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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ㅣ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TV 드라마 정도전이 한참 재미를 끌고 있다. 오랜만에 정통사극을 만나는 터라 반갑다.
대중을 위한 역사와 식민사관에 대해 비판해 온 이덕일이 바로 이 드라마팀을 대상으로 한 역사특강을 다룬 책이 나왔다. 조선의 설계자라 알려진 정도전에 대한 책이다. 책 제목인 <정도전과 그의 시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도전과 정도전이 새로운 국가를 열기 위한 시대적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덕일 답게 왜 이 시대에 정도전인지를 설명하며 책을 시작한다.
지금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내적인 문제와 외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내적으로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양극화가 심각했습니다. 소수의 구가세족이 나라의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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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인들에게 소출의 8~9할을 뜯어가던 고려 사회와 한달에 20~30만원 버는 폐지 줍는 빈민층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한국사회는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고려는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그 결과 정도전 같은 인물이 나와서 판을 엎었던 것입니다. (9쪽)
이덕일은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고려가 패망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원래 고려는 전시과제도라는 토지제도를 운영했다. (농지 田과 땔감을 구할 수 있는 땅 柴을 뜻함) 그러나 원나라 지배체제 이후 관리들에게 더 이상 땅을 줄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된다. 토지겸병이 심해져 한 토지에 6-7명의 주인이 있어 농민들은 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자기 손에 가져갈 곡식은 거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노비가 되는 경우가 흔해지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선왕, 충숙왕 등이 개혁을 하고자 했으나, 원나라를 등에 업은 부원배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공민왕은 신돈을 내세워 개혁을 잘 하는가 싶었지만 신돈에 대한 의심으로 결국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소수의 구가세족들이 국가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신흥사대부들과의 토지문제가 불거진다.
토지문제가 고려의 제일 큰 문제로 인식한 신흥사대부는 토지 주인을 한명으로 줄이므로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본 온건파와 토지제도 자체를 뒤바꾸려는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된다.
고려를 패망하게 한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인 위화도 회군역시 토지문제로 설명이 가능하다. 직업군인들에게 군인전이라는 토지를 주어 군대를 운영했는데 구가세족들이 군인전마자 장악해 더 이상 군대를 운영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동정벌을 꾀하던 5만명은 고려의 유일한 정규군이었고, 이들이 회군했을 때 막을 수 있던 중앙군조차 없었던 것이다.
위화도 회군이후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역성혁명파는 이성계를 등에 업고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공사전적 즉, 토지문서를 불태우고 새롭게 과전법을 도입한다. 전국의 토지를 재측량하고 토지의 소유가 아닌 토지에서 세금을 받을 권리만 주게 했다. 기존 구가세족들의 재산을 불리던 토지가 국가와 왕실의 재원과 관료들의 녹봉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세력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신흥사대부들은 녹봉이 생기면서 혁명세력의 물적기반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백성들에게는 소출의 8-9할을 세금으로 내던것이 1할 이하로 떨어지는 효과가 생기면서 백성들의 지지기반도 만든다.
바로 이렇게 조선왕조 개창의 기반이 된 토지제도를 설계한 것이 바로 정도전이다. 정도전의 이런 토지제도 개혁은 단순히 개혁적인 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배기간 동안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 컸다. 게다가 정도전은 북위에서 수-당으로 이어진 균전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정도전이 토지제도만 개혁한 것이 아니다. 성리학적 이념에 의한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설계했다.
하지만 조선왕조 개창의 근간이었던 토지개혁은 세종때 개인이 소유한 사전을 허용하고 세조때 단종 폐위에 앞장선 공신들에게 개인소유 사전을 대폭 허용한다. 토지문제에 있어 다른 입장이었고, 조선왕조 개창에 반대했던 온건개혁파들이 세조 이후 사림파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재등한다.
결국 토지제도는 100년전 고려말로 돌아갔다는 저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당시 조선왕조개창에 반대했던 온건파들이 사림파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한다는 점도 반복되는 역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사실 이덕일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꽤 많은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선개창과 정도전을 이해하는 입문서로는 이 책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관심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 또한 이 책의 장점이라면 교과서에 배우던 이기론 등과 같은 개념에 대해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는 근육이 조금씩 느는 느낌이다. 정도전을 알기 위해 한번 읽고 그외에 설명되는 부분들을 틈틈이 반복해서 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