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눈에 띄는 책은 책과 관련된 책이다. 누군가, 그 누군가의 책읽기의 고수라면,의 책읽기를 엿 볼 수 있는 책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로 대표되는 장정일과 인터넷 서평꾼으로 널리 알려진 필명 로쟈 이현우의 책이 9월에 소개되었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 지음/마티 1만3000원.


"소설가 장정일씨의 독서 습관이 참 독특하다. 그는 우선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빌린 책을 읽다 너무 아까운 좋은 책을 보게 되면, 필히 곁에 두어야 할 책을 뒤늦게 산다. 이런 검증을 거치지 않고 산 책 가운데는 읽은 뒤 버리는 것도 많다. 그는 버릴 책은 아무 공중전화 부스의 전화기 위에 놓는 방법으로 버린다고 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제목은 그의 이런 독서 습관에서 따왔다. 빌리고 사고 버리면서 인연을 맺은 책 80여권이 담겨 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건간에 책들은 나름대로 문제를 던지고, 지혜를 준다. 우선 책을 읽는 방식에 관한 책들은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가령 그는 “300쪽짜리 책을 10여분 만에 읽을 수 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류의 속독술을 “사고의 숙성을 본질로 하는 ‘책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비판한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하게 한다. 지은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 대통령이 읽은 책의 제목을 써놓지 않았고 존경하는 스승도 거론하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점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낸” 이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성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 밖에도 역사문제를 서술한 책 속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발견하거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을 통해 나 자신을 살펴보기도 한다. 독자들이라면 이런저런 책을 소개한 이 책을 통해 내가 궁금해하던 책이 빌릴 책인지, 살 책인지, 아니면 버릴 책인지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190.html

 

인터넷 서점계에서는 Yes24와 인터파크가 대기업수준이고 그 뒤로 교보문고, 알라딘 정도의 순서로 보면 된다. 그러나 영향력으로 놓고 보면 알라딘과 Yes24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지 않나 싶다. Yes24의 경우 소설연재 등으로 콘텐츠를 살렸다면 알라딘의 경우는 독서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리뷰가 대표적이다. '파란여우', '로쟈의 저공비행' 등이 대표적인 대표적인 알라딘 서평 블로그인데 그 '파란여우'는 지난해 <깐깐한 독서본능>이라는 책을 엮어냈고, '로쟈'는 <로쟈의 인문학서재>에 이어 <책을 읽을 자유>가 엮어져서 나왔다. 서평 블로그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독서와 인터넷이 만나 유저들의 공감으로 책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독서문화의 긍정적인 현상이다.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 지음/현암사 1만8000원.



"그는 책벌레다. 그것도 지독한. 아마도 우리 시대 가장 큰 위를 가진 책벌레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평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의 선두에 섰던 그의 이름은 이현우, 아니 서평꾼 로쟈다.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깊이 있고도 성실한 서평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홀대받던 인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면서, 실용서의 범람에 지쳐 있던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 로쟈가 두번째 책을 냈다. <책을 읽을 자유>는 지난 10년간 로쟈의 책 리뷰를 골라 묶은 책이다. 주제별로 수백권의 책들이 들어서 있는 모양은 도서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로쟈만의 분류법으로 가꿔져 있으며, 또 언제나 그렇듯 꼼꼼하고 진지한 서평들이 함께한다. 때로는 일부 책들의 오류에 대해 꽤 신랄하게 짚어내고 있어, 독자로서는 거대한 책의 바다를 항해할 때 요긴한 항해도를 얻은 기분이 든다.

 

책 첫머리에서 지은이는 자신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바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라 고백한다. 매일 갈아먹어야 할 양식에 물렸던 시간들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끔찍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바로 ‘책을 읽을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로쟈가 이 자유를 정말 만끽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올가을 이 땅의 책벌레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은혜로운 양식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24.html

 

9월에 소개된 책들 중 위 두 권은 작은 기사로 처리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갔던 책이다. <공부> 이후에 만난 장정일의 책이 반갑고, 블로그 서평의 지평을 계속 넘기는 로쟈의 책도 곧 읽어보고 싶다. (참고로 말하자면 알라딘에서 책을 고를 때 로쟈님의 설명이 있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내가 책을 구매할 때 판단기준이 되고 있는 서평 블로그이다.)

로쟈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http://blog.aladdin.co.kr/mramor

 

 

조지 오웰의 책을 모으고 있거나 조지 오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소장목록을 더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1만8000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그런 따위의 욕구다. <1984>와 <동물농장>을 쓴 치열한 작가이자 <카탈루냐 찬가>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 위대한 기자였던 오웰이 고백하는, 글쓰기의 제1 동기다.

