리 교과서에서는 어떤 주제의식도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김원태씨는 “결국 ‘합리적 경제주체’로서 이익을 좇는 개인에 대한 강조만 두드러질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9255.html


 
〈톨스토이〉
앤드루 노먼 윌슨 지음 이상룡 옮김/책세상 3만8000원


 
올해는 톨스토이 사후 100년이란다. 이쯤 되면 톨스토이에 대한 붐이 한번 쯤 불어야 할텐데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톨스토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외국작가 아닌가.
톨스토이 100년 기념으로 톨스토이 읽기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봤다. 톨스토이에 대한 책이 아마도 여러 권 쓰여졌을 것이고 올 해 말쯤 해서 몇 권 국내에 소개될 터이니 소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가난하고 순박한 농민들 속에서 안식처를 발견하고자 했던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은 귀족 출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공작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백작이었다. 톨스토이의 삶에서 특히 어머니 혈통은 근원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영지와 저택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톨스토이의 저택 ‘야스나야 폴랴나’(‘숲속의 밝은 터’라는 뜻)가 있었다. 어머니는 볼콘스키 공작의 외동딸이었다. 공작이 죽은 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영지와 농노와 저택을 지참금으로 삼아 톨스토이 백작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다섯 아이를 낳았고, 레프 톨스토이는 그 중 넷째였다. 어머니는 레프가 두 살 때, 아버지도 레프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레프는 19살이 됐을 때 부모의 유산을 받았는데, 당시의 관습대로 막내아들인 그에게 부모가 살던 저택과 영지가 할당됐다.

톨스토이의 내적 모순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것은 ‘탕자와 성자’ 사이의 모순일 것이다. 그의 내부에서 탕자와 성자는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리며 싸웠고, 특히 젊은 시절 내내 탕자는 날뛰는 말처럼 톨스토이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았다. 10대 청소년기에 정욕의 세계에 눈을 뜬 톨스토이는 끝없는 색탐으로 정열을 낭비했다.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월이었다. 그런 방탕중에 19살 톨스토이는 성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계속될 습관의 시작이었다. 그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에 내가 유용한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 나는 내 온 생을 걸고 소중한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탕자의 방황은 쉬 끝나지 않았다. 1851년 군대에 들어간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삶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군대에 있던 5년 동안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62년 서른네 살의 톨스토이는 베르스 가문의 둘째딸 소피아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톨스토이에게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러시아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쓸 정신적 안정을 주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뒤로 갈수록 격렬해질 불화, “결혼의 역사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증오가 가득한 가정 불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고 난 뒤, 1878년 영적인 각성을 한 쉰 살의 톨스토이는 새로운 종교적 삶으로 난 길을 걷는 구도자가 되고, 마침내는 성자의 위엄을 얻게 된다고 이 전기는 말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26.html

 


 〈9시의 거짓말〉
최경영 지음/시사인북•1만2000원



"<9시의 거짓말>은 한국 언론의 뿌리깊은 병폐를 기자 스스로가 냉철하게 따지고 드는, 이를테면 ‘내부고발’을 하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인 최경영 <한국방송>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여섯차례 수상하는 등 탐사보도 영역에서 인정을 받아왔으나, 2008년 정연주 전 사장 해임 등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케이비에스 사원행동’ 활동을 펼쳤다. 덕분에 스포츠중계팀으로 보복성 인사발령을 받았고, 지금은 일을 쉬며 미국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책 속에서 현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의 실체나 그 앞에서 무력한 방송사의 속사정 등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의 내부고발은 한국 언론 전체에 뿌리 박혀 있는 병폐를 겨냥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만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언론에 대해, 그는 “한국 언론은 몰상식하다”고 일격을 날린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극우 언론들이 한동안 잘 써먹던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정말로 세금이 줄어들어서일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국가 경제에 치명타’라고 부르대던 언론들은 왜 그룹 총수의 탈세와 배임 혐의 등에 대해서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을까? 지은이는 “한국 언론은 사회경제적 강자, 곧 권력과 기업의 편”이라고 지적한다. 강자의 편에 서서 진실보도보다는 당장 돈 되는 보도를 앞세우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추정과 편견을 사실로 만드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인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회의하는’ 인간이 아닌, 월급쟁이로서 ‘조직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런 시스템에서 나오는 뉴스는 ‘그 나물에 그 밥’과 같이 싸구려 일용품이 된다.

.....

지은이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비싼 뉴스’의 전달이야말로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 버는 것이 목적인 투자자 버핏의 상식보다도 못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갈아엎어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할 것인가? 그는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라며 “한국의 대형 언론사들은 소비자인 대중의 저항 없이 그들의 이익과 권리를 결코 스스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196.html

 

이외에도 김규항의 <B급좌파> 세번째 편 기사를 관심깊게 읽었다. 내년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처지에 '두 아이 키우기'에 대한 글들이 있다는 점이 눈에 더 들어왔다. 더불어 먹거리 관련 책 기사들도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중국음식문화사>와 <식전-팬더곰의밥상견문록>은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다.

 

올 해 여름 '한국전쟁읽기'는 어느 정도 마쳤는데 정작 교과서처럼 읽은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요 근래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글을 읽는 중이고 아울러 일본문화에 대한 책을 읽고는 있는데 후기 올리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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