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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소담 -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 ㅣ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6월
평점 :
<고화정담>과 <그림소담>은 편하게 옛 그림을 들려준다.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의 그림을 통해 우리 옛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찬찬히 알려준다.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본다.)
우리 옛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겸재가 그린 그림은 소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의 모습이다. 그냥 지나칠 만한 매미가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구성도 아름답지만, 매미와 소나무의 조화도 놓치기 힘들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917/pimg_7742711331490450.jpg)
화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소나무 가지하나가 자연스레 휘었고, 여기에 매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와 나란히 붙어 있다. 매미를 묘사하는 데 어느 부분 하나 소홀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투명 앞날개 안에 작은 뒷 날개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가지 끝에 솔잎을 그린 것을 보면 오래된 솔잎 떨기는 엷은 녹색으로 약간 번지게 해서 겹쳐 그렸고, 그 위에 새로 난 짙은 녹색 솔잎 하나하나를 가는 붓으로 그렸다. 그 결과 새로 난 솔잎의 파릇파릇함이 돋보이는 효과를 낸다.
화면 왼쪽 솔가지는 거의 생략하고 솔잎 떨기만 강조해 매미가 붙어 있는 가지로 시선 을모으는 동시에 화면 왼쪽을 채웠다. (163-164)
역시 겸재의 그림 중에 하나이다. 책 <그림소담>에 있는 많은 그림들이 눈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떤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에 또 어떤 그림은 세밀함에. 이 그림은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917/pimg_7742711331490452.jpg)
도성 내 가옥들은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남산과 관악산의 능선은 어슴푸레 잡히고 키 큰 나무숲도 거뭇가뭇 드러났다. 하늘과 안개는 여백으로 비워두어 먹보다 종이 바탕이 더 많은데 과감한 여백 덕분에 안개 낀 달밤 한양 풍광이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이로써 비우면서 완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개 낀 달밤이라도 이렇게 보이지 는 않을 것이다. 겸재는 생략하고 단순화 해 안개 낀 달밤이 주는 인상만 그린 것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템스 강의 안개 낀 풍경을 그린 방식과 비슷하다. 진경 산수는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생략과 확대를 적절하게 섞는 화풍이다. 겸재는 이런 방법을 극대화 해 서울의 안 개낀달밤을 가장 덜 그렸어도 가장 사실감 넘치는 그림으로 완성했다. (79-80)
<고화정담>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혜원이나 단원의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시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당시 유행했던 옷 맵시를 찾아볼 수 있고, 집은 어떻게 꾸몄는지, 그리고 놀이문화는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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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선비는 자줏빛 띠를 가슴에 매고 호박을 이어 갓끈 삼아 호사를 다했으니 멋쟁이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정 멋쟁이는 장침에 편안히 기대어 오른 손으로는 부채를 잡고 왼손으로는 연죽을 들고 음악에 몰두한 풍채 좋은 저 선비다. 호박 갓끈을 왼쪽 귀에 돌려 맨 저 모습을 보라. 이것이 당시 한양 귀족들의 일급 맵시다. 가슴의 붉은 띠는 한복 끈 치레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마당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돌을 두 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는 조경 방식은 지금도 궁궐에 가면 볼 수 있는 전통 방식이다. 연못도 흙을 파내고 사방을 돌로 둘러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이 그림에서 한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인들이 야외에 나갈 때 항상 돗자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자리를 펴서 유흥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31-33)
책은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 잘 알려진 이들 외에도 이인문, 김득신 심사정 등 조금은 덜 알려진 이들의 그림도 소개한다. 옛 그림에 대한 틀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옛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좋은 가이드 북이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작품의 보존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뚜렷한 결과를 낸다. 유명한 작품들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연구하여 정치적 암흑기라고 하는 시대에서도 문화의 꽃을 피워냈음을 증명해낸다. 특히 '진경 시대'에 연구는 우리 옛 문화 연구의 좋은 길잡이를 마련했다.
한 시대 문화는 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뿌리가 이념이라 면 꽃이 예술이다. 꽃이 풍성하고 생기 있다는 것은 뿌리가 튼튼하고 둥치와 가지 모두 건실하다는 뜻이다. 만약 식민 사관에서 말하듯 조선 후기가 당쟁에 골몰해 어지러운 시 기였다면 어떻게 겸재와 단원 같은 뛰어난 화가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숙종 대부터 정조대에 이르는 125년간의 우리 문화 황금기를 최완수 선생은 1996년에 '진경 시대'라 이름 붙였고, 이로써 우리는 오랜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문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공론을 주도하는 식자층 일부에서 여전히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990년대중반 간송미술관에서 탄생한 '진경 시대'란 개념은 간송 선생의 문화재 수집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간송 선생이 우리 미술품을 목숨과 같이 아 끼며 지켜낸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