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A 테라 :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 -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의 기록
리처드 험블린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테라 :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이라는 이름의 책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광포한 지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소재는 다음과 같다.


 -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1783년 유럽기상이변

 -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

 

지은이가 이 네가지 주제를 선택한 것은 '지구와 대기사이의 상호연관과 과정에 대한 많은 실마리를 제공했고, 각 사건이 과학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선별되었다.' 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지진을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사건이다. 본격적으로 지진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지진학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리스본은 가장 종교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자연재해를 신의 심판으로 보던 신중심의 세계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또한 리스본 대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유럽 각국의 원조가 있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당시 협력관계였던 영국의 원조가 컸고, 반대로 프랑스의 경우는 원조를 하지 않았지만 국제 원조의 시초가 된 사건이다. 이 뿐만 아니라 카르발류(폼발 후작)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지진피해 파악과 재건은 재난관리의 기틀을 닦았다.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가 대두되긴 하였지만 종교재판(개신교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한)등 종교의 힘이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때에 리스본 대지진은 본격적으로 신중심 사회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1783년 유럽은 이상했다. 몇달씩 운무(짙은 안개)가 유럽전역을 뒤덮었고, 잦은 폭풍우와 낙뢰에 의한 피해가 지속되었다. 이 사건은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가 지속되면서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대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철학자 및 과학자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신학적인 설명이 아닌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하게 된다. 아직 언론이 제 모습을 갖추기 전이었지만 언론들은 대기 불안정 현상에 대해 특집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언론의 역할이 점차 커지게 된다.

이 때 유럽에 거주했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피뢰침을 발명하게 된다. 파리의 한 집에서 피뢰침을 설치하려고 하자 종교적인 이유로 이웃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후에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르피에르가 이 사건의 변호를 맞게 된다. 기상이변을 더 이상 신의 섭리로 보지 않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에 있는 크라카타우 화산폭발은 역사상 최고의 폭발 화산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동인도회사 등 주변에 많은 상선들이 정박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이 화산폭발을 경험했다. 자바와 수마트라 섬에는 수십미터의 쓰나미가 닥쳤다.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은 최초로 세계적으로 연구된 화산폭발이다. 당시 발명된 전신기술의 발달로 화산에 대한 소식이 즉각 전세계로 타전되었고,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화산폭발의 심각성과 화산폭발로 인한 기상효과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는 태평양에 쓰나미 경보시스템이 만들어지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힐로 섬에 쓰나미가 닥쳐 섬을 쑥대밭으로 만들 당시 미국의 비키니섬 원폭실험이 계획되어 있어 많은 과학자들이 하와이에 머물러 있었다. 해양학자들은 즉각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를 토대로 쓰나미 경보시스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왔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과학적인 대응책을 낸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재해의 힘은 과학을 무력화 시키곤 하고, 인간이 항상 재해관리에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질학자들이 일본 동해에서 지진이 날 것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것은 올해 일본 동북부지역 지진해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예측했다고 해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 30년 이내에 지진이 날 확률~'이라는 식의 예측은 실제적인 경고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예측 후에 예측지점이 아닌 간사이 지역 고베에서 1990년대 초반 지진이 발생해 버려 과학자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하와이 경보시스템의 경우는 1946년 쓰나미 이후 효과적인 경보체계로 자리잡았지만 경보가 내려졌다고 항상 쓰나미가 닥친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경보에도 쓰나미가 오지 않자 사람들은 경보체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칠레 지진에 의해 힐로 지역은 다시 쓰나미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경험하게 된다.

