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억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국민, 근로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 근로자는 잘못된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괜한 의심을 받기 싫어 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하지만 엄밀하게 접근하자면 주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국민은 말 그대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이기에 국 민은 국가를 전제로 한다. 이미 만들어진 국가의 규범 아래 있는 국민을 국가 이전의 사회계약에 관련된 주권과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민이 보다 적합할 텐데, 이 단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기존 국가 규범 안의 구성원이라는 틀 안에 주 권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의도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유독 국민이라는 용어를 고집해 왔다. (45쪽, 헌법의 발견)


국민이라는 단어는 국가가 먼저 존재한다. 지나친 국가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에서는 사용하기 싫다. - 국가주의의 극단은 식민주의로 나타났고, 현재도 국가의주의 폐단은 미국, 영국에서 볼 수 있다. 러시아, 중국도 마찬가지로 국가주의 폐해를 보여주고 -


인민이라는 단어에서 국민으로 변경된 과정이다. 씁쓸하다. 


헌법 제1조2항의 전제에도 잠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명제로 쉽게 쪼개어볼 수 있다. 두 문장은 비슷하게 읽히지만, 단순한 동어반복은 아니다.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력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수 없음을 전제한 결합인 것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국민주권주의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국민 전체가 직접 국가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 이외에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통치권의 담당자가 정해짐으로써 국가권력의 행사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정당화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 2항은 물론 헌법 전체를 통하여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유진오 초안에는 모두 인민이라고 되어 있었다. 초안작성자가 국민 대신 인민이란 어휘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국가 우월적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인민은 국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그러니 국가를 구성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을 표시하는 데 인민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안의 인민은 국회 헌법기초분과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바뀌고 말았다. 국회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된 것과 함께 일어난 일이다. 그 주된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윤치영은 “인민이라는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그러한 말을 쓰려고 하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인민이란 용어는 구 대한제국의 절대군주 시절에도 사용하던 용어였다. 


1948년 7월 1일부터 시작한 국회 본회의 헌법 초안 제2회독 때 국회의원 진헌식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몇 개 조문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문에서는 모두 인민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역시 윤치영 의원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인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좋은 말을 공산주의에 빼앗긴 셈치고 포기했다. (34-35쪽, 지금다시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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