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정담 - 간송미술관의 다정한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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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畵情談 : 옛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

 

라는 뜻의 <고화정담>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30 작품에 대한 소개이다.

사군자, 영모, 진경산수, 풍속, 도석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나누고 설명한다. 조선 그림을 주제별로 크게 구분해서 알려준다.

 

1년에 몇 번씩 큰 전시회를 통해 서양화가들의 유명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우리의 옛 그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눈에 담을 기회도 많지 않고, 그래서 지나쳤던 옛그림들. 하지만 <고화정담>을 통해 우리 옛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림 하나 하나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고,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이 어떤지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다. 우리가 알던 몇 몇 작가들 외에 심사정, 김득신 등의 그림을 접하는 것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다. 알아간다는 즐거움.

 

 사군자편은 4편의 그림을 설명한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조선의 선비정신과 빗대어 선비들이 줄곧 그려낸 그림이다. 그중 심사정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옅은 먹으로 국화 잎을 툭툭 쳐내고 바위도 붓으로 최소한으로만 그었다. 먹빛도 묽어 단단한 느낌은 커녕 곧 뭉크러질 것만 같다. 위쪽 국화 잎은 반을 잘라 다 그리지 않았으며 꽃봉오리는 점 몇 개로 단순화했다. 국화 잎이 너무 무성해 약간 비대한 듯 느껴져 단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심사정 묵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닮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것. 국화 옆 바랭이풀은 먼저 갈색으로 잎을 그리고 그 위에 먹선을 그었고 바위도 마찬가지인데 먹선을 약간 어긋나게 그어 입체감을 주었다. 심사정이 줄겨 사용한 방법이다. 그리고 바위 주변에 녹색 점을 찍어 먹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30쪽)

 

 

동물을 그린 영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 화원들이 주로 그렸다. 물론 사대부도 동물을 그렸다. 윤두서의 군마 같은 작품이 그렇다. 솔직히 군마를 보고 놀랐다. 단순하면서도 살아있는 듯한(똑같이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눈을 자꾸 돌리게

했다.

사군자에서 의미를 담았듯이, 동물에게도 그 뜻을 담았다.

 

그런데 도화서 화원들은 조금 다르게 영모화에 접근했다. 초상화에서 중요한 것이 수염이었는데, 수염으로 원근감 등을 표시할 뿐 아니라, 인물의 특징도 잡아냈다.

초상화에서 알맹이는 얼굴이고, 얼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눈동자이지만 가장 공들여야 하는 것은 수염이다. 가늘고 길며 꼬불꼬불한 수염이 한 올 한 올끊이지 않아야 하고 엉켜서도 안 되며 흑백이 섞여야 하고 바람도 통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먹의 농담도 일정해야 한다. 먹을 묻혀 정신을 바로잡고 비단 위에 수없이 붓질해야 초상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화원들이 도화서에서 그린 여러 그림 가운데 초상화가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화원들은 수염 그리는 데 선수였다. 

그렇다면 이 수염 그리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당연히 털 짐승 그림이다. 그래서 각기 전념하던 털 짐승 그림이 있었다 정홍래는 매, 김두량은 개, 변상벽은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렸다. (70)

 

 

진경산수화가 의미있는 것은 실제로 우리 땅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화사상이 가득했던 조선초중반 해도 중국책에 있는 중국의 산과 강을 그렸다. 겸재가 이 땅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 눈으로 우리땅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우리 옛 땅의 모습이 그림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단순하게 그려내 그림에 예술성을 덧 붙였다.

 

저 기와집엔 양반이 살 테고 초가집엔 평민이 살 텐데, 그래서인지 기와집 자리는 전망 좋고 양지바르다. 재밌는 건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모두 드러난 집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저 나무 뒤에 기둥은 이럴 것이고, 지붕은 저럴 것이다 등등 감상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어야 그림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산등성이에는 솔들이 한줄로 빼곡해 산 전체에 솔 향기가 가득한데 마을 뒤는 산이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넓고 푸른 강이 흘러가니 청탄마을 사람들에겐 이곳이 무릉도원일 것이다. 산주름에 먹점을 찍어 키 작은 잡목을 그렸고, 저 멀리 있는 산자락은 주름만 있고 먹점은 찍지 않았으며 뒤에는 주름마저 사라지고 더 멀리는 청색으로 물들였다. 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원근법을 따라 할 화가는 많지 않다. (116, 겸재 녹운탄)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볼 때면 항상 놀랍다. 다른 그림들이 전체적인 느낌, 분위기에 주목해서 본다면 신윤복의 그림은 선과 색체, 그리고 살아움지이는 듯한 움직임까지.

사람을 묘하게 그림에 붙들어매는 능력이 있다. 부분 부분을 보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신윤복의 그림은 그림의 가치도 뛰어나지도 우리 문화를 담아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당시 문화가 그림속에 담겨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예술이자, 역사이다.

 

신윤복 그림에는 200년 전 의복, 춤,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장도 없고 생략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좋은 옷을 지어 입으려는 이, 잊힌 춤을 다시 살리려는 이, 옛 가락을 내일로 전하려는 모든 이들은 신윤복 그림을 의지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또 제대로 된 조선 역사극을 만들려고 하는 이 또한 신윤복 그림울 기준으로 고증하면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198)

 

 다섯번째 주제인 '도석'은 쉽게 말해 달마도사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에서 불교 및 도교사상이 그림에 자리잡기는 힘들었는데, 유교의 틀에서 자유로운 화원들은 달마대사나 동자승을 종종 그렸다. 단순히 중국의 소재가 아닌 각자에 맞게 발전시켜서 그렸다.

 

놀라운 것은 맹호도에서 수백 번 붓질로 털 하나하나를 그려 살아 있는 호랑이를 그려낸 김홍도가 이번에는 붓 몇 번 대지 않고 역시 살아 있는 호랑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둥글둥글하며 성근 삽살개의 털을 그리는 것처럼 먹으로만 슬렁슬렁 돌렸는데 영락없는 호랑이다. 바로 이 점에서 김흥도는 대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확인할 수 있다. 대가는 양쪽 끝점을 모두 아우르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수없이 붓질해 완성한 호랑이와 쓱싹 붓 질몇번해서 그린 호랑이 둘 다 기운생동하다 이 둘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옛 그림 특유의 매력이. 겸재 정선의 소나무 역시 솔잎 하나하나를 그린 것과 붓을 뉘어 툭툭찍어 그린 것이 모두 있었다. 호랑이 꼬리는 굽이치며 솟구쳐 용맹함이 여실하고 날카 운 발톱은 땅을 굳건히 움켜쥐어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홍도의 솜씨는 나한의 옷 선에서 드러난다. 

 

부드럽게 흐물흐물 몸을 따라 흘러내리지만 역시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그리고 나한의 옷 선이 이래야만 호랑이 털과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나한과 호랑이는 한마음 한몸이 된다. 더군다나 모두 먹빛 하나이기 때문에 둘은 더욱 쉽게 결합된다. 나한의 얼굴이 김홍도의 달마도해에 나오는 달마 얼굴과 비슷한 걸로 봐서 김홍도가 스님 얼굴로 좋아한 도상인 듯하다. (245-246)

 

<고화정담>은 이야기하듯 쓰여있어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한번에 읽고 말 것이 아니다. 옆에 두고 조금씩 읽어봐야 할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읽어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시간 날때 접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보면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눈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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