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에 소개된 책들 중 미국과 자본주의로 엮어볼 만한 책들이 여러권 소개되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있는 듯 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와 같이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책이 흥미롭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지음·한상연 옮김/부키·1만5000원
"1993년 그는 소련이 해체된 뒤 모스크바의 실상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턱대고 2주의 휴가를 낸 뒤 그는 호기심 해소를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중간에 일단 스위스 취리히를 경유하게 됐는데, 바로 여기서 뜻밖의 현실을 만났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시카고의 거리는 쓰레기와 오줌 냄새로 가득한데, 취리히는 제비꽃 향기로 가득했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도 내내 그의 머리에는 취리히가 떠올랐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잠시 비틀거렸던 기억처럼.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도대체 왜 미국보다 국내총생산은 적은 유럽이 더 행복하게 살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건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채용한 독일 특유의 자본주의 모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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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 사람과 독일 사람의 대표로 각각 바버라와 이사벨이란 캐릭터를 설정해 둘의 생활 현실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바버라와 이사벨은 똑같이 수입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지만, 사는 모습은 180도 다르다.
먼저 미국 중산층 바버라. 그는 교외에서 살며 수입의 41%를 세금으로 낸다. 통근거리가 멀고 상습적인 교통 정체에도 시달리지만 도심 학교는 위험해 교외로 나와 산다. 매일 밤 10시에 퇴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한다. 장기 휴가는 꿈도 못 꾼다. 해고가 되면 의료보험을 받을 수 없고 아이들을 4년간 수십만달러를 내야 하는 사립대에 못 보낸다. 결국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한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비싼 미국 병원비 때문에 아파도 병원 갈 엄두도 못 낸다.
독일 중산층 이사벨은? 전철이나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대중교통은 기본으로 갖춰져 있고 저렴하다. 자전거도로도 기본이다. 연장근무는 거의 없고 연 6주의 휴가가 보장된다. 보육비는 물론 대학 등록금까지 전액 국가에서 지원한다. 수입의 48%인 세금 덕을 톡톡히 본다. 해고 걱정도 없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다니면 사용자가 직장평의회와 합의해야 해고가 가능하다. 게다가 회사 쪽과 노동자가 절반씩 들어가는 이사회에서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고가 되어도 보험과 연금혜택을 받는다.
수입의 비슷한 비율을 세금으로 내지만 이사벨과 바버라는 왜 이렇게 다른 삶을 살까?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을 존중하는 문화를 낳았고 이는 제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됐다. 반면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강국으로 나갔다. 결과는? 미국은 각종 금융위기에 시달리는 반면, 독일은 인구는 8500만명인데 15억명이 사는 중국과 같은 수출 실적을 올린다. 미국의 경쟁력 높은 공장들은 폐쇄되거나 운이 좋으면 중국으로 팔려가는 실정인데도, 미국인들은 “독일은 복지로 돈을 낭비하고 노동유연성이 없어 망할 것”이라는 허세를 부린다고 개탄한다.
지은이는 지금이라도 독일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미국이 도입해야 하며, 약간의 법만 수정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결론내린다. 오로지 미국만을 대안으로 삼으며, 경쟁을 위해서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고, 금융업을 더 키워야 한다는 미국식 논리가 판치는 한국의 현실에서 책은 죽비처럼 우리 의식을 내리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926.html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베서니 매클린·조 노세라 지음·윤태경·이종호 옮김/자음과 모음·1만7000원
"30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해왔다고 자부하던 미국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는 30년 전 미국 금융위기의 주범이 된 주택저당채권 담보부증권(MBS)을 만든 패기만만한 루이스 라니에리, 래리 핑크, 데비이드 맥스웰 3명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원래 이 증권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내 집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하는 30년짜리 채권을 현금화가 쉬운 유동자산으로 변화시키려 만든 것이다. 엠비에스는 1980년대 금융기관 사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다양한 파생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헤지펀드가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다. 이 세사람이 만든 이 상품은 역사상 최대의 골칫거리가 되어 폭탄돌리기 대상이 되어버렸다.
경제전문지 <포천>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활약해온 베서니 매클린과 조 노세라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발했고 이를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어떻게 이를 악화시켰는지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지옥은 텅 비었고,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있도다”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금융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금융기관 임원들과 이를 비호한 정부 고위 관계자 정치인들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0862.html
그림자시장
에릭J.와이너 지음· 김정수 옮김/랜덤하우스·2만원
"월 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오랫동안 국제경제 분야를 분석해 온저자는 이처럼 미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UAE와 같은 나라들을 ‘그림자시장’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자시장은 물리적 실체가 없다. 중국과 중동의 산유국, 노르웨이와 싱가포르 등 세계적 부국들과 이들 나라가 보유한 국부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의 ‘보이지 않는 연계’를 지칭한다. 저자는 “권력은 이미 이들에게 넘어갔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신문 1면에 나오지 않는다. “많은 부분이 빤히 보이는 곳에 감쪽같이 숨어 있고, 어떤 것들은 평범하게 숨어 있다”는 점에서 ‘그림자’다.
“유동성이 경제를 지배한다”는 말은 그림자시장의 힘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자금, 즉 유동성을 제공하는 집단이다. 세계 금융위기도 대부분 갑작스러운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미국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자본을 창출하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이제 빈털터리가 됐다”고 말한다.
대신 UAE처럼 그림자시장의 신흥 경제대국들이 유동성 공급을 맡게 됐다. 2008년 말 미국 금융위기로 대규모 은행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부시 정부가 ‘돈’을 구하려고 특사를 파견한 곳도 중국과 싱가포르, UAE와 쿠웨이트 등이었다. 특히 전 세계 총 외환보유액의 3분의 1을 차지한 중국은 2009년 현재 2조4000억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데 75%가 달러화 표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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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마약중독자와 마약상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중국의 현금에 중독됐다는 얘기다. “미국에 투자한 나라들이 미국을 지배한다. 그들은 사실상 미국 주식회사의 주주”라는 표현이 적확하게 들린다.
미국을 제외한 그림자시장 국가들 간에는 미국도 모르는 사이 동맹관계가 형성돼 있다. 중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제재 조치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란의 석유 개발에 600억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른 베네수엘라에 20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대신 석유로 돌려받기로 하는 협정을 체결하기도 한다. “외교적으로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따돌림받는 국가이지만 그림자시장에서는 고립돼 있지 않다”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저자는 미국의 쇠퇴보다 “유럽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 더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21세기의 유럽은 그림자시장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유럽은 돈이 말라가고 있다. 영국만 살펴봐도 예산 적자가 285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달하고 있다. 멕시코만을 오염시켜 막대한 방제비용이 들게 된 영국 석유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손을 벌린 곳은 미국이나 영국의 은행이 아니라 쿠웨이트, 카타르,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였다.
그림자시장에 속한 국가들은 2012년쯤이면 석유를 수출하거나 무역수지 흑자로 발생한 외환으로 조성한 국부펀드를 통해 10조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국가가 주축이 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2013년쯤 19조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미국의 GDP가 16조달러 정도로 예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들은 이 돈으로 전 세계의 기업과 자원과 식량을 사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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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관계는 역전됐지만 그림자시장의 국가들은 예전의 미국처럼 세계의 주도권을 쥐려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유럽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을 때도 그들은 오히려 수익성을 따져 미국 채권을 사들였다. 그럼에도 그림자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는 거의 베일에 싸인 채다. 그것은 물론 미국이 만들어낸 ‘전 지구적 자유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했다.
규제를 완화하고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강조한 결과, 그림자시장 국가들이 그 열매를 차지한 것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41911105&code=9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