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핀란드가 유행이었다. 세계 학습능력 평가에서 핀란드가 1위, 대한민국이 2위를 차지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핀란드의 학습방법 및 교육정책이 대한민국과 정반대에 있다는 점이다. 경쟁을 우선시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핀란드는 협력을 우선시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핀란드의 시험장면은 가히 놀라웠다. 시험을 마치고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에게 선생은 몇 번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한다. 그러자 먼저 시험을 마친 학생이 ‘도와줄까’라며 옆에 앉는 장면이었는데 한국식 시험에 익숙한 나로서는 상당히 낯선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교사의 말은 시험은 이 학생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서열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스웨덴이 유행을 타려나 보다. 무상급식 논란에서 시작된 복지논쟁이 스웨덴을 우리사회로 끌고 들어왔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고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1만7000원


“스웨덴식 보편복지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18살까지의 아동•청소년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기초교육과정에는 점수나 등급에 의한 성적평가가 아예 없다. 성적평가는 좋음, 더 좋음, 아주 좋음 세 종류뿐이고 정해진 과목의 90% 이상에서 ‘좋음’ 이상만 받으면 누구나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고교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는 건 43% 정도밖에 안 된다. 가지 않아도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사회평생교육 시설들도 모두 무료다.   
 

육아 지원도 탁월하다. 출산 6개월 뒤 또는 부모 출산휴가(480일) 뒤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각종 유치원과 탁아소 등 다양한 아동센터들이 존재한다. 임신휴가 급여로 월평균 소득의 80%를 최대 5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는 480일이고 부와 모 양쪽이 나눠서 쓸 수 있되 어느 한쪽도 60일 미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역시 평균 소득의 80%를 받는다. 자녀가 아파도 부모가 연간 120일까지(60일까지만 간병 급여 지급) 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16살까지 아동수당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념이 일반화돼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공감대 속에서 그런 사고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을 딛고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교육 전쟁을 벌일 까닭이 없다. 유럽에 드문 속도로 스웨덴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65살 이후부터 누구나 보장연금을 받는다. 고용과 소득수준에 비례한 부가연금제도도 마련돼 있는데,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이다. 아파서 쉬면 병가급여로 소득의 80%를 받는데, 산업재해를 빼고 최장 550일까지 병가를 받을 수 있고 1년을 넘기면 소득의 75%로 줄어든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와 약값은 아무리 큰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45만원 수준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실업급여도 이전 소득의 80%를 14개월간 받을 수 있고 18살 아래 자녀가 있으면 그 기간이 150일 더 늘어난다. 실업자 채용 회사엔 정부가 6개월간 임금의 50~65%를, 장기실업 고령자나 이민자에겐 12개월간 임금 총액의 최대 75%까지 지원한다. 18살이 되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원룸 학생아파트, 결혼이나 동거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생가족아파트, 노인들이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아파트, 호텔형아파트, 맞춤형아파트 등이 즐비하고 임대료도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조합 간에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19세기 말의 가난에 허덕이던 농업국가 스웨덴을 비교적 단기간에 일류 산업국가로 바꾼 건 절차적 민주주의 쟁취뿐만 아니라 이런 보편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이룬 덕이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어려운 시절 나라의 기틀을 바꾸려는 웅대한 장기 비전을 갖고 역경을 헤쳐온 사민주의세력의 혜안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폭넓은 참여•존중•합의를 끌어낸 그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더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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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확대, 소득 수준과 무관”
신필균 사회투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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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고 해서 받는 쪽이 주눅들게 해선 안 되며 모두에게 꼭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선별•시혜적 복지론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스웨덴식 사고가 사회구성원 경쟁력 차원에서도 우월하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은 자신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현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정당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자들이 자신의 비리의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남들은 더 하지 않느냐고 얘기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거기엔 아무런 비전도 없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참여, 존중, 연대다. 복지의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다. 양쪽 모두에 연대가 들어 있지 않으냐” 며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사회•경제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회복지정책, 특히 보편적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보통선거권과 같은 민주적 제도가 확립됐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소수 엘리트가 모든 걸 좌우하는 과두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9977.html

