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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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벨문학상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선정되었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이름.

 

책을 들었다. 발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처럼 출근하고 퇴근한다. 월급도 평균적으로 받는다. 1년에 한 번씩 휴가를 떠난다. 아내와 아이들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체르노빌 사람이 되어버린다. 돌연변이가 된 것이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생물체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지만 이제 불가능하다.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묻는다. "거기 무서웠나요?" "발전소가 어떻게 탔죠?" "무엇을 봤어요?" "아이는 낳을 수 있대요?" "아내는 안 떠났어요?" 순식간에 희귀 전시물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체르노빌레츠'라는 단어가 들리면 사람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서 왔대!"(66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바로 며칠전 노벨경제학상과 관련해 조선,중앙,동아, 매경, 한경이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영문기사들을 좀 검색해봤다. 뉴욕타임즈를 읽다가 내가 발췌한 부분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There you are: a normal person. A little person. You’re just like everyone else — you go to work, you return from work. You get an average salary. Once a year you go on vacation. You’re a normal person! And then one day you’re turned into a Chernobyl person, an animal that everyone’s interested in, and that no one knows anything about. You want to be like everyone else, and now you can’t. People look at you differently. They ask you: Was it scary? How did the station burn? What did you see? And, you know, can you have children? Did your wife leave you? At first we were all turned into animals. The very word “Chernobyl” is like a signal. Everyone turns their head to look. He’s from there!

 

 

출판평론가 장은수씨는 SNS에서 이렇게 그녀를 설명했다. 그녀를 읽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국내 언론에서 알렉시에비치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면서 "목소리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작가 스스로가 밝힌 바도 있어서 못 쓸 표현은 아니지만, 가디언, 뉴욕타임스 등 해외 뉴스를 살펴보건대 그다지 널리 쓰이는 개념은 아닌 것 같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설"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뜻이다.

알렉시에비치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그보다는 "사실들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들의 역사"를 그려냈다는 평가가 절묘했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의 목소리" "소비에트 연방 또는 소비에트 연방 이후 개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말도 와 닿았다.

목소리가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알렉시에비치는 여러 작품에서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침묵을 강요하는 정치적,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 없이 좋은 문학도 없다. 표현 그 자체에 정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정치가 표현을 만든다. 또 표현이 없다면 정치도 없다. 수천 명의 목소리를 누적해서 새로운 표현을 개척한 알렉시에비치에게 경의를 표한다.

 

선정이유와 선정에 대한 그녀의 소감은 다음과 같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이에 앞서 알렉시예비치가 "다성적(多聲的· polyphonic)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용기를 담아내는 데에 기념비적인 공로를 세웠다"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이날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상을 수상해 개인적인 기쁨'을 느낀다"면서도 "이 상은 나를 위한 상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고통받아온(caught in a grinder throughout history) 작은 나라, 우리의 문화에 주는 상"이라고 말했다. 구소련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에 짓눌린 약소국의 비애가 담긴 말로 풀이된다.

그는 또 "전체주의 체제와 너무 쉽게 타협하지 말라"는 충고의 말도 곁들였다. 이어 "우리 시대엔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힘들다"면서 "전체주의 체제가 제안하는 타협에 쉽게 응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http://news1.kr/articles/?2453512

 

하지만 그녀의 책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목소리들이 들려내는 소리에 담겨있는 아픔을 견뎌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4년동안 수술을 네 차례 했다. 이런 복잡한 병리현상을 지니고 살아남은 유일한 벨라루스 아기가 내 딸이다. 나는 딸을 매우 사랑한다. (잠시 멈춘다) 나는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다. 용기가 없다. 산부인과에서 돌아온 후로 남편이 내게 키스하면 나는 벌벌 떤다.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이건 죄야. 두려워 (135쪽)

그 좋은 어머니가 내가 체르노빌 출신 이주민이라는 걸 알았을 때 놀랐어요. "얘야,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니?" 그런데 우리는 이미 혼인신고를 했어요. 그이가 애원했어요. "집에서 나올게, 어디 세 들어 살자." 하지만 내 귀에는 다른 소리가 들려요. "얘야, 아이를 낳는 게 죄인 사람이 있단다." 사랑하는 것이 죄에요.(164쪽)

 

사랑해서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첫 아이를 기다렸어요. 남편은 아들을, 나는 딸이 태어나기를 바랐어요. 의사가 나를 설득했어요. "임신 중절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남편께서 체르노빌에 오래 계셨어요."
운전기사인 남편은 사고가 난 직후 그곳으로 불려 갔어요. 모래와 콘크리트를 운반했거든요. 하지만 난 아무도 안 믿었어요. 믿기 싫었어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책에서 읽었어요. 죽음까지도 ·····.
내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어요. 손가락도 두 개 모자랐어요. 여자아이였어요. 난 울었어요. 손가락이라도 다 있었더라면 ·····. 여자 아이잖아요.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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