 

재난관리가 오히려 퇴보되는 모습도 보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미국 남서부지역이 초토화되었지만 재해복구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 복구가 되지 않았다. 재난관리를 시작하는데도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190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는 지진 발생 하루만에 연방정부에 의한 복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카트리나 피해에 있어서는 100년 전 보다 못한 대비책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쓰나미의 경우 몇 몇 학자들에 의해 쓰나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전달할만한 네트워크가 동남아시아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쓰나미가 발생해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해당지역은 정보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는 이런 경보체계에 대한 비용도 관련이 되어 있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경보체계에 대한 예산을 아까워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경제상황도 역할을 했을 테지만,

 

때로는 과학보다 경험이 앞서기도 한다. 쓰나미에 대해 원주민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일본의 격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 바다가 갑자기 사라지면(멀어지면) 최대한 바다에서 멀리 도망가라는 옛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할로 쓰나미 당시 공사중이던 인부(원주민)들은 바다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경고했지만 문명인들(? 백인들)은 재미있는 광경이라며 오히려 바다를 보려고 했다.

개발관련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 동남아시아 쓰나미에 있어서도 방글라데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 맹그로브 숲과 산호숲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는 쓰나미의 완충작용을 했다. 개발의 한가운데 있던 휴양지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장면이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통해 발전 해 왔지만 그것이 항상 발전만은 아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개발은 인간을 더 위험한 환경에 내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점 더 지질학적으로 위험한 곳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다. 광포한 지구와 인간의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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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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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리스본은 지리상 발견의 시대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스페인과 더불어 15,16세기 활발한 해외 탐험을 통해 교역로를 확보하고 신대륙의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 신대륙(브라질)에서 발견된 금광은 리스본을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리스본은 또한 가장 강력한 카톨릭 국가의 하나였다. 막대한 부로 로마 교황청의 최대 후원자였으며 유럽내 가장 독실한 카톨릭국가였다. 이는 제2차 십자군 원정당시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 리스본의 종교재판소는 많은 이들을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화형에 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1755년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 불리던 만성절이었다. 리스본의 모든 이들이 미사를 보려던 시점 땅은 크게 요동쳤다. 저 멀리 스코틀랜드까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큰 지진은 90분 후 세차례의 큰 해일로 리스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처음 지진이 나고 사람들은 지진에서 안전해 보인 해안가로 몰려들었는데 이후 닥친 해일을 피할 수 없었다. 리스본의 모든 것들은 무너졌고 왕조차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직자들은 리스본의 타락을 이야기했고 신의 징벌이라 외치며 회개를 강요했다. 무너져 버린 왕궁탓에 천막으로 된 임시처소에 머문 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도를 옮겨야 된다는 이 부터 회개를 이야기하는 성직자들 틈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한 카르발류라는 대신이 왕을 알현했다 그는 왕에게 " 죽은자를 묻고 산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답을 한 사람이었다. 카르발류는 곧 왕의 전권을 뒤에 엎고 지진 현장에 나타난다.

 

그는 곧 병력을 동원하고 피난한 건장한 남자들을 소집해 시신을 수습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는 전염병의 창궐을 막게 된 것이다. 이 후 무너진 리스본 재건에 나선다. 평민출신에서 리스본 도시 건설 최고 책임자가 된 마이아의 제안으로 수직으로 반듯한 도로, 대칭적인 건물, 거대한 광장으로 리스본을 재설계했다. 4층 높이의 건물과 넓은 도로를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둔 리스본 재건계획은 곧 귀족과 성직자들의 반발을 산다. 집으로 평민들과 차별을 두어야만 했던 귀족들은 건축의 통일성속에 전복적인 평등사상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리스본 재건계획은 더디어 갔지만 계몽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카르발류의 독재덕에 리스본은 새로운 세계를 맞게 된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리스본의 아름다운 도시미학은 바로 이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카르발류는 곧 지진의 피해를 조사하게 되는데 지금의 시각으로야 아주 단순한 질문이지만 지진이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지진의 피해는 어떤지, 그리고 지진에 의해 어떤 구축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와 인명피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여기에는 종교적인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리스본의 재건 과정까지 살펴봤을 때 카르발류는 근대 재난관리의 장을 열었다.

