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주연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한참 재미있게 즐겼다. 당시 강마에(김명민)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단원들을 대하는 모습은 거의 독재자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전문직종의 경우 그런 독재가 통하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요리의 세계가 그렇고, 예술의 세계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특히나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유명 지휘자들이 독재자처럼 군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아바도는 거의 대부분의 유명지휘자들이 독재자처럼 군림할 때 민주적인 비상업적인 지휘자로 유명하다.

 

아바도는 1933년 6월 26일 이태리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음악가로 유명한데, 아바도 패밀리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책에 실려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베르디 음악원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로 아바도(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그는 졸업 후 라스칼라 극장에 지원했다. 면접관이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출시학교 추천서를 받아 오라고 했다. 그는 베르디 음악원에 갔는데, 음악원장은 마르첼로 아바도였다. (클라우디오의 형) 결국 추천서를 받지 못하고 다른 악단에 원서를 냈는데 그곳의 지휘자는 사촌동생 로베르토 아바도였다. 오케스트라를 포기하고 독주를 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를 찾았는데, 그녀는 누나 마리아 아바도 였다. 이번에는 작곡을 위해 악보 출판사를 찾아가 출판부장을 만났는데 역시 누나 루치아나 아바도 였다.

후에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찾았는데 그곳에는 미켈라젤로 아바도가 있었다.

(클래식수첩,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2 및 인터넷 참조)

우스갯소리로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아바도 가문은 음악적으로 대단한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부터 음악적 혜택을 보고 자란 아바도는 베르디 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운다.(다니엘 바렌보임, 주빈 메타와 같이 수학했다고 한다) 졸업 후 미국 미트로폴리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고.), 빈과 라스칼라에서 지휘자로 데뷔한다. 라스칼라를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이끌었고, 1979년에서 1988년 까지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았다. 이후 빈 국립가극장 음악감독을 거친 그는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된다. 그가 분명히 뛰어난 지휘자였던 것은 맞지만 카라얀의 뒤를 이어 아바도가 되었다는 것과 베를린 필하모니 단원들이 투표를 통해 그를 선출했다는 점에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2002년 베를린 필을 떠나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결성한다. (꽃보다 할베에 나온 그 루체른) 평소 젊은 음악가들 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스스로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는데 말러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그와 친분이 있는 내노라 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1년에 한번씩 말러를 순례한다.

 

그 연주를 볼 수 있는 기획 DVD가 있어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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