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는 학술적인 연구와 자유로운 글쓰기가 어우러져 출판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금정연 서평가는 “만약 (올해) 단
한 권의 책만 꼽으라고 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택했을 것이다”라며 호평했고, 박태근 알라딘 MD도 “탄탄한 이론,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 유려한 글쓰기를 모두 갖춘 책. 이론을 말할 때면 현실이 떠오르고, 현실을 말할 때면 이론이 그려진다”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대안적인 삶, 생의 다른 층위를 다룬 책도 추천 리스트에 올랐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대표적이다. “내
앞에, 내 부모님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죽음을 앞두고 풀어내야 할 과제들에 관해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박정남)”라며 이 책이 환기하는
바에 주목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50
상식적인 임계치를 넘어선 각종 여성 혐오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 흐름은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많은 추천위원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책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이 책은 올해 가장 뜨거운 책이
분명하다.(박태근)”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분석한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도 꼽혔다. 박재영 오월의봄 대표는 “혐오의
시대에 맞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IS)의 등장과 파리 테러로 중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특이점이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과
<현대 중동의 탄생> 모두 현대 중동 정세와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라며 호평받았다. 직접 이슬람권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종교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그린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도 추천 리스트에 올랐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52
사람,장소,환대
<사람, 장소, 환대>는 신분 차별이 철폐된 근대 이후 사회의 ‘형식적 평등’과 구조 안에서의 ‘실질적인 불평등’이 어떻게 긴장을
유발하는지 논증한다.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이미 세가지 키워드를 다룬 책 내용을 요약해두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내주는 행위이다.”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86292.html)
저자는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의 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질서는 “내가 너에게 인사하면, 너도 나에게 인사한다”는 의례 교환의 대칭성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된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발견은 신분 질서의 해체, 즉 개인들이 신분과 무관하게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집단적 의례 및 상호작용 의례가 신분적 의례를 압도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묻는 걸인이 외면당할 때, 아파트 경비원이 상한 음식을 투척 받을 때, 항공기의 승무원이 부사장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근대성이 성취한 의례 교환의 평등성과 호혜성이라는 신화는 붕괴한다. 배제와 낙인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모욕과 굴욕과 경멸은 그래서 오늘날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근대화란 이전까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이들이 사회적 성원권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굴욕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배적인 모욕의 형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유의미하다. 모욕에는 언제나 가해자가 있지만 굴욕은 그렇지 않다. 모욕이 상호작용 질서에 속하는 문제라면, 굴욕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로 치환되며 보복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이효리의 뱃살 사진은 자기 관리를 못한 이효리 자신의 실책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고를 당하는 것 역시 온전히 나 자신의 무능함 탓이며, 거기서 굴욕감을 느낀다면 그건 나 자신이 지질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도, 구조의 차원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df59cdb96d8249c1b909aa7e65d9c6b2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쓴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Being Mortal'이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싸움에서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 간다. 그 모든 것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개월에서 1~2년 정도의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혹독한 치료와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가완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527_0013690348&cID=10704&pID=10700)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미국의 대표적 비평가이자 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작동 방식 이해에 유용하다. 올해 한국 사회에 등장한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 탄생의 단초가 된 이 책에서 솔닛은 폭력의 발생
구조에 주목한다.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잘 이해하려면 힘의 오용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라는 것이다.
솔닛은 그녀가 쓴 책을 그녀에게 가르치려 드는 한 남자와의 만남을 계기로,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척하며’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
같은 일상의 작은 폭력이 성별·경제·인종·권력으로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폭행이나 협박은 아니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작은 폭력, 강요된 침묵, 심지어 폭력으로 인한 죽음까지 모두 하나의 고리로 이어진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작은 폭력의 의미를
맨스플레인 같은 단어로 드러낸다. 해결은 문제의 정의에서 시작되고, “페미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호명하고 정의하려는 싸움, 발언되고 경청하려는
싸움”이다.
( 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51 )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여성 혐오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우리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혐오라는 거대한 괴물의 몸뚱어리를 확인해보자”는 것이 기획 취지다.
윤보라는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란 글에서 최근의 여성 혐오 현상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여성 탓으로 돌리고, 여성들을 몇개의 부정적인 유형, 즉 거푸집 속에 끼워 넣는 작업이라고 본다. ‘된장녀’에서 ‘김치녀’로 여성 혐오의 아이콘이 확장하는 것에서 보듯, 이제 한국 여성들은 누구나 얼마든지 이 나쁜 여성의 ‘거푸집’에 갇힐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나쁜 여자’를 만들어내는 이 거푸집의 대상을 여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로 더 확산시키면 어떻게 될까. 이 거푸집은 ‘이주 노동자 혐오’ ‘종북 빨갱이 혐오’ ‘장애인 혐오’ 등을 낳을 수 있다. 시우는 ‘다른 목소리로-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를 통해 ‘연세대 논지당 사건’에서 나타난 남성 역차별 주장과 피해자론을 상세하게 분석, 남성 역차별 담론의 숨은 기능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경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032118235&code=960205)
현대 중동의 탄생
미국 역사 저술가인 지은이는 다른 각도에서 사안을 들여다 본다. 중동을 지배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원인을 찾는다. 승전국 서구 열강이 무주공산 중동에 자신의 이익에 맞춰 국경선을 긋는 바람에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렇게 탄생한 사우디 아라비아·이라크·시리아·요르단 등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인 뉴스의 발신지라는 사실이 지은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5 올해의 좋은 책 10’
http://news.joins.com/article/19273699
이슬람전사의 탄생
제2차 세계대전 뒤로도 전쟁은 끝없이 계속됐고, 대부분의 전쟁은 중동, 이른바 ‘이슬람권’에서 일어났다. 국제전뿐 아니라 내전, 내란, 소요,
테러까지 넓은 의미로 전쟁에 포함시킨다면 그 범주는 더욱 넓다. 지난해에는 이라크, 시리아 내전을 통해 세를 불린 ‘이슬람국가’(IS)가
무차별한 테러와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큰 걱정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정의길 <한겨레> 기자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미국 등 서방 사이에
반복되는 전쟁 상황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할 만한 ‘비대칭 장기 국제전’이라고 보고, 중동 현대사를 관통하며 이 전쟁의 기원과 진행 과정을
체계적으로 안내해준다.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599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