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인지 소설이나 시집을 손에 들 틈이 생기지 않는다. 1년에 두어권 읽는게 전부인 듯 하다. 몇 달 전에 읽은 허수아비춤이 가장 최근에 읽은 문학작품이다.
사실 문학을 손에 잘 대지 않은 것은 90년대를 장식했던 작가들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90년대 작가 중에 윤대녕, 공지영, 공선옥 등을 제외하면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2000년대 신진 작가들의 선전에 관심은 갔지만 한번 손에서 떨어진 문학이 다시 손에 들어오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6월에 소개된 문학 중에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김이설이라는 작가의 환영이다. 이름부터 독특한 그의 작품 소개 역시 인상깊었다. 소개글에서부터 치열함을 읽을 수 있었는데 조만간 그의 작품을 손에 들 생각이다.
환영
김이설 지음/자음과모음·1만원
"김이설(36)은 동세대 작가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소설 세계를 구축한 이다. 이즈음의 젊은 작가들이 청년백수로 대표되는 ‘젊은 가난’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못한 주변부적 존재들의 이야기라 해야 옳다. 그와 구분되게 김이설의 소설은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처절하게 그리곤 했다. 장편 <나쁜 피>와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그 몸부림들은 징그럽게 수집되었다.
그의 두번째 장편 <환영> 역시 앞선 작품들의 기조 위에 서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무능력한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윤영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윤영이 놓인 비참한 현실을 호도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작가는 가엾은 주인공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인다. 동정도 연민도 없이, 잔인할 정도로. 수렁에 빠진 한 발을 빼내려 다른 한 발을 내디뎌 보나 결국은 두 발과 몸뚱이 전체가 하릴없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이 여자 윤영은 자신을 옥죄어 오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있는 힘껏 발버둥쳐 보지만 무위에 그칠 따름이다.
외진 물가 식당의 서빙으로 시작한 일은 차츰 성격을 달리하며 윤영을 인간성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릇을 나르다가 삶은 닭고기의 살을 찢고, 닭고기를 먹여주다가 가슴을 허락하고, 가슴을 보여주다 보면 다리를 벌리는 일도 어려운 일이 못 되었다.”
아내가 밖에서 노동력에 더해 몸을 파는 동안, 남편의 시험 준비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어린 아들을 돌보고 아내 대신 살림을 사는 것이 본업처럼 되어 버린 남편은 툭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만, 악에 받친 아내의 언사는 험상궂기만 하다. “듣기 싫어! 미안하단 말은 공짜지! 당신이 뭘 안다고! 시끄러워!”
남편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운명은 윤영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떤 일이 더 생겨야 최악이 되는 걸까.”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파도처럼 연이어 밀어닥친다. 알량한 지하 셋방의 전셋돈을 알기고, 아이는 병에 걸리고, 공장 일을 시작했던 남편은 차에 치여 중상을 입는다. 병원비도 없어 퇴원시킨 남편을 등에 업고 힘든 걸음을 떼는 말미의 장면은 희망도 절망도 속단할 수 없는 엄중한 현실을 상징하는 듯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83396.html
근래에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면 김애란을 들 수 있다. 일찌감치 김애란을 찜해두고 '달려라 아비'를 준비해두었지만 아쉽게도 몇 년째 책장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김애란이 첫번째 장편을 들고 나타났다. 이제 '달려라 아비'를 손에 들 시간이 된 것 같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창비·1만1000원
"김애란(31·사진)이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80년대산 문인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2000년대 문단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애란은,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문단 선배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꾸준히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사이 <달려라 아비>(2005)와 <침이 고인다>(2007) 두 권의 소설집을 냈고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피해 갈 수 없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첫 장편이라는 관문이 그것이었다. 김애란이 좋은 단편 작가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런데 그가 뛰어난 장편 역시 쓸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잡지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내놓은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에 대한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올 상반기에 나온 장편 가운데 주저 없이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
<두근두근 내 인생>의 묘미는 외양만큼이나 의젓하고 낙천적인 소년 아름과 그의 철부지 부모가 연출하는 부조화와 아이러니에서 온다. 아름이는 조로와 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상대로 씨름하느라 속이 깊어진데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으로 학교 교육을 대신하면서 한층 성숙하고 지혜로워진다. 반면 이른 나이에 ‘사고’를 치는 바람에 졸지에 어른이 된 부모는 서투르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나는 식성 좋고 혈기왕성한 아버지를 손자 보듯 흐뭇하게 바라봤다”와 같은 문장에서 확인되는바 이 소설이 뿜어내는 뜻밖의 따뜻한 유머 감각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구도에 말미암은 바 크다.
