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는다는 것, 소설의 재미 중에 하나는 바로 카타르시스일게다.
감정적환희가 아닌, 글자 하나 하나가 눈속에 박혀들고 마음으로 스며들고 몸서리쳐지는,,,
때로는 유쾌해지기에, 혹은 동질감을 느끼기에 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그 몸서리를 잊지 못해 다시금 소설을 읽을 때도 많을 것이고,
그 순간 함께 행복해진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고등어>로 머릿속에 남아있던 공지영의 소설을 10년만에 손에 들게 되었다. 애초에 <별들의 들판>을 사려던 것이 얼떨결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손에 들려져 있었다.

가끔은 소설은 독자들에게 '삶'에 대해서 묻는다. '삶이란 무엇이냐?'고, 그 때 마다 독자는 나는, 대답을 유보할 수 밖에 없고, 소설만 응시할 뿐이다. 곁눈질로 삶에 대한 힌트만 찾을 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나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삶이 무엇이냐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여자와 사형수간의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던 집안의 막내 딸 유정은 세번째 자살기도를 한다. 집안의 골치거리 역을 하고 있는 유정에게 수녀인 유정의 고모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고모가 하고 있는 사형수들을 만나는 일에 일주일에 한번, 한달간 동행하기로.

열입골살짜리 소녀를 강간, 살해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가정부마저 살해한 후, 인질극을 벌이다 잡힌 윤수는 사형수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사람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잔인 무도한 자다.

그런 그들이 사형수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수녀인 유정의 고모를 매게로 만남을 갖는다. 유정의 고모는 사형수들을 교정하는 일을 하는 종교위원이지만, 교화가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사형수들을 대한다. 고모를 매개로 모든 삶에 대해 냉소적인 유정과 삶에 대해 온통 적개심으로 가득찬 윤수가 서로의 삶을 소통해낸다.

언뜻 착한 고모를 매개로 냉소적인 유정과 적개심으로 가득찬 윤수가 서로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삶을 살만하다고 느낀다는 단조로운 스토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맘을 터 놓고 소설과 맞대면하게 되면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삶의 고통이 지금 현재의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유정처럼 냉소적으로 되거나, 아니면 사회에 대해 불만(조금 더 한발 진행하면 적개심)의 눈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니면 유정의 고모처럼 세상을 사랑하던지의 모습일 것이다. 소설속의 인물들과의 관계는 나와의 관계인 것이다.

소설에서 유정은 이런말을 한다. 사실과 사실이전의 사실인 진실에 대해. 소설속의 인물들에게서 나타나는 냉소, 증오, 사랑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이전의 사실은 상처라는 진실을 갖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이 사실속에서 진실을 찾아감으로 삶의 존재를 회복하는 것 처럼 독자(나)는 소설속의 인물들을 만나 마주보며 내 안의 진실을 찾아간다.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것은 독자와 소통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물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진실을 내어 놓은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을 열고 소설을 대해야 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은 존재의 회복, 삶에 대한 간절함을 던져주는 것 이외에도 부록으로 사형제도의 문제, 수형자들의 문제를 던져준다. 영치금 한푼 없어 제대로 된 약 하나 복용하지 못하는 수형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있어서 그보다 나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소설을 편견으로 읽은 사람일 것이다.나보다 나은 사람이건 못 한 사람이건 서로의 진실을 보담는 것이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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