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조종자들 /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 알키 / 2011년 8월
'인터넷 서점에 책을 사러 들어갔을 때, 원래 사려던 책 아래에 붙어 있는 다른 책 광고에 흥미를 느껴 한두권을 더 주문한 기억이 있는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을 열었을 때 왜 어느 친구의 글은 ‘인기글’의 위편에 자주 올라오지만, 다른 친구가 업데이트 한 글은 한참을 내려가야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내 성향을 파악해 두고 있다 구미에 맞는 정보를 끌어다 주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디지털 세상의 거인들은 언제부터인지 이용자의 취향, 관심사, 성격 같은 개인정보를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해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필터링 서비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를 편하게 해 준다. 인류가 동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2003년까지 기록한 내용을 모두 모으면 약 50억 기가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만한 정보가 단 이틀 만에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곳에 오래 집중할 수 없는 ‘주의력의 붕괴’는 불가피하고, 필터링 서비스가 손을 내밀면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엘리 프레이저가 쓴 <생각 조종자들>은 온라인상의 정보 필터링이 광범위하게 확산(이른바 ‘필터 버블’)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개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특정하게 틀지워진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우리 생각의 범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한다. 이런 경향은 사생활 침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민주주의’와 같이 인터넷에 걸었던 해방의 가능성을 전복할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화된 필터링은 내가 어제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다면 이 정보를 바탕으로 훈제오리, 오리주물럭, 오리로스 등 오리 일색의 메뉴판을 갖다주는 웨이터와 같다. 제공되는 정보는 같이 식사한 옆 동료와 완전히 다르기에 사람들은 갈수록 개별화되고 고립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리와 사이다를 같이 먹었다고 해서 사이다를 집중적으로 추천하기까지 한다. 익숙한 것들만 늘 접하니 창의성이 나올 리가 없다. 진보 성향인 이용자는 진보 콘텐츠를, 보수는 보수 콘텐츠를 편식하게 돼 있어 타인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골수가 된다. 이런 알고리즘 아래서는 말초적 흥미를 끄는 콘텐츠만 살아남고 지루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관심사가 아닌 것에도 눈길을 주는 게 참여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발달이 초래하는 디스토피아를 우려한 점에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 다니엘 솔로브의 <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 존 팰프리와 우르스 가서의 <그들이 위험하다> 등과 맥을 같이하는 책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94683.html
'구글드'라는 책에서 구글이 사용자의 정보를 알고리즘화 한 다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읽은 적이 있다. 바로 위의 책에서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Gmail을 사용할 때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정보에 대해 광고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행에 대해 메일을 주고 받았다면 여행과 관련된 광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구글이 다른 검색엔진과 다른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 것이었는데 단순한 페이지뷰로 성과를 측정하던 기존 검색엔진과 차별화 되는 점이었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말하며 나의 사생활이 그대로 정보화 되고 있다는 점인데, '생각조종자들'은 이런 우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택의 폭 마저 자유롭지 못한 디지털 사회의 단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반면 아래에 소개된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디지털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익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터넷은 많은 부분에서 이익과 상관없이 행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사회를 유지시키는 선(善)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장점을 소개한 책으로 보인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갤리온·1만5000원
'오후 4시까지 운영하는 탁아소가 있다. 부모들은 그 시간까지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 관찰해보니 1주일에 평균 7~8명의 부모가 그 시간을 넘겼다. 탁아소는 10분 이상 늦으면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
벌금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늦는 경우가 첫 주 11건, 두번째 주 14건, 세번째 주 17건으로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벌금 제도 도입 전, 탁아소와 학부모 사이엔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행동규범’이 있었다. 누군가 늦으면 직원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벌금이 도입되면서 규범은 사라지고 부모는 직원의 시간을 값싸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여기게 된다. 대가를 치렀으니 직원에겐 더이상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정작 돈이 개입되는 순간 많은 것이 망가지기도 한다. 또 모든 게 돈으로 돌아갈 것 같지만, 오히려 돈이 없어야 돌아가는 일도 많다. 클레이 셔키(뉴욕대 교수)는 <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돈으로 땅을 살 수는 있어도 마음을 사지는 못한다. 1년치 마음을 살 수는 있어도 10년치 마음을 살 수는 없다”고 요약한다. 그는 “시장 거래라는 것이 인간 행동의 전체 목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버려도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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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행동 연구 이론에서 가장 보편적인 동기 부여 요인은 돈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돈도 안 되는 일에 사람들은 왜 그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셔키 교수는 그 동인을 자율성과 유능성에서 찾는다. 관심 있는 일을 스스로 할 때 힘이 생기고, 그 일을 잘한다고 느낄 때 힘은 더 커진다. 사람들이 비디오게임에 빠지는 좀 더 깊은 이유는 현란한 그래픽이나 폭력, 재미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에 숙달되면서 얻게 되는 통제력과 유능성의 느낌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이를 설명한다.
위키피디아는 1900만개의 ‘지식 꼭지’가 270개의 언어로 제공되는 세계 최대 지식 공유 사이트이다. 2001년 문을 연 이후 그만한 정보를 쌓는 데 들어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셔키 교수가 아이비엠연구소와 함께 계산을 해보니 대략 1억시간이었다. “전세계 사람이 공유하는 특정분야의 지식이 내가 직접 두드리는 자판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우린 기꺼이 우리 ‘귀한 시간’을 그 공간에 바친다.”
지은이는 그 ‘귀한 시간’이란 대목에서 다시 묻는다. “정말 그렇게 귀한 시간이었나요?” 미국인이 1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는 데 쓰는 시간은 2천억시간이다. 1년 안에 똑같은 위키피디아를 2천개나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다. 노동시간 감소와 기술 발전으로 전세계 교육받은 사람들에겐 연간 1조시간이 넘는 여가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돼 ‘거대 지능망’을 구성한 막강한 시간이다. 이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라고 지은이가 부르는 사회적 자원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988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