아름이 불편한 심신으로 자신의 탄생담을 글로 옮기는 동안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성금 모금 방송에 출연하고, 그 방송을 본 동갑내기 여자아이 서하와 속 깊은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게 되며, 서하를 상대로 싹트던 풋풋한 연정이 뜻밖의 암초에 부닥쳐 좌초한 다음, 시력을 잃고 마침내는 죽음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채 수락하지 못한 아름이 어쩔 수 없이 절망과 분노를 폭발하듯 분출하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그의 태도는 시종 담담하고 어른스럽다. 가령 두 눈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되는 사태를 기술하는 소설의 문장은 이러하다. “첫눈이 왔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됐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부모가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름의 의식은 꺼져 가는데, 에필로그도 모두 끝난 소설 말미에는 그가 쓴 이야기 ‘두근두근 그 여름’이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다. 아름의 부모가 처음 몸을 섞고 아름을 잉태하던 순간을 그린 그 이야기에서 “나뭇잎 하나가 어머니의 손등 위로 살포시 내려앉”고, 어디선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바람이 불어오는 장면은 한 아이의 탄생에 자연과 우주 전체가 관여하는 ‘우주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그것은 아울러 죽음이 끝이나 단절이 아니라 탄생과 출발의 거울상일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의 메시지 역시 전달해 주는 듯하다.
첫 장편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작가는 “장편 쓰기의 기술적 감각을 익힌 것 같다”며 “단편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장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83399.html
2000년 초반 10년 후반 문학계에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여파가 있었다. 지지부진하던 문학시장에 '완득이', '위저드베이커리' 등으로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그 창비청소년문학상이 4년째이고, 이번엔 캄보디아를 소재로 한 작품이 문을 열고 나왔다. 캄보디아라~ 몇 해전 다녀온 곳이라 반갑다.
내 이름은 망고
추정경 지음/창비·9500원
창비청소년문학상의 4번째 모험은 캄보디아다. 2007년 첫 수상작 <완득이>(1회, 김려령)부터 <위저드 베이커리>(2회, 구병모) <싱커>(3회, 배미주)까지…. 이 상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년 작품의 완성도나 장르의 파격 등 여러 면에서 한국 청소년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모험을 해왔다. 그런 기대감 속에 선정된 추정경씨의 4회 수상작 <내 이름은 망고>는, 집과 학교와 학원을 훌쩍 뛰어넘어 독자들을 캄보디아라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가이드는 수아라는 여고생이다. 그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캄보디아에 왔다. 이름 ‘수아 리’가 캄보디아어로 망고를 뜻하는 ‘스와이’와 비슷해 별명이 망고다. 엄마는 한국 관광객 여행가이드로 생계를 꾸려 가는데, 우울증 때문에 그마저도 위태롭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사라진다. 뒤이어 엄마 대신 닷새 동안 가이드 노릇을 떠맡아야 하는 ‘난감한 현실’이 들이닥친다. 악재는 계속된다. 수아한테는 쩜바라는 앙숙이 있다. 머리채를 붙들고 흙바닭을 뒹군 ‘구원’도 못 풀었는데… 둘은 함께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
수아는 닷새 동안 엄마의 이름인 ‘지옥’의 삶을 살고 나온다. 오직 ‘현실도피’가 꿈이었던 소녀는 이제, 엄마와 손을 맞잡고 순간순간을 이겨내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주변과의 갈등이 해소되고, 자기 자신도 좋아하기 시작한다. 익을수록 달고 부드러워지는 망고처럼, 성장통을 통해 크게 한뼘 자란 것이다.
<완득이>는 2008년 출간 첫해 20만부를 돌파했고, 연극과 영화로 옮겨졌다. <위저드 베이커리>와 <싱커> 역시 큰 화제를 낳았다. <내 이름은 망고>가 이런 성공을 이어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블루오션’이라 불릴 정도로 큰 수요에 비해 작품과 작가가 부족한 청소년문학계에는 올해도 단비가 내렸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822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