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궁리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라는 주제로 독서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 바로 김열규의 한국인의 죽음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도서관에 죽음에 관한 서가에서 가장 먼저 손에 든 책이기도 하다.

 

삶은 곧 죽음을 품고 있듯이 죽음은 삶과 더불어 존재한다. 개인의 삶, 공동체의 삶 그리고 역사는 항상 죽음과 함께 한다. 그래서 문화마다 죽음을 인식하고, 대하는 고유한 것이 있고, 죽음을 맞이하는 절차(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죽음 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아니, 죽음 문화 자체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문화를 잃어버렸다. 그 배경에는 박정희 시절 가정의례준칙이라는 미명아래 과거 문화를 단절시켜 버린 것이 크게 작용한다. 거기에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사회가 우리의 죽음 문화의 뿌리를 잘라내 버렸다. 죽음에 대한 공동체가 간직해 온 역사와의 단절외에 죽음보다는 돈이 먼저라 집값이 떨어질까 공원묘지, 화장장의 혐오하는 문화는 죽음을 천박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죽음은 곧 삶과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는데, 죽음에 대한 이런 우리의 태도는 결국 삶(사람)을 천박하게 여기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문화와 사상, 그리고 현재를 돌아보고 있다.

한국인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귀신이 비록 사람을 해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했다. 망자의 몸을 강하게 결박한 것은 바로 죽음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처녀시신은 밤에 몰래 네거리 밑에 엎어서 암매장을 하였다. 아기무덤은 옹기속에 구겨넣고 매장한 뒤 큰 바위로 눌러 버렸다. 죽음과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듯 죽음을 두려워하였다.

이런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한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죽음을 '숨을 거두다', '영면하다', '타계하다', '신의 부름을 받다' 등 수 많은 말로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죽는다'는 표현은 과잉 사용된다. '소리가 죽는다' 는 표현에서 부터 '배고파 죽겠다','이뻐 죽겠다' 과장법으로 사용된다. 이는 "사람의 목숨에 관련된 죽음의 낱말이 극단적으로 기피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데 대한 역설적인 사례들"(71쪽)이라고 지적한다.

 

죽음은 개인 뿐 아니라 한 공동체에게도 가장 큰 일 중에 하나였다. 죽음 및 장례는 한 공동체의 위기와 그 관리를 위한 계기라는 점"(168쪽)이다. 따라서 죽음과 장례에 어느 문화나 일종의 상례문화가 있고 의례(퍼포먼스)를 갖추게 된다. 장례 절차는 보잡한 양식을 띄고 있는데 결별의 양식이면서도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양식이기도 하다. 특히 '곡'이라는 이름의 소리 퍼포먼스는 문화적으로 허용된 울음이다. 이 울음은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의 역할에 더해 울음을 통해 가족간에 얽힌 갈등이나 느슨해진 유대감을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웃과의 울음나눔을 통해 이웃간의 해묵은 감정 또한 털어낼 기회가 된다. 다시말해  가족관의 질서가 회복되고, 친지, 이웃관의 관계도 손질하게 된다. 옛 사회에서 계, 향도, 품앗이의 큰 일 중의 하나가 상례였다. 상례가 공동체 내의 큰 일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죽음의 공동체화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 한국사회에서의 죽음은 전통과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가정의례간소화라는 박정희 정권시절의 악법은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강요하였고, 종교간의 차이에 의해 한국에서의 죽음은 많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크레인에 매달아 이삿짐처럼 관을 내리고, 서구식 장의차의 행렬엔 엄숙함이나 경건함 없이 과속을 하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한 장의행렬에 대한 일반인 역시 무관심으로 지나친다. "이 같은 변화는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인 우리들의 죽음이 전체적으로 경박해지고 세속화되고 심지어 물질화의 도가 지나친 나머지, 비속화되어버렸노라"(191쪽)

 

물론 이런 죽음이 갑작스럽게 대두된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과 민주화항쟁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건물, 다리의 붕괴와 대형사고로 인한 죽음, 각종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까지 한국사회는 삶을 천박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곧 죽음의 천박화로 다가왔다. 이제 한국사회는 또 다른 죽음의 숙제와 마주하고 있다. 뇌사. 이를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삶과 죽음사이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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