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소담 -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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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정담>과 <그림소담>은 편하게 옛 그림을 들려준다.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의 그림을 통해 우리 옛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찬찬히 알려준다.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본다.)


우리 옛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겸재가 그린 그림은 소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의 모습이다. 그냥 지나칠 만한 매미가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구성도 아름답지만, 매미와 소나무의 조화도 놓치기 힘들다. 



화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소나무 가지하나가 자연스레 휘었고, 여기에 매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와 나란히 붙어 있다. 매미를 묘사하는 데 어느 부분 하나 소홀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투명 앞날개 안에 작은 뒷 날개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가지 끝에 솔잎을 그린 것을 보면 오래된 솔잎 떨기는 엷은 녹색으로 약간 번지게 해서 겹쳐 그렸고, 그 위에 새로 난 짙은 녹색 솔잎 하나하나를 가는 붓으로 그렸다. 그 결과 새로 난 솔잎의 파릇파릇함이 돋보이는 효과를 낸다.


화면 왼쪽 솔가지는 거의 생략하고 솔잎 떨기만 강조해 매미가 붙어 있는 가지로 시선 을모으는 동시에 화면 왼쪽을 채웠다. (163-164)



역시 겸재의 그림 중에 하나이다. 책 <그림소담>에 있는 많은 그림들이 눈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떤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에 또 어떤 그림은 세밀함에. 이 그림은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성 내 가옥들은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남산과 관악산의 능선은 어슴푸레 잡히고 키 큰 나무숲도 거뭇가뭇 드러났다. 하늘과 안개는 여백으로 비워두어 먹보다 종이 바탕이 더 많은데 과감한 여백 덕분에 안개 낀 달밤 한양 풍광이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이로써 비우면서 완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개 낀 달밤이라도 이렇게 보이지 는 않을 것이다. 겸재는 생략하고 단순화 해 안개 낀 달밤이 주는 인상만 그린 것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템스 강의 안개 낀 풍경을 그린 방식과 비슷하다. 진경 산수는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생략과 확대를 적절하게 섞는 화풍이다. 겸재는 이런 방법을 극대화 해 서울의 안 개낀달밤을 가장 덜 그렸어도 가장 사실감 넘치는 그림으로 완성했다. (79-80)



<고화정담>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혜원이나 단원의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시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당시 유행했던 옷 맵시를 찾아볼 수 있고, 집은 어떻게 꾸몄는지, 그리고 놀이문화는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서 있는 선비는 자줏빛 띠를 가슴에 매고 호박을 이어 갓끈 삼아 호사를 다했으니 멋쟁이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정 멋쟁이는 장침에 편안히 기대어 오른 손으로는 부채를 잡고 왼손으로는 연죽을 들고 음악에 몰두한 풍채 좋은 저 선비다. 호박 갓끈을 왼쪽 귀에 돌려 맨 저 모습을 보라. 이것이 당시 한양 귀족들의 일급 맵시다. 가슴의 붉은 띠는 한복 끈 치레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마당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돌을 두 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는 조경 방식은 지금도 궁궐에 가면 볼 수 있는 전통 방식이다. 연못도 흙을 파내고 사방을 돌로 둘러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이 그림에서 한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인들이 야외에 나갈 때 항상 돗자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자리를 펴서 유흥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31-33)


책은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 잘 알려진 이들 외에도 이인문, 김득신 심사정 등 조금은 덜 알려진 이들의 그림도 소개한다. 옛 그림에 대한 틀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옛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좋은 가이드 북이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작품의 보존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뚜렷한 결과를 낸다. 유명한 작품들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연구하여 정치적 암흑기라고 하는 시대에서도 문화의 꽃을 피워냈음을 증명해낸다. 특히 '진경 시대'에 연구는 우리 옛 문화 연구의 좋은 길잡이를 마련했다.  


한 시대 문화는 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뿌리가 이념이라 면 꽃이 예술이다. 꽃이 풍성하고 생기 있다는 것은 뿌리가 튼튼하고 둥치와 가지 모두 건실하다는 뜻이다. 만약 식민 사관에서 말하듯 조선 후기가 당쟁에 골몰해 어지러운 시 기였다면 어떻게 겸재와 단원 같은 뛰어난 화가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숙종 대부터 정조대에 이르는 125년간의 우리 문화 황금기를 최완수 선생은 1996년에 '진경 시대'라 이름 붙였고, 이로써 우리는 오랜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문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공론을 주도하는 식자층 일부에서 여전히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990년대중반 간송미술관에서 탄생한 '진경 시대'란 개념은 간송 선생의 문화재 수집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간송 선생이 우리 미술품을 목숨과 같이 아 끼며 지켜낸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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