......

오웰은 글을 쓰게 하는 힘을 네 가지 욕구로 꼽는다. ‘순전한 이기심’에 뒤이은 제2, 제3의 동기는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인바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주는 묘미,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다. 글꼴이나 여백 따위에 대한 매혹일 수도 있다. ‘역사적 충동’은 기록 욕망이다. 사물을 있는 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보존하려는 욕구다. 영국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삶을 기록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스페인 내전 참전기 <카탈루냐 찬가>를 쓴 기자 오웰이 고백하는 글을 쓰는 이유다.

 

영어판만 해도 4천만부 넘게 팔렸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오웰이 꼽는, 글을 쓰는 마지막 네번째 욕구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다. 정치와 예술의 분리 담론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오웰은 말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오웰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예술은 정치적으로 무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라는 주장은 우리나라 문학, 예술이 새겨 들을 말이다. 순수문학, 순수예술이라는 족보도 없는 용어를 만들어 낸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들여다 보면 순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치적 행태를 볼 수 있다. 순수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2MB 정권의 문화정책이야말로 얼마나 정치적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02.html

 


〈한국의 학생, 교사, 시민이 함께 읽는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
모니크 아벨라르 외 지음?유재명 외 옮김/휴머니스트 6만원


 

시절이 21세기인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교과서라는 허튼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구하기가 힘든 시절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 교과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대중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 대한 연구가 발전되었고 교양 수준 또한 높아진 그리고 언제 어디서난 원하는 지식을 찾을 수 있는 21세기의 교과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3~40년전으로 돌려놓은 2MB는 교과서에 대해서도 과거로 돌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만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검인정 문제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데 2MB 정부에서 가장 우려할 사안은 바로 이 교육에 대한 문제이다.
프랑스 사회경제 교과서가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곧바로 서점으로 향했지만 아쉽게도 손에 넣지는 못했다. 책 크기에 의심스럽게 본 가격은 6만원이었다. 아쉽지만 내려놓고 말았던 책이지만 언젠가는 정독을 해봐야 할 책이다.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전국사회교사모임 소속 교사 네 명은 “프랑스의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를 통해 우리 교육 현실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번역 출간을 기획한 교과서는 프랑스에서 보급률 2위로 알려진 나탕 출판사의 교과서다. 일반계열 고등학교에서 2학년 경제사회 전공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이며, 원제를 그대로 풀이하면 ‘경제사회학’이다.

교과서 자체만 서로 견줘보자면, 우리 교과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를 보면, 국내에서 벌어진 쇠고기 판매업자들의 짬짜미(담합)에서부터 파업?노사갈등과 같은 경제주체들끼리의 갈등, 사회 불평등 등 온갖 현실의 문제가 그대로 제시된다. 그렇지만 다양한 관점의 책과 신문기사 따위를 근거 자료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편향된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토론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있다.

우리 교과서는 어떤가? 김원태씨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 갈수록 교과서가 추상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교과서에서 ‘정당활동’을 설명하는 단원에 생뚱맞게 미국의 전당대회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야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여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냥 외국의 사진을 쓴다는 것이다. 천희완씨는 “학문 분과에 맞춰 경제?사회?정치?법 등을 따로따로 가르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경제?사회 영역을 통합해 가르치는 프랑스 교과서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교과서는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남몰래 감추고 있어서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정년퇴임 뒤 프랑스의 교육체제에 대한 연구로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송용구씨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프랑스 교과서와 달리, 우리 교과서에서는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견해가 마치 객관적인 사실처럼 제시된다”고 지적했다. 이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 만능주의라고 한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 첫 장의 제목은 ‘다양한 사회관계’다. 여기에서는 공동체 관계, 상업적 관계, 사회관계와 정치적 관계를 차례로 제시하고,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시민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룬다. 이것은 교과서 전체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하다. 엄인수씨는 “프랑스 교과서가 어떤 시민을 길러낼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는 반면, 우리 교과서에서는 어떤 주제의식도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김원태씨는 “결국 ‘합리적 경제주체’로서 이익을 좇는 개인에 대한 강조만 두드러질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9255.html


