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남자인줄 알았다. 여자이름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제목이 참 흥미로웠다.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봤다. 왠걸 과학책 전문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우리 회의나 할까?>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들었는데, 카피라이터다. 그것도 박웅현과 함께 일한다.

 

카피를 못하는 카피라이터란다. 기억력은 최악이란다. 그래서 기록을 한다고.

어떻게 보면 상투적이고, 어떻게 보면 솔직한 내면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바로 부러움이 앞선다.

 

물리적인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 난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

이 환경은 회사에서도 계속되는데, 10년 넘게 한 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웅현 팀장님은 좋았던책이 있으면 꼭 권해주시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다. 그분의 독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편에 비해 팀장님과는 관심 분야도 꽤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게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 다 그리고 그때마다 팀장님과 나는 서로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교환한다.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도 좋아하는 부분은 꽤나 달라서 팀장님이 내게 보내주시는 요약본을 보면 새롭게 그 책을 읽는 느낌까지 든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책이 있으면 내게 무심하게 선물해주는 선배도 있고,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어쨌거나 인간관계적으 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16-17쪽)

 

가정에서, 직장에서, 술자리에서....

 

책은 깔끔하다. 아무런 장식 없이 무표정한 하얀색 표지에 왼쪽 상단에

'모든 요일의 여행:'

그리고 오른쪽 상단엔 부제인 '10년차 키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없다. 그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40)

 

책을 오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조금은 갸우뚱하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 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130-131쪽)

 

그 왜곡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고, 무의미한것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벽중독자에 가까운 내게 가장 완벽한 한 도시를 꼽으라면 포르투갈 리스본을 꼽을 것이다. 리스본에서도 알파마 지구를 꼽을 것이다. 1755년, 27만 명의 리스본 시민 중 무려 9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리스본 대지진에서 유일하게 남은 언덕 위의 동네, 알파마 지구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들 앞에서 지도는 무기력해지고,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가던 관광객들은 길을 잃는다. 한골목이 수갈 래의 길로 불친절하게 나눠지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어떤 법칙도 없이 교차된다. 차 한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길로 노란색 전차가 달리고, 그 옆으로 색색의 빨래가 널려 있고, 전깃줄이 지나간다. 낡고, 좁고, 바랬다 그리고 그 낡고 좁고 바랜 것들이 모두 화려하게 빛난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알파마의 실핏줄들이 기어이 살아 남은 것이다. 지금까지도 고맙게도 (168-170쪽)

 

내 기준에서 예쁜 벽을 찾고, 그 벽을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일상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뛰어나오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다. 거리낌 없이 얼굴을 카메라로 들이민다. 그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부모들이다. 무뚝뚝해 보여도 가장 친절하게 낯선 이의 질문에 응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벽들을 따라가다 예기치 않은 공연을 보기도 하고 낯선 이에게 술을 얻어먹기도 한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가득 찬 바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들이 매일 들락거 리는 식당 귀퉁이에 우리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가이드북보다도 낡은 벽이 나에 겐가장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174쪽)

 

아마도 비슷한 느낌이다. 일본 소도시에 대한 로망. 아직 현대라는 시간을 못 쫓아온 근대의 골목들에 대한 로망. 항상 일본 소도시 여행을 꿈꾸는 내가 갖는 로망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읽고, 보고, 들은 것을 붙잡으려 쓰고, 그것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누군가는 흘려보내 듯 가볍게, 누군가는 공감하며 읽을 정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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