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 - 착한 음식의 거짓말
정재훈 지음 / 다른세상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지금처럼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을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먹을 것이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세상이었다. 20세기초 공기에서 암모니아를 만들어내 비료를 만들어낼 기술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음식을 골라먹는 고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빈곤에서 벗어난 지금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슈퍼푸드, 미네랄 함유 음식들. 어떤 비타민이 부족하면 무슨 병에 걸리고, 사실은 못먹을 때 이야기가 아닐까? 

대부분의 현대인이 비타민 결핍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실제로 비타민 결핍으로 문제를 겪는 건 가간한 지역에 국한된다. 폴란드 출신의 화학자 풍크가 티아민에 비타민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붙였던 시절만 해도, 현미 대신에 백미를 먹고 각기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쌀이 도정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이 풍부한 배아와 쌀겨층이 제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에는 쌀 이외에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백미를 먹는다고 각기병에 걸리지 않는다.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과거 가난한 자의 음식이었던 폴렌타를 자랑스럽게 내어놓는다. 사람들은 그걸 먹더라도 이전처럼 펠라그라에 걸리지 않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결핍은 예난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걱정거리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정말 치명적인 것은, 비타민의 결핍이 아니라 빈곤이다.(69쪽)

 

인간은 몸은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잡식동물로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자연에서 섭취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영양을 섭취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특정 영양소만 섭취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음식을 섭취하는 일 또한 복잡하다. 인간은 예부터 미생물과 경쟁하는 조건에서 생존했다.

우리 몸이 음식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이용하는 과정은 복잡한 화학반응이 정밀하게 조절되는 매우 섬세한 활동이다. 마르코 리바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양 상태가 좋다는 것은 여러 영양소가 복잡한 과정을 통해 미묘한(그리고 어떤 면에선 신비로운) 균형을 이루었다는 의미다."  ... 산소는 몸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높은 압력으로 순수한 산소는 폐를 상하게 할 수 있다. 적절한 수분 섭취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해롭다.(42쪽)

 

음식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단일 성분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빚어내는 것이며, 한 가지 음식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 음식이 만들어내는 전체 패턴에 따른 결과다. 한 가지 성분, 한 가지 음식에 의존하는 것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190쪽)

  

사람과 미생물 간의 경쟁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썩은 과일은 고약한 냄새와 맛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미생물이 과일을 독식하려고 그 맛과 향을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과 미생물이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을 때도 있으니, 그게 바로 발효다. 발효된 음식은 미생물이 먼저 음식 속의 영양분을 먹고 나서 남긴 음식이다. 미생물이 콩을 먹고 부산물로 남긴 음식이 간장과 된장이고, 포도를 먹고 남긴 음식이 와인, 우유를 먹고 남긴 음식이 요거트이다. 미생물이 독차지한 부패 음식과는 달리 발효 식품은 사람도 먹을 수 있다. 음식물이 미생물에 의해 부패할 때는 악취와 유독물질이 생겨나는 데 반해, 발효될 때는 원래 음식의 성분이 분해되어 풍미를 내는 물질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179쪽)

 

빈곤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이제는 굉장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점점 더 다양한 음식들을 고를 수 있다. 게다가 영양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들까지 넘쳐난다. 그 정보들이 실제로 검증되었는지 확인 곤란한 경우가 많다.

빈곤에서 벗어나 정말 풍요로움에 이르렀을까? 지은이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점점 더 많은 식품이 마트에 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먹던 기존의 음식은 음식 산업화의 영향으로 단순해 지고 있다. 칠레산 청포도, 미국산 오렌지와 같이 더 많은 과일을 맛볼 수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 보면 홍옥 같은 사과 품종은 마트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지은이의 지적처럼 부사외의 사과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과연 다양해 진 것일까? 

 

마트는 다양성 그 자체다(92쪽)

표준화된 신선식품은 종류가 제한적이다. 칠레산 청포도와 미국산 오렌지로 마트의 과일 종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과의 종류는 줄어들었다. 국광, 홍옥은 마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눈에 띄는 것은 부사뿐이다.

