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미식회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맛집 가이드
tvN 수요미식회 제작팀 엮음 / 시드페이퍼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먹방, 쿡방이 대세이지만 그중에 관심이 가는 것은 '수요미식회'다. 많은 사람들은 맛집 정보에만 관심이 있겠지만 나는 맛집보다는 왜 맛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더 관심이 있다. 그런 관심은 미식의 기준을 삼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밍밍한 냉면을 즐겨야 미식 고수로 평가받는 이상한 공식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맛이 강하지 않고 흐릿한 평양 냉면은 대충 먹어서는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음식에 비해 맛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감각을 맛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느껴야 하기에 '평양냉면을 즐기면 맛을 아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257쪽)

 

먹는데 관심이 있다 싶으면, 평양냉면 집에 데려가 본다.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그의 입맛을 믿지 않는다. 말 그대로 초딩입맛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사실 개인적인 욕심은 둘째 딸이 미각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인데, 다섯살 둘째는 두부, 묵, 평양냉면 등을 잘 먹는다. 첫째는 한입 물고는 그 다음부터는 손도 대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수요미식회'의 장점은 맛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과 사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중국요리를 시키면 무조건 따라 나오는 단무지! 하지만 단무지는 중국이 아닌 일본의 음식읻. 그런데 어쩌다 한국 땅에서 만나게 된 것일까? 이는 중국집이 일제강점기의 청요릿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단무지 같은 반찬을 요리에 곁들이기보다 식욕을 돋우는 전채요리의 개념으로 먹는다.

또 하나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양파다. 양파가 우리나라로 처음 들어온 것은 1906년이며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창녕, 무안 등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공급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곳에서 수요가 생겨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중국 요릿집이었다. 이렇게 한국 중국집에서 중국의 요리와 일본의 단무지, 서양의 양파가 만나게 된 것이다. 요즘은 김치도 함께 놓이고 있으니, 밥상의 세계화를 중국집에 느낄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반찬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중국집에서 조차 단무지와 양파를 반찬으로 해서 먹는다. 우리 식문화와 외부 음식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로 어우러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몇 십년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100년. 일제시대, 한국전쟁시기를 거치면서 먹을 것 자체가 부족했던 우리나라가 식문화를 갖는 것은 사치였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왠만한 것들이 근래의 것들이다. 근현대 산업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식문화이다.

 

1970년대 초중반 이후, 저국의 시장에서 우후죽순으로 통닭골목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식용유의 보급과 큰 관련이 있다. 1971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식용유 공장이 크게 생겼고, 이때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식용유가 공급됐다. 식용유를 짜고 남은 옥수수와 콩 찌꺼기는 닭의 사료가 되므로 더불어 닭의 생산량도 급증했다. 식용유 공장이 지어지면서 저렴한 기름과 사료가 확보되어 닭을 대량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자 여기저기 '통닭골목'들이 생겨난 것이다.(13쪽)

 

1970년대 들어와서야 미국에서 오는 값싼 곡물로 돼지를 많이 키우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 잉여곡물인 옥수수는 보관기간이 짧아 그 해 생산량을 모두 소비해야 한다. 따라서 옥수수가 대량으로 저렴한 가격에 들어왔고, 옥수수 기름을 짜 식용유를 만든 뒤 나머지는 모두 사료로 사용됐다. 이렇게 돼지고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김치찌개와 돼지고기의 찰떡궁합 역사가 시작되었다. (33쪽)

 

1970년대부터 길거리 음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전까지는 길거리 음식의 주재료인 밀가루나 기름, 설탕이 귀해서 음식을 팔기 어려웠지만,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느라 길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된 것이다. 이때 국화빵, 당면순대, 붕어빵, 김밥과 같은 길거리 음식의 종류도 늘어났다.(124쪽)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 정서와 짜장면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반찬도 단무지 하나면 끝나니까 산업화 시대의 전투식량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1960년대부터 분식장려운동이 일어나면서 밀가루 소비를 권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짜장면이 특히 사랑받았다. 그동안 전쟁을 겪으면 굶주리던 사람들이 짜장면의 단맛과 기름 맛의 조화에 급격하게 빠져들었던 것이다.(150쪽)

 

우리의 식문화가 대체로 1970년대 산업화 이후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전에는 음식 자체가 부족했으니까.

 

음식을 통해서 아픈 사회현실을 돌아볼수도 있다. 삼겹살의 대중화가 그렇다.

삼겹살이 국민고기로 자리잡은 약 35년 동안 끝없는 진화를 계속해왔는데 가장 큰 계기가 바로 1997년에 발생한 IMF였다. 1980년까지만 해도 삼겹살은 가끔 먹는 별미 정도였는데,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삼겹살 식당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전만 해도 외식하면 소갈비로 통했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갈빗집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소고기의 가격도 비싸지면서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었고, 그 대안의 3분의 1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을 찾았다. 또한 당시에 명예퇴직자들이 창업 아이템으로 기술이 크게 필요없는 삽겹살집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렇게 삼겹살집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다 보니 차별화가 필요했고, 이때부터 이색삼겹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215쪽)

 

이런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우리 내면은 어떨까? 우리의 굴곡진 역사가 만들어낸 음식문화,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아주 결정적인 이유는 문화적 차이다. 파스타를 이탈리아에서는 코스 요리 중 하나로 먹지만 한국에서는 단품으로 먹는다. 그러다보니 메인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파스타에 집중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끼마다 파스타를 먹기 때문에 한 가지 재료에 집중해 본연의 맛을 즐기지만, 한국인들은 어쩌다 한 번 타스타를 먹기에 여러가지 맛을 한번에 느끼려다 보니 점차 변형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입맛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쳐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먹을 만한게 없었다. 좋은 재료에는 소금만 쳐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우리에겐 겨우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재료만 있다 보니 배를 불리기 위해 갖가지 양념으로 양을 늘리고 국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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