 
〈톨스토이〉
앤드루 노먼 윌슨 지음 이상룡 옮김/책세상 3만8000원


 
올해는 톨스토이 사후 100년이란다. 이쯤 되면 톨스토이에 대한 붐이 한번 쯤 불어야 할텐데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톨스토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외국작가 아닌가.
톨스토이 100년 기념으로 톨스토이 읽기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봤다. 톨스토이에 대한 책이 아마도 여러 권 쓰여졌을 것이고 올 해 말쯤 해서 몇 권 국내에 소개될 터이니 소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가난하고 순박한 농민들 속에서 안식처를 발견하고자 했던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은 귀족 출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공작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백작이었다. 톨스토이의 삶에서 특히 어머니 혈통은 근원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영지와 저택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톨스토이의 저택 ‘야스나야 폴랴나’(‘숲속의 밝은 터’라는 뜻)가 있었다. 어머니는 볼콘스키 공작의 외동딸이었다. 공작이 죽은 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영지와 농노와 저택을 지참금으로 삼아 톨스토이 백작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다섯 아이를 낳았고, 레프 톨스토이는 그 중 넷째였다. 어머니는 레프가 두 살 때, 아버지도 레프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레프는 19살이 됐을 때 부모의 유산을 받았는데, 당시의 관습대로 막내아들인 그에게 부모가 살던 저택과 영지가 할당됐다.

톨스토이의 내적 모순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것은 ‘탕자와 성자’ 사이의 모순일 것이다. 그의 내부에서 탕자와 성자는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리며 싸웠고, 특히 젊은 시절 내내 탕자는 날뛰는 말처럼 톨스토이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았다. 10대 청소년기에 정욕의 세계에 눈을 뜬 톨스토이는 끝없는 색탐으로 정열을 낭비했다.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월이었다. 그런 방탕중에 19살 톨스토이는 성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계속될 습관의 시작이었다. 그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에 내가 유용한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 나는 내 온 생을 걸고 소중한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탕자의 방황은 쉬 끝나지 않았다. 1851년 군대에 들어간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삶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군대에 있던 5년 동안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62년 서른네 살의 톨스토이는 베르스 가문의 둘째딸 소피아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톨스토이에게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러시아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쓸 정신적 안정을 주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뒤로 갈수록 격렬해질 불화, “결혼의 역사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증오가 가득한 가정 불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고 난 뒤, 1878년 영적인 각성을 한 쉰 살의 톨스토이는 새로운 종교적 삶으로 난 길을 걷는 구도자가 되고, 마침내는 성자의 위엄을 얻게 된다고 이 전기는 말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0426.html

 


 〈9시의 거짓말〉
최경영 지음/시사인북•1만2000원



"<9시의 거짓말>은 한국 언론의 뿌리깊은 병폐를 기자 스스로가 냉철하게 따지고 드는, 이를테면 ‘내부고발’을 하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인 최경영 <한국방송>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여섯차례 수상하는 등 탐사보도 영역에서 인정을 받아왔으나, 2008년 정연주 전 사장 해임 등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케이비에스 사원행동’ 활동을 펼쳤다. 덕분에 스포츠중계팀으로 보복성 인사발령을 받았고, 지금은 일을 쉬며 미국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책 속에서 현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의 실체나 그 앞에서 무력한 방송사의 속사정 등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의 내부고발은 한국 언론 전체에 뿌리 박혀 있는 병폐를 겨냥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만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언론에 대해, 그는 “한국 언론은 몰상식하다”고 일격을 날린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극우 언론들이 한동안 잘 써먹던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정말로 세금이 줄어들어서일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국가 경제에 치명타’라고 부르대던 언론들은 왜 그룹 총수의 탈세와 배임 혐의 등에 대해서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을까? 지은이는 “한국 언론은 사회경제적 강자, 곧 권력과 기업의 편”이라고 지적한다. 강자의 편에 서서 진실보도보다는 당장 돈 되는 보도를 앞세우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추정과 편견을 사실로 만드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인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회의하는’ 인간이 아닌, 월급쟁이로서 ‘조직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런 시스템에서 나오는 뉴스는 ‘그 나물에 그 밥’과 같이 싸구려 일용품이 된다.

.....

지은이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비싼 뉴스’의 전달이야말로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 버는 것이 목적인 투자자 버핏의 상식보다도 못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갈아엎어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할 것인가? 그는 “언론의 자유는 대중의 자유”라며 “한국의 대형 언론사들은 소비자인 대중의 저항 없이 그들의 이익과 권리를 결코 스스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196.html

 

이외에도 김규항의 <B급좌파> 세번째 편 기사를 관심깊게 읽었다. 내년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처지에 '두 아이 키우기'에 대한 글들이 있다는 점이 눈에 더 들어왔다. 더불어 먹거리 관련 책 기사들도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중국음식문화사>와 <식전-팬더곰의밥상견문록>은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다.

 

올 해 여름 '한국전쟁읽기'는 어느 정도 마쳤는데 정작 교과서처럼 읽은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요 근래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글을 읽는 중이고 아울러 일본문화에 대한 책을 읽고는 있는데 후기 올리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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