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이야기할 때 잠깐 언급된 것이 백인 노동자층이다. 유럽연합에 있으나, 없으나 실업이나 삶의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한 백인 노동층은 유럽연합에서 결정한 이민자 정책은 유럽연합에 대해 분노를 야기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백인 노동계층을 주목한 책이 있다. 바로 <차브>이다. <차브>란 할일 없이 놀고 있는 노동계급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젊은 노동계급이라는 뜻이었지만 어느 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 (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폭력적이고, 게으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이들을 뜻한다.
노동계급이 이렇게 된 근원에는 사실 노동계층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악마같은 대처 총리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노동계층을 전부 없애버리면 전부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참 이해하기 힘들다.
"백인 노동계급 은 또하나의 하찮은 소수인종이 되었으며 이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오로지 인종의 시각에 머물러 있었음을 의미한다. 백인 노동계급은 역사의 고개를 넘으며 길을 잃은 부족이 되었고, 다문화주의에 의해 방향을 잃었으며, 집단 이민이라는 문화적 침략에 맞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방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집단이 되었다. 말하자면 '백인 노동계급'이라는 단어 때문에 새로운 자유주의적 편견이 탄력을 받은 셈이다. 이제 '백인 노동계급'을 혐오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들은 한줌의 인종차별주의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8쪽)
노동계급이 악마화된 뿌리에는 영국 계급전쟁의 유산이 있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정권을 인수한 1979년은 영국 노동계급을 향한 전면공격이 개시된 해로 기록된다. 노동계급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이나 공영주택은 붕괴되었고 노동계급의 일터는 제조업에서 광산업까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그들의 공동체는 산산조각났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또한 연대와 집단적 열망 같은 노동계급의 가치는 단호한 개인주의에 밀려 휩쓸려갔다. 힘을 빼앗겨 더이상 당당하지 못한 노동계급은 점점 더 조롱거리가 되었고 하찮은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또한 노동계급이 미디어나 정치의 세계에서 축출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생각은 터져나가지 못했다.
정치인들, 특히 노동당은 한때 노동계급의 조건을 향상시켜야 한 말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략적인 공약은 노동계급을 회피하는 것들뿐이다. 정치가들은 중간계급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더 좋아하고 '열망'이란 말은 개개인의 자기성취를 의미하는 말로 재규정 되었다. 결국 사다리를 기어올라 중간계급이 되라는 말이다. 한때 가난이나 실업 같은 사회적 문제는 적어도 자본주의 내부의 취약성에 비롯된 것으로 인식됐던 반면, 오늘날 그것은 개인의 행동이나 결점, 심지어는 선택으로 간주되고 있다.
노동계급이 처한 곤경은 보통 열망의 부족으로 치부돼버린다. 그들의 곤경은 책임이 있는 특권층들에 의해 조작된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 때문이라고 왜곡된다. 극단적인 경우 이런 시각은 새로운 사회적 다위니즘(Social Darwinism)으로까지 치닫는다 진 화 심 리 학자 브루스 찰튼(Bruce Charlton)에 의 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부 자보다 평균 IQ가 낮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노동계급 가정 출 신이 일반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전문직업인 가정 출신 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년 동안 영국 정치계의 심장부에선 차브를 희화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2010년 총선 이후 백만장자들에 의해 장악된 보 수정권은 지난 1920년대 이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공격적인 예산삭감을 주장하며 집권했다, 2007년 이후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탐욕스럽고 무능한 금융 엘리트들로부터 촉발되 었건만 그 대가는 노동계급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난도질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정치적 난관에 부딪혀 있고, 결국 정부는 은근슬쩍 국민들을 비난하고 나섰다."(20-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