 

사실 이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히 지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의 지성들에게도 큰 사건이었고, 유럽인들에게도 큰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도시가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된 것은 유럽에서는 처음 있는 일었다.  상식적이었던 유럽의 철학자들 눈에 신의 징벌이라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 당시 리스본은 종교적인 도시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와의 갈등이 있었긴 하였지만 철학자들이 보기에 신의 징벌이 될만한 도시들은 따로 있었다. 즉시 볼테르는 그이 낙관주의 철학을 버렸고 루소 또한 지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지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당시 낙관적 계몽주의는 인간이 얼마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냐며 이성과 신학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리스본 대지진으로 이런 낙관적 계몽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성인의 축제일에 일어난 이러한 사건은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왔다. 바로 볼테르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여전히 고집스러웠다. 개신교는 리스본 대지진을 카톨릭이 가지고 있던 무자비한 종교재판소와 종교적 차이에 의한 신의 징벌이라고 봤다는 점에서 카톨릭과 다름 없었다. 칼뱅파를 위시한 개신교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이런 비판에 앞장섰는데 근본적으로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종교적인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남아시아를 휩쓸었던 쓰나미에 이슬람은 그들이 코란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비기독교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해서 미국의 목사들은 신의 징벌임을 강조했다. 이번 일본 동북부지역의 지진에 대해서 한국의 대표적인 목사들 또한 신의 징벌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1755년과 지금의 종교가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른지 궁금하다.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신의 징벌이라는 무지한 논리를 편 반면 영국성공회는 자연재해 보다 매일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오히려 더 놀랍다며 이런 광신도적인 접근에 우려를 표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접근을 보였다.

 

인간은 아직도 지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직 지진에 대한 완벽한 이론도 없다. 하지만 리스본 대지진 이후 더디지만 지진 연구의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단순히 지진에 대해서만 알아간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라는 인간에 대한 이성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 뒤에 리스본 대지진을 통해 신중심주의와 결별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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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매티스 레비 외 / 기문당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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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을 쑥더미로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지진이었다. 이 지진은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까지 충격이 있을정도였다. 특히 '성인의날(카톨릭종교의 날)'에 발생한 이 지진에 성직자들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신의 경고라 하였고, 많은 이들이 성직자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마르쿠에스데 폼발이라는 사람에 의해 건물들은 다시 수리되었고, 전염병이 돌기 전 죽은자들을 매장하도록 하였다. 신의 징벌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진은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한 그에 의해 리스본은 재건되었다. 그리고 이 때 부터 지진이 문서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진학의 시초가 되었다.


리스본 지진이 일어난 후 캠브리지대학의 지질학자에 의해 지진파가 제시되었고 이후 연구를 통해 지구과학시간에 배웠던 P파와 S파가 발견되었다. 지진파의 발견은 지구내부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지진의 신비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진원이 어디인지 지진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지진에 위험한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판구조론. 일본의 경우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그리고 작은 필리핀판의 경계에 있어 지진 및 화산에 취약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인지적한계 때문에, 지구과학시간에 배웠음에도 불구하고,지구는 멈춰있는것으로 지각은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무식하게도 일본동북부 지역의 지진에 대해서 신의 징벌 운운하는 목사들이 있다. (우스운 점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라 하는 자들이 불법, 헌금횡령, 돈선거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인데 신이 징벌하려고 했다면 과연 누구를 했을까.) 아직 지구에 대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일부분이다. 아직 지구 내부까지 관찰도 못했다. 그럼에도 여러 실험으로 지구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일단 지각은 핵과 맨틀위에 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지각에 대해서 대륙설, 대양설등이 있었는데 1950년대 태평양 및 대양에 해령(해저산맥)이 발견되면서 판구조론이 받아들여졌다. 판구조론으로 지진과 화산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판과 판이 마주하는 곳에서는 쉼없이 지각운동이 일어난다. 물론 인간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지만. 그 태평양판의 양쪽 끝에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가 존재한다. 지진에 의한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지진의 예측에 많은 연구를 쏟아붇고 있지만 지구는 쉽게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은 지진을 경험하면서 지진에 대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진을 예측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지진과 건물의 진동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진시 건축물이 파손되지 않도록 내진설계를 하게 된다. 콘크리트 기초구축물을 강화해 튼튼한 건물을 지으려는 노력에 진동에 건물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지하를 이용하거나 인위적인 가력기를 통해 지진시 건물에도 동일한 진동을 강제하는 방법 등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여러 면진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림. 미국의 경우 보통 1층을 차고로 사용하면서 약한 벽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지진 발생시 집이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는데 여기서 면진의 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1층이 찌그러지면서 2층 이상의 부분이 안정적인 형태로 그대로 주저 앉았는데 지하층에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건물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이렇게 지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지진학의 탄생, 지진 그리고 면진 및 대처방안까지 지진에 집중된 이야기를 한다.  특히 다양한 도표와 그림이 사용되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L.A 지역의 지진의 위험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주변에는 3개의 단층과 숨겨진 1개의 단층이 있는데 1994년의 지진에 숨겨진 단층이 수평단층을 노출시켰는데 과거와는 다른 큰 지진피해를 나타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판되어서 도서관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후기를 남기며 조회해보니 다시 판매가 되고 있다.)


