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연금술 - 생명과 죽음의 원소, 질소를 둘러싼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홍경탁 옮김 / 반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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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질소를 비료로 만들어 낸 두명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이자, 19세말 20세기 초 식량생산과 관련한 미시사이기도 하다.

 

맬서스의 이론 이후 급증하는 인류와 굶주림을 해결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비료의 발견으로 그 우려에서 해방된 듯 했다. 그런데 일차적으로 새들의 분뇨인 구아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초석이라 불리는 천연 질산염을 찾아냈지만, 질산염이 언제까지 공급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지금도 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있던 것 처럼 19세기말 초석을 두고 페루, 칠레, 볼리비아가 질산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인류를 굶주림에서 해방시킬 질산염은 질소화합물이다. 과학자들은 공기중에 흔한 질소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프리츠 하버가 공기중에서 질소를 암모니아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스프에 있는 보슈는 곧 그 가치를 알아채고 실제 생산에 들어간다. 공기를 이용해서 비료를 만들어 낸 순간이다.

 

하버와 보슈, 그들은 나중에 모두 노벨상을 수상하며 과학자로의 영예를 갖는다. 하지만 전쟁을 두고 둘은 자신의 과학에 큰 고민에 빠져든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부와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바스프는 이제 더는 단순한 화학기업이 아니라 방위 산업체가 되었다. 보슈는 이런 현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팀원들도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식량 생산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는데, 지금은 같은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고 있었다. 보슈는 이에 대해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보슈의 수석보좌관은 초석 협상과정에서 보슈가 "더러운 비즈니스"라고 표현했던 것을 기억했다. 거래가 마무리되자 보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취하고 싶은 날이다"라고 말했다.(179쪽)

 

보슈는 과학이 그리고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전쟁에 활용되는 것에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나치와 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보슈는 과학과 기술을 하도록 타고난 사람이었다. 결과는 이제 명백하다. 친구이자 동료인 반나치주의자 헤르만 뷔허는 보슈가 우울증에 빠져드는 모습을 절망적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썼다. "죽기 전 몇 년 동안, 비록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히틀러의 정책을 실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보슈 평생의 사업, 과학적 발견과 공장들, 전 세계를 먹여 살리고 회사의 수익을 올리려는 시도들은 나치를 무장하고 나치의 연료를 공급하는 데 이용되었다.(319쪽)

 

반면 하버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한다. 화학무기를 개발하는 선두에 서서, 화학전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화학가스에 의해 사람들이 죽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전쟁의 승리에 목말랐단 것처럼 행동했다.

사람들은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을 화학자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확실히 독일에게는 정확한 표현이었다.
....
하버는 충심을 다해 전쟁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하버의 연구소는 군사 연구에 전념하는 연구센터로 바뀌었다. 하버는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했고, 정책을 입안하려고 아이디어를 짜냈으며, 거래를 주선하고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가능하면 늘 제복을 입었다. 하버는 군과 민간기업이 한 몸으로 합쳐진 집합체였다.
누군가 과학자를 비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버를 보면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버는 승리만을 추구하는 냉혈한이었다. 하버의 동료에 따르면, "하버는 지식은 사람을 부드럽게 변화시킨다는 몽테스키외의 믿음을 계속해서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 하버의 야심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마치 혼자서 전쟁에 나가 이기려는 사람 같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버는 개종을 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하버를 여전히 유대인으로 생각했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대체로 전쟁에 극도로 열성을 보였다. 다른 독일인과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황제를 위해 싸워서 독일인으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196쪽)

 

1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전쟁배상 등 책임을 져야 했다. 하버와 보슈가 만든 공정은 프랑스, 영국 등에 의해 감시당했다. 현명한 보슈는 비료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기를 바라면 최대한 기술을 들키지 않기 노력했다. 반면 하버는 지속적으로 화학가스를 개발했다.

 

하버는 독가스개발을 시도하는 것이 독일의 미래를 보장하고 그 결과 다시 한번 위대한 나라로 부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하버는 연구실에 이프르에서 벌였던 최초의 독가스 공격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걸어놓았다. 독일 국방부와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학전에 대비하여 개발한 최소한의 일부 공법과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평화 시에는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연합국 조사관들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동시에 독일이 벌인 화학전에 깊은 인상을 받아 직접 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싶어하는 나라들에 은밀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불법 무기와 관련한 어둠의 비즈니스에서 일종의 중개인이 되어, 독가스전에 관한 고급 질문에 조언을 해주며 전쟁 중에 겨자가스 공장을 운영했던 사람과 연결해 주었다.(233쪽)

 

하지만 나치는 반유대정책을 펼쳤다. 하버가 아무리 독일인이었고, 독일의 승리를 위해 노력했지만, 나치가 보기에 하버는 유대인일 뿐이었다.

하버는 죽었지만, 그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하버의 연구를 이어 받아 독가스가 개발되었고, 그 독가스는 유대인을 죽이는데 활용되었다.

프리츠 하버가 연구하던 화학 살충제는 건물의 이를 잡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어졌고, 다른 학자가 연구를 계속해 치클론B zyclon B라는 독가스를 개발했다. 나치는 이 독가스를 강제 수용소의 수감자를 죽이는 데 사용했다. (343쪽)

 

과학은 정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하버는 공기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기술로 인류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했다. 반면 화학가스 전쟁을 주도했고, 유대인 학살에 쓰인 독가스를 개발했다. 과학자는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중립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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