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평론가들의 평론을 읽어보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냥 일반인으로 그런 실행을 하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반 '비평과 전망' 이후 '작가와비평'을 관심있게 보고는 있지만 한 사오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적었다. 오랜만에 손에 든 책이 김정남의 평론집 '꿈꾸는토르소'였다. 하지만 최근 문학작품을 손에 든 기억이 적기 때문에 공감할만한 내용을 찾아낼수는 없었다. 생소한 시인, 소설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시 부분에 있어서는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이름이 많았다. 대신 흥미를 갖게 된 시인이 몇 있다. 꿈꾸는 토르소를 통해 소개받았다고 보면 된다.  

'관념적이고 작위적인 것보다 사실적이고 질박한 것이 더 힘이 세고 오래 간다는 게, 문학에 대한 내 생각이다. 장식적 수사와 관념의 찌꺼기는 그것이 화려하면 할수록 스스로 가짜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시인 김선태의 '시 맛'은, 잘 차린 남도 음식이 그러하듯, 속 깊게 곰삭은 인생의 속내를 맛깔스럽게 전해준다. 여기에 올라온 산해진미는 바다에서 오른 것들이 많지만, 그러한 단순한 소재주의에 주목하는 것 또한 편식이 아닐까. 그의 시는 오히려 자연사와 인간사 그 전부를 꿰뚫는 탁월한 직관을 통해서 얻어진 황홀한 세계이다. 그의 시심으로 건져올린 세상사에는 고통도 슬픔도 상처도 모두 익을 대로 익어, 비로소 딱 알맞게 발효된 생의 진면목이 숨어있다. 이러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는 더 이상 엄숙주의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시집 『살구꽃이돌아왔다』(창비,2009)에는 진솔한 눈물이, 질박한 관능이, 수수한 웃음이 있다.'(69쪽)

   
 

흔히 보름게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설이 있지요. 왜냐구요? 이놈들은 주로 보름 물때엔 탈피를 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여, 겉은 번드르르해도 속은 텅 비어 있으니 그야말로 무장공자라는 말씀이지요.  

허나, 서해 어는 갯마을에는 이 속설을 살짝 뒤집은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지요. 보름달이 뜨면 괜시리 시골 처녀들이 밤마실을 나가듯 야행성 꽃게들도 먹이를 찾아나선답니다. 그런데 달빛이 하도 밝아 물속까지 훤히 비추면서 꽃게들도 그림자를 드리우니, 아 글쎄 제 그림자인 줄을 모르는 이놈들은 등뒤의 무슨 시커먼 물체에 화들짝 놀라 삼십육계 게걸음을 친다는 겁니다. ..... 

어허, 그런데 말입이다. 호랑이 앞에서도 집게발을 쳐들고 대드는용기를 가진 이놈들이 그깟 제 그림자에 속아 도망을 치다니 참 우습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놈은 다름아닌 제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꽃게이야기 중

시인 김선우는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이미 『내 혀가 입속에 갖혀 있기를 거부한다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김정남이 소개한 '쓸쓸하다'라는 시가 가슴에 팍 꽂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시는 시집의 형태로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 (실천문학 2009년 봄호에 실림)

   
 

쓸쓸하다,는 형용사 / 하지만 이 말은 / 틀림없는 마음의 움직임 

쓸쓸하다,를 / 동사로 여기는 부족을 찾아 / 평생을 유랑하는 시인들 

유랑이 끝날 때 / 시인의 묘비가 하나씩 늘어난다

 
 

쓸쓸하다-그림자의 사전 3

'김선우 시인의 짧은 시가 가슴을 울린다. "쓸쓸하다"라는 단어의 품사는 형용사다. 구체적인 사건없이 제시되는 이 단어는 추상적인 감정일 뿐이다. 막연하게 제시되는 '쓸쓸하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어떠한 환기력도 지니지 못하는 관념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인은 쓸쓸하다,라는 말이 마음의 정태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감정상의 동태적 상황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 마음의 움직임! 이때 "쓸쓸하다"는 동사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 "쓸쓸하다,를 / 동사로 여기는 부족을 찾아 / 평생을 유랑하는 "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관념의 여지가 만들어낸 쓸쓸함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감정에서 배태된 현재진행형의 감정을 지닌 존재들 말이다. 세상에 쓸쓸하고 상처 받은 존재들을 찾아나서는 자, 누구인가. 그가 바로 시인이다. 이처럼 존재의 외곽에 버려진, 쓸쓸한 삶의 궤적을 좇아, 고독함의 시업을 쌓아 올린 시인들은 그 유랑을 마친 후, 하나의 묘비로 남는다.'(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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