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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죽음과의 만남
정진홍 지음 / 궁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죽음과 관련된 책을 들쳐 보았다. 철학적인 차원에서 죽음을 접근한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 종교학자 정진홍의 책은 죽음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듯 하여 손에 들었다. 그러나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여러 모습을 묘사합니다. ... 그것은 완전한 서술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 속에 인간이란 '태어난다'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 '죽는다'는 사실마저 지적해야 비로소 그 삶의 묘사는 완벽해집니다. "(18쪽)
종교학자 정진홍의 죽음에 대한 강의를 엮은 이 책은 이렇게 죽음은 곧 삶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부가시키며 시작한다. "이렇듯 죽은 삶 '밖'에 있는 거이 아니라 삶 '속'에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곧 삶이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교과서적인 죽음에 대한 해답이다. 죽음은 죽음과의 거리 즉, 나와 가까운 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의 죽음일 경우 죽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 조차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리고 이 때 제기되는 죽음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느낌만이 제기하는 물음도 아니고, 지성만이 묻는 분석적인 물음도 아니며, 삶에 대한 희구가 절규하는 의지적인 물음만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이른바 全人的인 물음입니다. 죽음이 너무 직접적이고 절박하게 나 자신과 부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32쪽) 즉, 나와 결부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죽음에 대한 질문은 머리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절박함이 모두 섞인 죽음과의 만남이다.
그렇기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많은 슬픔을 안긴다.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죽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죽어 없어지지만, 산 사람은 그 죽음과 더불어 그와 더불어 지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여전히 살아야 합니다."(91쪽)
이런 슬픔으로 인해 망자와의 만남을 기획한다. 바로 제사 혹은 추모 의식이다. 이 때 음식이 빠질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망자를 만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실은 보고 싶음과 이야기하고 싶음과 회한을 한꺼법에 쏟아 빚는 통곡하는 몸짓입니다."(193쪽) 이렇게 공동체적인 삶은 죽은이의 삶과 함께 한다.
삶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완결이다. 그래서 비천한 삶을 산 사람의 죽음은 비천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죽음을 맞는 윤리가 있다. 삶을 감사하게 의미있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을 감사하게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