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2000년대 이후 가장 각광받는 TV프로그램, 블로그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맛집이다. 다양한 주제로 음식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및 기사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경제적으로 일정 단계에 이르러면서 식사라는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생존을 위한 식사에서 즐기는 식사로 바뀐 것이다. 개인적으로 먹는 프로그램 및 기사를 즐겨보고 주말이면 맛집을 찾아 떠나곤 한다. 그러던 중 몇 가지 의문에 봉착했다. 내 미각을 믿을 수 있을까? 맛집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 찾아낸 이가 바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다. 그의 글을 통해 맛에 대해 기준을 알아가고 있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소문난 옛날 맛집이다.

 

황교익의 글의 특징은 사진만 나열되고 소개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사람, 추억, 문화를 찾는데 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데 먹거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할 만 하다.

 

지은이는 맛집을 찾는 요령을 설명하면서 아주 중요한 지적을 빼놓치 않는다. 문화적 미맹.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색맹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맛을 제대로 감지해내지 못하는 미맹(味盲)이란 게 있다. 이는 생리적 이상 때문인데, 선천적으로 음식 맛을 느낄 수가 없다니 참 불쌍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문화적 미맹'도 있다. 항상 먹는 것만 먹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다. 또 제 입에 맞지 않으면 맛없는 음식으로 여긴다. 이런 문화적 미맹 탓에 지방마다 식당마다의 특색있는 맛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문화적 미맹에 빠지게 된 것은 많은 요인들이 있다. 첫번째가 바로 화학조미료가 아닌가 싶다. 내 입맛에 대해 의심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화학조미료를 구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화학조미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식당의 음식이 역시 제대로 되었어. 저 빌딩 지하는 조미료를 써서 맛이 없어." 순간 피식 웃었다. 이 식당은 점심 때 주로 김치찌개와 김치찜을 내놓는데 이런 매운 음식에는 화학조미료를 아무리 써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아저씨들은 이야기하는 저 빌딩 지하 식당은 대규모 직원 식당인데 내가 알기로 그 식당은 화학조미료를 안 쓴다. 그래서 음식이 심심하고 맛깔 나지 않다. 둘째, 음식의 상업화가 아닐까 싶다. 찜닭 열풍이 불면 모두가 다 찜닭으로 향하고 다시 불닭으로 움직이게 되면 결국 프랜차이즈화 된 규격화된 맛을 볼 수 밖에 없다. 해당 음식에 대한 열정이나 연구가 얼마나 되어 있을지.

지은이는 우리나라에 오래된 식당이 없는 것을 바로 이런 이유들에서 찾는다. 하다 안되면 식당이나 차리지와 같이 먹거리를 하대하는 분위기, 장사 좀 된다 싶으면 임대료를 높여 내 쫓는 임대문화, 그리고 유행 등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산업화의 결과이다. 재개발, 도시화속에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맛을 지키는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 문제는 21세기에도 유효한데 얼마전 피맛골이 재개발되면서 그나마 2-30년 명맥을 유지하던 맛집들이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된장에 대한 지은이의 지적이다. 된장은 원래 콩으로 만든 메주에 식염수를 가하여 여액을 분리하여 가공한 것인데 우리나라 식품에 대해 정의하고 있는 <식품공전>에서는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주원료로 하여 제국한 뒤 식염을 혼합하여 발효 및 숙성시킨 것 또는 메주를 식염수에 담가 발효하고 여액을 분리하여 가공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는데 과연 메주를 사용하지 않은 된장을 된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바로 우리가 흔히 먹는 공장에서 생산해서 나온 된장이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친 된장이다. 이에 지은이는 후자는 된장맛소스이지 된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기업의 의견이 반영된 음식의 정의가 우리나라 음식의 정체성을 해친다는데 있다. 메주가 아닌 탈지대두로 만든 된장이 과연 일본의 미소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책은 이런 무거운 주제 뿐만 아니라 먹거리에 대한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들이 더 많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집에 대한 정보도 있고, 그 음식을 먹는 지은이의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먹거리에 관심을 두기 위한 입문서로 제격이다.

 

언젠가 메밀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족발의 누린내를 즐길 수 있는 미식가가 될 날이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입안에 콩냄새가 화안하게 도는 순두부 한 수저 먹고 싶다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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