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산책 -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의 역사
션 B.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Biz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어려운 분야다. 실험실에서 연구를 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발품을 팔아 지각 속에서 증거인 화석을 찾아야 한다. 온전한 화석을 찾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화석을 연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리고 연구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다윈은 종의기원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도 20년이나 묵혀두어야 했다. 당시 종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지질학, 생물학 등 내부에서의 깐깐한 비판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진화론이다. 이 책은 이런 진화론의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진화론 역사의 선조는 훔볼트이다. 그가 진화론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남미 대륙 연구가 많은 이들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다윈과 월레스와 베이츠에게 진화론의 공을 돌려야 한다. 사실 월레스와 베이츠가 없었다면 다윈은 그의 <종의 기원>을 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 수집의 한가운데에 세 번의 항해와 세 명의 영국인 자연과학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닌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다. 다윈이 자연사와 진화 이론 연구에 기여한 바는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떻게 그 배에 올랐는지, 그의 견해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 이해되기도 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비글호에 올랐던 신학생 한 명이 미래에 혁명적 이론을 제시할 사람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항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윈에게 그 어떤 위대한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박할 증거를 찾으려는 의도 따위는 없었다. 그의 진화 이론이 구체적 형태를 띤 것은 항해가 끝나고 자신이 그곳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혼자 생각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반면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와 헨리 월터 베이츠는 항해 시작부터 진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1840년대 중반 이미 지식인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친구인 베이츠에게 함께 아마존으로 가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풀’ 자료를 모으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월레스였다.

(중략)

이들의 여정은 힘들고 괴로운 순간과 환희에 찬 기쁨의 순간으로 채워진, 진정한 서사시였다. 벌레, 새, 움직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수집하던 세 남자는 종의 다양성과 하나의 종안의 변종들, 그리고 이러한 종과 변종들의 지역적 분포에 대해 점점 올바르게 인식하게 됐다. 그들이 각자 나름대로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본디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이 덕분에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과 공통 조상에게서 퍼져 나온 후손의 발달을 연구했고(2장), 월레스는 개체 사이의 '생존투쟁'이라는 자신의 독립적인 개념과 아시와와 오세아니아 동물을 분류하는 이른바 '월레스 선'에 전념했으며(3장), 마지막으로 베이츠는 야생에서 자연선택에 대한 최고의 증거를 제공했던 동물의 의태 현상 이론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4장)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진화 이론은 모두 영원히 다윈의 것 처럼 보이게 됐지만 그러한 이론이 발전하고 초기 과학계로부터 널리 인정을 받는 데는 각각 월레스와 베이츠의 공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32~34쪽)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나왔다고 진화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에는 너무 많은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왜 공룡들은 갑작스레 사라졌는지 규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것을 찾기 위해 그랜드캐니언을 뒤지고, 몽골을 뒤지며 학자들은 진화의 연대기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공룡이 갑자기 멸종한(? 멸종은 아니니) 원인도 찾아냈다. 그리고 진화의 연결고리들 바다에서 육지로 나온 생물을 찾아내며 진화를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땀과 열정으로....

 

