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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게 20년 쯤 전이다. 당시의 하루키의 열기는 지금 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을 끝으로 하루키를 손에서 놓았다. 허전함. 허무함 그리고 지루함 때문이었다.
그 상실의 시대가 원래의 제목 '노르웨이의 숲'을 되찾아 출간되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를 읽은 탓에 (20년 만에 다시 하루키를 손에 든 탓에) 하루키의 다른 책 '노르웨이의 숲'과 '1Q84'마저 손에 들었다. '해변의 카프카'까지 손을 뻗쳐야 하는지는 아직 고민중이다. 그리고 '1Q84'를 다룬 책 두권을 함께 읽었다. (이 책들은 아직 후기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첫 인상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1Q84'가 '태엽감는 새'와 그 이전에 출간된 작품과 연관성이 있다면 '노르웨이의 숲'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와 너무 닮아있다. 그의 작가적 게으름이 의심이 드는 순간이다. 물론 그의 생활이 매일 아침 마라톤을 하고 하루의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 소설을 쓰는 성실함을 보여주지만 실상 그의 작품은 비슷한 류의 작품이 양산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창작이 아닌 예전 작품 우려먹기?! 물론 비슷한 소재로 다른 심리를 그려낼 수는 있다. 하루키의 장점이 바로 그런 점이니까.
그리고 지루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소설을 끝까지 긴장감있게 밀고 가야하는데 하루키에게서는 그런 매력은 없다. ('1Q84'의 경우 2권 중반부터 긴장감이 사라지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의 경우도 핀란드로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아마추어스러운 전개가 이루어진다.) 1/3 정도만 줄였어도 조금 더 괜찮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쓸데 없는 잠언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48쪽)
책이나 팔아먹는 2류작가들이 쓰는 행태를 따라하고 있는데 이런 하루키를 어떻게 봐야 할까.
쓰잘데기 없는 잠언의 남발, 독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노파심, 장편에서 보여지는 지루함은 여전하지만, 하루키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순간 입을 꾹 다멀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체념하고 자리에 앉아 두 병째 와인의 나머지를 마셨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막차도 통금도, 모든 것을 흘러가는대로 내버려 두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나오코의 이야기는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불현듯 나오코가 말을 멈추었다. 이야기가 끝난 것이다. 말꼬리가 잘려 나간 듯이 허공에 떠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툭 끊어져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말을 하려 했지만, 이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가 빠져 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걸 빠져 버리게 한 것이 혹시 나인지도 모른다. 내가 한 말이 겨우 그녀의 귀에 닿아, 얼마간 시간을 두고 받아들여져서, 그 탓에 그녀를 계속 말하게 했던 에너지 같은 것이 뚝 떨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오코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내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작동 중에 갑자기 전원이 나가 버린 기계 같았다. 그녀의 눈은 마치 뿌연 막을 덮어쓴 것 처럼 흐렸다.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