 

미국사 산책 1~17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각권 1만4000원



1990년대 실명비판의 장을 열었던 강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역사를 둘러보는 작업을 내놓고 있다. 한국근대사, 현대사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사를 내놓았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강준만교수의 작업은 한국사 연구에 있어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자료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을 모두 엮어낸 솜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초기 저작부터 그랬지만 강준만의 작업의 특징은 방대한 자료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인데, 역사를 묶어내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732.html


국사의 필수과목 지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국사가 선택과목이었나 본데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다. 나라의 근본이니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국사라는 말 자체가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차라리 역사라는 과목으로 세계사 그 속의 동아시아사 그 안의 한국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는 교육은 어떨지? 한국사만 강조하기엔 너무나도 깊은 관계를 맺어온 동아시아사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작년부터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고민중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는 세계사 최소한 동아시아사 속에서 같이 공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 2
유용태•박진우•박태균 지음/창비•1만8000원

“중국 근현대사 전공의 유용태 서울대 사범대 교수, 일본 근현대사 전공의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동아시아 3국 근현대사 전공자 3명이 토론과 협의를 거듭한 지난 6년간의 구상과 집필 작업 끝에 내놓은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냉전 해체 이후 등장한 동아시아 담론들을 역사서술로 심화시키면서 기왕의 각국사나 동아시아사의 한계를 돌파하려 한다. 지은이들은 국사와 세계사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분적인 역사서술은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일본이 구축한 자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것이라며, 탈냉전으로 일국사에 갇혀 있던 동아시아에 지역사가 등장할 조건이 갖춰졌다고 본다.

………이 책의 특징은 이 소항목들 서술부터 일국사가 아니라 다국사 또는 지역사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소재나 작은 주제를 한 나라의 얘기로 채우는 게 아니라 다국 또는 지역 얘기가 교차하는 식으로 짜는 것이다. 집필 편의상 각 장들은 전공별로 나눠 한 사람이 대표집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의견과 자료 교환을 통해 집필자 모두의 생각이 담길 수 있도록 애썼다.

그때의 서술원칙이 ‘연관과 비교’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역사가 중심이지만 주제에 따라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나 인도까지도 ‘연관’되고 ‘비교’된다. 예컨대 필리핀에서 2차대전 뒤 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세력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냉전적 필요에 의해 제거당하고 우익보수 친미•친일세력이 주류로 등장하는 과정은 광복 뒤의 한국 현대사 과정과 흡사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미완의 토지개혁조차 달성할 수 없었던 필리핀이 오늘날까지 대지주들이 지배하는 반봉건적 후진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비교점이다. 문인 사대부들이 권력기반을 이룬 중국•조선•베트남, 그리고 무사가 권력기반이 된 일본은 다른 근대의 길을 걸었다. 전후 일본 개조에서 재무장(역코스)으로 바꾼 미국의 대일정책 선회에는 인도의 간디 암살과 제3세계의 등장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국가’ 및 ‘민중’(민간사회) 상호간의 의존•연관과 대립•갈등을 아울러 파악하도록 하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가는 노력을 부각시킨다”고 집필자들은 밝혔다. 지역•국가•민중의 교직이 서술 방법상의 원칙이라면 이 연대와 협력, 자유와 평등은 이 책을 관통하는 서술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선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붕괴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동아시아,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정신구조, 진보를 가로막는 그 수구적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지은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1201.html

아울러 중국사를 개괄할 수 있는 책이 소개되었다.