또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1923년 관동대지진 설명 말미에 지진과 화재 후의 공포상황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불을 질렀다 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체포되었지만 질서가 회복되어 풀려났다고 한 부분이다. 실제로는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이 있었는데 단순히 일본측 자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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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 지진과 해일은 예측이 가능한가 고정관념 Q 12
크리스토프 부아쟁 지음, 한정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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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지구상에는 하루에 수차례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거대한 지진 역시 며칠에 한번씩 발생하는데 지표면에서 멀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친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일본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발생은 해구형지진으로 대규모 쓰나미를 일으켰고 쓰나미에 의한 피해가 무엇보다 크다.


날씨도 예보를 하는데 지진은 왜 못할까? 여기에는 사실 결정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지진을 예측하는 방법에도 큰 문제가 있지만 과학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오류를 감안한 예측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진학자들은 언제든 특정 오류를 범한 채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 주민들의 반응 역시 지진 자체보다 예측하기 쉽지 않다. 재난의 예고는 광범위한 불안을 유발하고 인간성 상실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학력이 높은 주민들은 군소리 없이 도시를 떠난다. 과학자들의 예측의 불확실성은 첫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 날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 마을로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결정은 훨씬 어렵다."(100쪽~101쪽)

 

이와 관련된 중요한 예가 있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쓰나미 경보 시스템에 초점을 맞췄다. 커다란 지진이 쓰나미 상습 발생 지역에서 일어났음이 확인된 후 하와이에 지진이 예고되었다. 경보가 발령되었고 주민들은 대피했다.
많은 지진이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특히 1957년 북태평양 알레우티엔트 섬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희생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 칠레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하와이의 소규모 항구 힐로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미리 통고를 받았다. 하지만 1958년과 1959년에도 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지만 해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주민들이 대피하지 않았던 것이다."(90쪽~91쪽)

양치기소년의 거짓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지구를 멈춰있는 것으로 느끼지만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지구'는 고정관념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다. 지진과 해일은 지구의 활동이라는 3부에서 설명되는데 지진, 화산, 해일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한다. 이외에 지구의 생성과 변화 등 지구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판구조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그냥 쉽게 읽어나가기에 괜찮은 책이다. 문제는 조금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책은 찾기가 힘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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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를 남긴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독서야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덜 하지만 후기를 남긴다는 것은 일단 자리 잡고 앉아야 한다는 심각한 제약이 있다. 그래서 요즘 생각해보는 것이 아이폰을 이용해 보는 것인데.... 

4~5월 지진 관련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사실 3월, 4월에 있어 집안과 회사일에 물리적인 변동이 있어 책 읽기에 많은 시간을 쏟지는 못하고 있지만.. 후기를 기다리는 책들을 정리해보자. 

 

 

 

 

 

 

 

 

 

 

 

 

 

 

 

 

 

 

 

 

 

 

 

 

 

 

 

 

이 중 다음블로그에 올려놓은 것들은 별도로 옮겨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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