"인간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다윈의 혁명적인 책이 등장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이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 고생물학에서 가장 대담한 탐험과 위대한 발견들이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둘 사이를 연겷는 고리 역할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고생물학 역사상 가장 그 목표가 뚜렷하고 집요했던 탐험 중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고대의 인류를 찾기 위한 외젠 뒤부아eugen dubois의 탐험이었다. 그는 이 탐험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버리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열대의 인도네시아로 향했다.(5장). 다윈의 새로운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뒤부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발견한 '자바원인'은 최초의 연결고리로서 그 이후 발견된 모든 원시인류 화석과 ...각종 주장을 둘러싼 열띤 논쟁의 전조와도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캄브리아기 화석에 등장해 다윈을 걱정시킨 동물의 흔적에 관한 사연이다. 더 오래된 화석과 동물 시대의 여명을 향한 연구 덕분에 찰스 월코트 charles walcott가 다음 두 가지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다.(6장) 첫째, 그랜드 캐니언 깊은 곳에서 그는 캄브리아기 이전에 생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고 이 증거는 생명이 그 보다 훨씬 전에, 더 단순한 형태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두 번째로 캐나다 로키 산맥 정상, 버지스 혈암 Burgess Shale에서 그는 그 어는 것보다 역사가 길고 가장 특이한 생물의 가장 큰 흔적을 발견했다.
....
모든 화석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동물은 물론 공룡이었다. 가장 위대한 자연사 탐험이라 불리는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의 몽골·고비 사막 탐험(7장)은 공룡이 아니라 고대 인류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됐다.
....
백악기 말 공룡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초기 고생물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년 후, 물리학자 아버지와 지질학자 아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탈리아 외곽의 작은 마을, 얄팍한 진흙층 속에서 최초의 단서를 발견하기까지 그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8장에서는 이 거대한 멸종현상, 곧 20세기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혁명적인 발견 중 하나인 이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전 세계를 탐험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
1960년대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19세기에 발견된 주요 화석을 다시 검사한 끝에 사실 조류가 일종의 공룡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공룡과 진화 연구에 르네상스를 맞은 것이다.(9장)

동물의 진화에서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연구는 아직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지구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면서 중요한 진화 현상을 보여주는 놀라운 생물들을 더 찾아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놀라운 과도기적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이 최근 북극에서 발견돼 2006년 학계에 보고됐다. 어류와 네 발 달린 척추동물의 특성을 모두 보여주는 '피셔포드fishapod'라는 이름의 이 생물은 육지 동물의 변천 현상을 보여주며 동물 역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10장)"
(115~117쪽)

 

하지만 여전히 인간에 대한 연구는 더디기만 했다. 하지만 단초는 인간 화석이 아니라 유뮬로 부터 풀렸고, 과학의 발전으로 DNA 를 분석하게 됨으로 진화론의 부족한 부분들이 하나씩 메워져 나간다.

"원시 인류의 화석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의 조상은 떼를 지어 드넓은 대륙을 떠돌아다니지도 않았고, 해저 깊숙한 곳에 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동물들처럼 그 수가 많지도 않았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훨씬 더 제한된 분포를 보였다. 몸통뼈는 두개골로부터 쉽게 분리되고, 두개골은 조그만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진다. 뒤부아의 발견 이후 앤드류스의 탐험을 포함해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단서를 줄만한 증거는 거의 40년 동안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몸집과 두개골 크기가 현대 인간과 훨씬 더 비슷했지만, 오히려 완전히 다른 종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증거라고 보기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과정을 연결할 다른 고리는 알려지지도 발견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1920년대 초기 뒤부아 이후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고대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뒤부아 연구 이후 아시아에 집중함) (273쪽)"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는 다시 아프리카로 넘어갔다. 그러한 관심의 이동을 촉발한 것은 화석이 아니라 도구였다. 1920년대 후반, 다량의 도구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굴됐고 이것이 다른 곳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된 것으로 보아 고대에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도구와 그것을 만든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바로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새로운 인간과科 동물화석이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1959년, <종의기원>이 출판된지 정확히 100년 후 였다. 유인원과 우리를 연결하는 원시인류의 모습이 그 때 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간 기원 연구의 초점은 아프리카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드러나는 인간 자연사의 그림이 화석이나 도구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과 고대 인간의 DNA를 검사해서 인류의 역사를 해석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인간 기원 연구에 혁명을 일으키며 인간 기원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했다."(274~275쪽)

 

우리는 이 발견을 이뤄낸 과학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사자와 마딱드리기도 하고, 북극곰의 공포와 싸워야 했으며 실제로 풍토병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발굴에 필요한 자금문제로 항상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아직 진행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