반면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 장거리 수송이 가능하고, 단일화 규격에 맞추어 표준화하기 쉬운 가공식품은 세계화에 가장 어울리는 식품이다. 이러한 식품은 대량 생산하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섹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가공식품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사람들의 식생활에 무엇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어린이가 생라면 조각에 스프를 뿌려 먹고, 남태평양 사람들이 콘비프 통조림을 즐겨먹는 일이 이제는 자연스러워 졌다. 코카콜라 광고는 그대로 '언제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세계인의 식탁은 다양해졌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만들어낸 가공식품 문화에 맞게 표준화된 것일 뿐이다.(95쪽)

 

음식에 대한 이런 저런 판단을 하기에 앞서 조금 더 자연의 생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과일을 먹고 채소를 먹는 것일까? 지구의 생태흐름 속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억지로 먹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식물은 먹히고 싶지 않다. 먹히기를 바라는 것은 식물자체(채소)가 아니라 과일이다. 사실 과일은 원래부터 먹히도록 설계됐다는 면에서 독특한 음식이다. 달콤한 맛과 향기, 부드러운 질감은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매력적이다. 과일은 동물을 이용해 식물의 씨를 퍼뜨리는 중요한 목적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동물이 식물의 원뜻을 거스르고 과일 속의 씨까지 소회시키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이를 대비하여 식물은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대체로 씨는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어서 깨뜨리고 힘들고, 맛도 없으며, 독성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18쪽)

 

관점을 달리해서 음식 입장에서 보자. 언론에서는 매일 포화지방이 나쁘다, 불포화지방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포화지방이든, 불포화지방이든 생물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존방식에 맞게 필요한 지방을 갖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포화지방은 나쁘고, 불포화지방은 좋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음식이지만, 먹히는 음식의 입장에서 보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 다 살아있는 생물이다. 어떤 지방에 포화지방이 더 많이 들어 있느냐, 불포화지방이 더 많이 들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 생물이 사는 지역의 기후와 관련된다. 포화지방은 불포화지방보다 낮은 온도에서 그만큼 더 안정적이다. 불포화지방은 상온에서 액체인 만큼 잘 상한다. 북극에 사는 바다 물개와 캐나다에서 자라는 아마의 씨앗 속 지방질에는 불포화지방이 많이 들어 있고, 열대 지방의 코코넛 오일과 팜유에는 포화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이유도, 아마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추운 지방에서는 상온에서 액체인 불포화지방이 부동액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서 좋고, 더운 지방에서는 잘 상하지 않는 포화지방을 가지고 있는 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자신의 구성 성분을 정하는 생물은 없다. 그러므로 생물이 자라는 환경을 무시한 채, 그것이 사람의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만 살피며 음식과 영양 성분을 좁은 관점에서 판단하는 일은, 기본 가정부터 잘못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204쪽)

 

오히려 잡식동물로 식물과 동물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며, 음식문화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근래의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게 삶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을 재배하느라 땀을 흘린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너무 자주 잊곤 한다. 그러나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나만 소중해' 정신은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 수 있고,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함께 나누고 발전시킨 것이 현대 인류 문명의 토대를 이루지 않았는가?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필연적이며, 소중한 것이다. (56쪽)

 

현재의 음식문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되새겨보자.

 

우리는 '가공'이라는 말만 들어도 모종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생식이 최고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식품 가공의 원조는 불을 사용한 음식물의 조리였다.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요리가 문명의 진보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불은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요리의 필요 때문이었고, 인간이 자연을 길들인 것은 불에 의해서였기 때문이다."브리야 사바랭의 주장처럼 불을 이용한 요리는 인류의 역사와 음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단. 가열은 세균을 죽여서 먹거리를 더 안전하게 하고, 날것 특유의 독성을 제거하여 음식의 맛과 질감을 좋게 해 준다. 익힌 음식은 날것보다 소화하기 쉽다. 삶아서 으깬 감자를 한개 먹으면 300Kcal가 흡수되지만, 생으로 먹으면 200Kcal만 흡수된다.

이에 더해 음식에서 영양소를 소화, 흡수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소비된다. 음식을 씹고, 삼키고, 위산과 소화액을 분비하고, 위와 장을 움직여서 음식을 이동시키는 소화에도 비용이 드는 것이다. 조리한 음식은 날것에 비해 이러한 소화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슈인 리차드 랭엄은 요리야말로 인류의 뇌를 커지게 해 준 배경이라고 이야기한다. 랭엄 교수의 화식가설은 다음과 같다. 익힌 음식은 날것보다 소화하기 쉽다.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부터 사람의 장 크키는 대형 유인원보다 작아졌고, 이로 인해 소화기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절약된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커진 뇌가 추가로 사용하는 열량으로 공급되었다. 요약하자면 '유인원에서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불로 익힌 음식 덕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소화하기 쉬운 음식이 사람의 커다란 뇌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이다. 뇌는 체중의 2.5%에 불과하지만, 기초대사율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싼 조직이다.(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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