천추흥망 1~8
거지엔슝 총편집•이지연 외 옮김/따뜻한 손•각 권 1만8000원

 
“중국 역사를 책 몇 권으로 압축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거나 무용할 것이다. 아득한 천추(千秋)의 시간이고, 그 세월이 지나온 내용의 두께를 책이란 물건이 온전히 감당해 내기엔 버거운 일이다. 중국 역사학자 거지엔슝 푸단대 교수의 지휘(총편집)로 중국 역사가 <천추흥망> 8권의 책에 담겼다. 중국 대륙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부터 마지막 왕조 청까지의 중국사를 여덟 칸(진, 한, 삼국•양진•남북조, 수•당, 송, 원, 명, 청)으로 나눠 들여다본 이 책은, “무모했지만,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란 거지엔슝 교수의 겸손한 자평과는 달리 “신해혁명 후 중국 학계가 이룩한 최고의 연구 성과”라는 소리를 들었다. 통사 형식이 아니라 그 시대나 왕조의 특징과 의미를 잘 드러내는 10여개의 주제를 뽑아 다루는 방식이어서 방대한 분량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중국에서는 2000년에 모두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선 2008년 1권이 나온 뒤 이번에 마지막 8권이 나오면서 완역됐다. 4권 당나라 태종을 다룬 ‘봉건시대 치세의 모범’ 부분을 보자. 그 시대 ‘정관의 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난 뒤에는 어김없이 훌륭한 황제가 출현했다. 태종도 수나라를 무너뜨린 농민들의 봉기를 보고 백성 무서운 줄 알았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었다.” 선정을 베풀던 군주도 말년엔 초심을 잃고 어김없이 폭정으로 갔다. 지은이는 그것이 바로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요, 권력의 속성이라고 썼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894.html

지젝은 낯선 이름은 아니다. 데리다,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 모든 이름 솔직히 익숙하다. 독서보다 책 정보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은 쓰는 나로서는 이런 현대철학자들은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았느냐고 한다면 시뮬라시옹 등 극소수의 책을 제외하곤 손도 대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읽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폭력을 주제로 한 지젝의 책이 나왔다 하여 소개글을 관심있게 읽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이현우 외 옮김/난장이•1만5000원

이야기는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사진)이 1920년에 쓴 짧은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행하던 조르주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지적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에세이는 폭력을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베냐민이 말하는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 베냐민은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명과 딸 일곱명을 두었는데, 그 다복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니오베는 자기가 여신 레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다. 레토에게는 아들(아폴론), 딸(아르테미스) 한명씩밖에 없었다.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을 시켜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를 시켜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베냐민은 신적 폭력의 사례로 <구약성서>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을 든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는데, 무리를 지어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분수에 넘치도록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진짜 이유였다.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과 다르지 않았다.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당했다. “신은 레위족 사람들(고라의 무리)을 경고도 위협도 하지 않은 채 내리치고 주저없이 말살했다.”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베냐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 베냐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한다.

………
지젝은 베냐민의 신적 폭력의 구체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 공포정치, 그리고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붉은 군대의 ‘테러리즘’을 거론한다. “신적 폭력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현상과 등치시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지젝의 이 책은 신적 폭력이라는 이름의 ‘순수한 혁명적 폭력’을 변호한다. 이 폭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 폭력이다. 이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고 지젝은 단언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960.html

아울러 미술에 대한 입문서가 하나 소개되었다.

미술은 똑똑하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이란 무엇인가? 무언가의 정의를 묻는 질문은 언제나 힘들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수천수만 갈래로 나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질문의 대상이 추상적인 것일 때, 문제는 더욱 골치 아파진다. 미술 개괄서인 <미술은 똑똑하다: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이 읽기 만만치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입문자를 위한 이론서’라는 서문의 주장만 철석같이 믿고, 혹은 책 곳곳에 삽입된 키치풍의 만화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 속에 뛰어든 독자들은 책을 읽어갈수록 당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미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미술 이론이란 결국, 특정시대들이 미술에 관해 품은 다양한 문답들을 정리한 것이다.

고대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미술’ 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지은이들은 근대 미술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산업화가 시작된 근대•현대의 대격동은 미술의 기존 개념과 정의 역시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초현실주의•미니멀리즘 등 다양해진 철학의 스펙트럼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된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예술은 더더욱 추상적, 전위적, 그리고 철학적인 논쟁을 키워가며 현재에 이르렀다. 깡통수프, 좌변기가 예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시대의 변화가 깔려 있다. 런던 미술대학의 캠버웰 칼리지에서 진행된 미술 입문 강좌를 정리해서 묶어냈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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