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야 나무야>가 두권이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무야 나무야>를 여러 권 샀다. 남들한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지 않나 싶다. 집에 꽂혀 있는 책중에 하나를 들어보니 99년 5월 17일에 다 읽고 메모를 남겨 두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은 손에 들었다.

 

<나무야 나무야> 서평을 남기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감히 선생님의 생각에 대해 평할 것도 안되지만 나에게 주시는 가르침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옮겨본다.

 

먼저 삶에 대한 자세와 사람과 사람에 대한 자세이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鑑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鑑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128쪽)

 

그리고 개인의 목표와 그 과정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목표의 올바름 그리고 과정의 올바름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아닐찌.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를 때를 일컬어 우리는 그것을 진선진미(眞善眞美)라 합니다. (116쪽)

 

사회에 대한 생각이다. 사실 사람조차 인적자원으로 부르는 현 시대 대한민국은 눈에 보이는 만족, 피상적 성공, 자기 안위가 목표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방법을 잘 알거나 그 위치에 가까운 사람이 바로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사회는 자꾸 사회의 요구에 맞는 현명한 사람을 만드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우직함이 그냥 어리석음으로 평가되는 세상. 선생님의 말씀이 더 생각나는 요즘이다.

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마디로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품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어떤 실상을 갖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82쪽)

 

<나무야 나무야>를 읽으면 바로 앞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다른 책에 적혀 있다.

<나무야 나무야>가 독자들의 가슴에 강하게 와 닿는 이유는 글 전체를 부드러운 교감의 장으로 만들어주는 경어체의 서간문과 그 수신인인 '당신'의 역할 때문이다. 물론 독자에 대한 친밀감과 공감의 장을 확대하는 저자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막연한 일반 독자나 단순한 문학적 장치로만 제한되기엔 그 역할이 매우 구체적이고 또 저자와 특별한 사적 공감대가 형성된 존재이다. '당신'은 저자를 방문지로 안내하고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정신적 여행가이드이자, 훌륭한 충고자이며 절친한 친구로, 때로는 저자의 내면의 목소리나 제2의 자아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145쪽, 신영복 함께 읽기)

 

사실 신영복선생님 타계에 맞춰 다시 책을 읽으면서 몇 몇 부분이 눈에 더 들어온다. 조금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 보면 예전에 그리고 지금은 흘려 보냈을 부분이 다시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 기대가 남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