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꽂이에 꽂혀 있던 달려라 아비를 며칠 동안 읽고는 책 정보를 살폈다. 1판 2쇄 . 2005년 12월 언저리에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1년 9월에야 손에 들었다. 책을 구매하고 시간을 놓쳐 그냥 묻혀두었던 것인데 '두근두근내인생'이 출간되자 '침이 고인다'와 함께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손에 들었다.

김애란은 2000년대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만큼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많이 접해 본 터였다. 게다가 몇해전 이효석문화제에서 낭독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작가이다. 이런 기대에 맞게 첫 페이지부터 맛깔난 문장에 빠져 들었다.   

 '나는편의점에간다'는 집 주변의 세 개의 편의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나는 편의점에 가서 담배 디스를 사고, 제주 삼다수를 사고, 쓰레기봉투는 10리터를 산다. 나의 삶은 디스, 삼다수, 쓰레기봉투 10리터로 이루어진다. 단골로 삼았던 첫 편의점에서 점원은 주인공인 그녀에게 알은체를 하고 그녀는 두번째 편의점으로 옮긴다. 콘돔 구매에서 일어난 신분증요구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세번째 편의점으로 단골을 옮긴다. 자신의 삶은 순전히 소비행태로만 연결될 뿐인데 그녀의 삶에 개입하려는 행위에 주인공은 편의점이라는 삶의 패턴을 바꾼다. 그러나 이제 반대의 경우가 생겼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동생을 위해 열쇠를 어디엔가 맡겨야 할 때 그녀는 편의점을 떠올렸고, 그 곳에서 '저 아시죠? 저 이 근처 사는 ... 항상 제주 삼다수랑, 디스플러스랑 사갔었는데....'라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돌아온 대답은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나는편의점에간다'는 인간소외라는 거창한 주제보다는 실제로 벌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단순히 소비행태로만 알려지기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난감함을 표현한다.

표제작 '달려라아비'는 '누가해변에서함부로불꽃놀이를하는가'와 연계가 된다고 생각한다.  '달려라아비'의 나는 아버지가 없고, '누가해변에서함부로불꽃놀이를하는가'는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부재한 상황에서 오는 가족의 해체나 정신적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의 부재상황을 농담으로 웃어넘기는 태도는 삶을 관조한 듯한 태도이다. 사실 김애란의 문학성을 인정하면서도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달려라 아비를 썼을 때가 20대였을텐데 작품에서는 살만큼 살고 세상을 그려러니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최근 작품 '두근두근내인생'이 조로증에 걸린 아이를 소재로 한 것이 바로 그녀의 이런 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16쪽)
 

'종이물고기'는 작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단편이다. 서울로 올라와 옥탑방 한칸에 자리잡은 주인공은 벽면에 포스트잇을 부치기 시작한다. 첫 벽면에는 책에서 골라낸 말들로 채웠다. 두번째 벽면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 벽면은 스치듯 지나치는 생각을 적었다. 그리고 네번째 벽면은 실제 삶속에 있는 살아있는 언어로 채우고 마지막 천장에 비로소 소설을 적어나간다. 이것은 작가의 글쓰기 과정을 보여주는 은유적인 자전소설이 아닌가 싶다. 언어로 채워진 그리고 소설로 엮여진 옥탁방은 무너진다. 채워진 포스트잇이 옥탑방의 균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진 옥탑방에서 주인공의 모든 포스트잇 역시 무너져 내렸다. 옥탑방이 자기만의 문학세상이라고 한다면 무너진 옥탑방은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온 현실 혹은 문학이라는 현실과의 마딱드림에서 나온 좌절로 보인다. 하지만 그 좌절속에서 '그것은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가쁘게, 그러나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220쪽) 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는 문학에의 열정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애란에 대한 문학적 호평과 문단과 기대 그리고 그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달려라아비'는 단편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그녀의 다음 '침이 고인다'를 손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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