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 '정치 사랑'외에 탈출구는 없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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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회의 현실이다. 중간계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 중장년에게는 불안이 청년들에게는 좌절이 일상화되고 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세상이다.

 

<1년만 미쳐라>,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서른살 꿈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
이렇듯 미치라고 외치던 때가 있었지만, 아무리 미쳐도 안되더라는 걸 깨닫는 데인 오랜시간이 걸리치 않았다. 그 어떤 미침으로도 이른바 '잉여사회'라는 구조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잉여사회>의 저자 최태섭은 잉여사회를 "수많은 잉여가 아귀다툼을 하고, 그중 몇몇이 이기지만 결국은 착취당할 기회를 갖게 되는 종류의 사회"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의 잉여는 풍요가 아니라 양극화로 대변되는 격차와 집중의 산물이고, 무너지고 있는 중간층의 잔해 속에서 태어난 것이며, 좌절한 이상주의자이기는커녕 이상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잔해와 폐허 위에서 자립의 가능성을 박탈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라고 윽박지르는 이상한 마케팅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려차'는 말은 좀 사라졌을망정,... 자부심은 '열정'이란 말로 대체되어 "당신의 열정을 보여달라"거나 "좀더 열정을 가지고 일해라"라는 주문이 난무한다. 한 텔레비전 광고는 "당신이 머리가 아픈건 열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제 열정을 갖지는 않는 당신은 죄인"이 된다. 이런 현실을 고랍하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의 저자들은 "열정은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되었다"라고 단언한다.
"열정은 제도화 되었다. 오늘날 면접관들은 열정을 '측정'한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답변은 간단한다. '악조건들을 얼마나 버텨내는지'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접관들에게는 우리를 모욕할 권리가 주어진다."(24~25쪽)

 

하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진보(?)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정부만 비판하면 국민들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마다 패배하고 있는데, 패배해도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바로 한국형 진보의 특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특성이기도 하다. 늘 현실분석을 희망사항으로 대체하면서,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증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버릇,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신들의 희망사항이 전혀 실현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성찰과 반성없이 자기들이 옳았다고 버티는 '유체이탈' 성향은 지금도 건재하다. (66쪽)

 

진보는 보수와의 관계에서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는 걸 드러내는 자기 존재증명에 정치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즐겨 쓰는 '정체성'이니 '선명성'이니 하는 말이 바로 그런 자기 존재증명의 슬로건이다. 변호사 출신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재선의원은 "이 정당에서 내가 아무리 주도적인 활동을 해도, 결국 듣는 말은 '당신 80년대에 뭐했어?'였다. 아무리 뛰어도 나의 위치는 주변부였다"라고 토로했다.(83쪽)

 

586정치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도덕적 우월감이나 선민의식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생활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화에 대비하고 변화를 추진해야 할 사람들마저 "당신 80년대에 뭐했어?"라는 추궁에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보수에 대해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며 거친 언어를 구사한다. '싸가지 없는 진보'라고 비판하지만, '싸가지 없음'은 도덕적 우월감이나 선민의식의 표현이기에 그런 비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게 되고 만다.(86쪽) 

 

현실을 모르는게 당연하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큰 정당은 여전히 80년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86 친노라는 이들이 80년대 민주화의 대가를 정당안에서 챙기고 있다. 국민은 뒷전이다. 그래서 현실문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현재 청년들은 구조보다 더 시급한 문제에 걸려있다. 당장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런 그들을 이해를 못하는 제1야당.

 

승리의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선 투표로 힘을 키우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다. 권지웅은 20대의 낮은 투표율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정치적 무력감이 큰 탓이죠. 내가 해서 될까? 이런 거죠. 젊은 세대들은 집단적 행위를 통해 뭔가를 얻은 경험이 크지 않아요. 정치적 행위를 통한 성공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정체 상태의 시민에게 왜 투표하지 않느냐는 다그침이 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투표에 관심이 없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의 조건을 바꿔주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해주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지요. '투표하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왜 투표하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작은 승리'의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구조 타령보다는 미시적인 각론에 충실해야 한다.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어서 긁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신뢰로 세력화를 이루고, 그렇게 결집된 힘으로 구조 개혁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 기반 없이 외쳐대는 구조개혁은 양심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한 마스터베이션에 전락하기 쉽상이다.(118~119쪽)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보다는 청년들이 만든 작은 유니온들이 더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국회의원 하나 없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더 앞장서고 있다.

 

나 역시 '2세대 진보정치'와 '2세대 사회운동'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청년유니온(노동)'과 달팽이유니온(주거)'처럼 거대 구조 보다는 의제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이 필요하다. 진보는 구조에 더 신경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야 한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할 수 있겠다. 청년들이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현 상황에서 구조 타령은 허황된 선문답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작 청년들이 정치에서 배제되면서 실질적으로 청년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년이나 임금피크제, 노동법은 모두 기성세대와 관련있는 일이다. 여야 모두 청년의 문제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 역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욱더 청년의 청치참여가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쉽지 않다. 강준만은 공간의 활용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청년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에 대한 투자는 소모적 복지가 아니다. 세대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출발은 청년 정치인 양성에 있다. 세대갈등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청년들이 이내 좌절하고 꿈을 접는 나라는 미래가 어둡다.(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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