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한국이다 - 한국 축구 124년사, 1882-2006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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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다. 신문을 펴들건, 거리를 나서건, TV를 켜건, 물건을 구매하려고 해도 월드컵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즈음 축구의 사회문화적 위치를 다룬 책들이 출간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축구에 대해서만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축구속으로 쓰윽 들이밀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는 사회문화사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축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축구사로 볼 수 있지만, 축구라는 프리즘을 통해 124년의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은 근래의 한국적 교양만들기 작업과 언론에 비친 역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책은 그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된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우리에게 축구는 단순히 축구이상이기 때문에 축구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축구하면 언뜻 2002년 월드컵부터 광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우리의 관심이 고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축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얼마되지 않은 때부터 축구는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1930년대 경평전(서울팀대 평양팀의 경기)이 있는 날이다. ‘경평전이 있는 날은 거의 가게 문을 닫았고 평양 기생들은 영업을 포기했다. -평간 세 시간 거리인 기차 속은 응원인파로 초만원이었으며 이기면 양조장들에선 행인에게 막걸리를 공짜로 퍼먹이기도 했다.’(39. 조선일보 98.11.10) 월드컵 16강 기념 안주 무료 하듯이 70년전에도 축구는 단순히 축구를 넘어 생활이었다. 1969년에는 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전 한일 경기가 개최되었다. ‘개막 4일 전에 한일전 입장권이 매진되자 대회위원장 은 입장권을 사지 못한 팬들을 위해 서울 운동장 앞, 남산 야외음악당 등 서울시내 13개소에 대형 텔레비전 스크린을 설치해 무료 관람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110. 조선일보 69.10.7) 지금 광화문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관람한 것처럼 4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축구에 비상이 걸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 기적을 이룬 것이다. 당시 남북간의 대결이 심하던 상황에서 아시아의 맹주역할을 하던 한국보다 북한의 성적이 좋다는 것은 한국에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곧 정부주도의 국가대표팀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국가대표팀은 중앙정보부(지금의 ) 소속이었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은 군 미필자의 경우 모두 소위를 달아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축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가늠해 볼만한 사건이다.

은 우리나라에 축구가 도입된 124년도부터 2006년 월드컵 바로 직전까지의 축구를 담아냈다. 한국적 축구에 대해 분석을 하는데, 의 여타책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한국의 축구에 대한 시각은 볼만하다. 우리에게 축구는 축구자체를 넘어선다. 축구자체에 대한 관심은 적은데 반해 축구를 매개로 일종의 놀이판의 역할을 한다. 한국의 축구는 일종의 한풀이의 성격이 강했는데, 10여년 전부터는 놀이판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전통의 놀이문화의 측면에서 축구를 보자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놀이문화가 강했는데(전통적인 놀이수단 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관혼상제 모두 놀이문화를 안고 있었다. 다만 일제 식민지와 개발독재의 시간을 거치면서 노동이 강요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지금의 아파트 문화 등으로 대체되는 현실에서는 마땅한 놀이터를 찾기 힘들다. 그런점에서 축구는 그런 놀이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붉은악마라는 자발적인 동아리활동을 통해 전파된 열광의 문화가 2006년에는 자본의 손아귀에 넘아가버려 불만이다. 서울광장에 대한 사용도 붉은악마, KTF등 컨소시엄이 SKT,조선일보, KBS 컨소시엄에 지면서 붉은악마가 만든 응원문화와 월드컵공식후원업체 KTF SKT 컨소시엄이 제공한 응원대에 초청(?)되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점은 책에서도 지적된다. 평소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기업들은 월드컵에서 제외되어 버리고 축구에 전혀 투자도 안하던 기업이 월드컵의 효과를 독차지 해버리는 –SKT를 대표적으로 지적- 점은 축구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이 책은 축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축구라는 프리즘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볼 수 있다. 축구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읽어낼 수 있다. 역사를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역사의 한 부분을 축구라는 틀로 채워 입체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고, 축구팬이라면 한국의 축구에 대한 많은 지식과 잡다한 내용들을 알게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하나의 오류가 발견된다.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3;4로 역전패하게 되는데 북한선수들은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대부분 숙청당했다.(106) 통제된 사회에서 풀려버린 북한 대표팀은 포르투갈과의 경기 전날 영국의 여성들과 환락의 밤을 보냈고 그로 인해 포르투갈 전 패배 후 모두 아오지탄광을 갔다고 이영만의 책(공하나에 얽힌 10만가지 사연 : 기자의 스포츠 X파일. 174)을 인용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 천리마축구단에서도 당시 남한에는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지적하는데, 사실 포르투갈전 전날 북한팀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수도원(교회에 소붙어 있는)에 간신히 머물렀는데 그곳의 시설이 북한선수들에게는 너무 생소했다고 한다. 여러명이서 숙박할 수 있었던 다른 숙소와는 달리 그곳은 개인 기숙사 시설 같은 곳이라 1인씩 생활하는데 문제는 방이나 숙소 곳곳에 걸려있는 성상(예수상, 성모상)들과 예배소리였다. 전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데다가, 세계최강 포르투갈은 맞아 먼저 3골을 넣었는데, 당시 북한팀은 축구선진국처럼 게임을 조절할 줄 몰랐다. 보통 3골정도 먼저 넣으면 수비위주로 전술을 바꾸게 되는데 북한팀은 그런 노련미가 부족했다. 당시 남북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북한의 선전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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