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간단하게 소개되었던 책 중 오래된 연장통이 2월엔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1월 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찬 책들이 소개되었던 2월이다.
〈리영희 프리즘-우리 시대의 교양〉고병권·김동춘·김현진·안수찬·오길영·은수미·이대근·이찬수·천정환·한윤형 지음/사계절·1만3000원.
한겨레신문에 소개된 책들 가운데 짧게 소개된 리영희 프리즘이라는 책이 가장 눈에 띤다. 우리시대 지성으로 불리던 리영희 선생 팔순을 기념해서 나온 책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시의적절해 보인다. 2MB 정부의 방향이 대한민국을 20년 쯤 뒤로 돌려버렸기 때문에 -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산업측면에서도 후퇴했다고 생각한다 - 다시 리영희가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영희, 그는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으로 불린다. <리영희 프리즘-우리 시대의 교양>은 단순히 그의 팔순을 기념하는, 그에 대한 일방적 존경과 흠모가 넘치는 헌정도서가 아니다.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시대에 대한 고민과 비판을 담았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통해 한 시대를 꿰뚫는 통찰과 고민을 던진 비판적 지성의 상징 리영희. 그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몽롱한 의식에 끼얹은 찬물 한 ”였다. 그는 “지식을 전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각성을 전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바가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5682.html
〈감정노동〉 앨리 러실 혹실드 지음 /이매진·1만7000원.
이 책 역시 간단하게 설명되고 있는 책인데 몇 일전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는 관심을 두었던 책이다.
"감정노동이란 “배우가 연기를 하듯 본디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학자인 지은이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델타 항공 임원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통해, 자본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까지 통제해 활용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본은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이에게 “낯선 이에게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항상 웃을 수 있게” 훈련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사무실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비서,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만드는 웨이터, 호텔 데스크 직원, 잘 나가는 제품이란 확신을 주는 영업사원” 등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이다. 하지만 그 웃음의 가면 뒤에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는” 과정에서 각종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2007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백화점 노동자의 56.2%가 우울증과 스트레스 질환을 앓고 있었다. 또 감정노동이 여성에게 편중돼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책은 무려 27년전에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지금 번역이 되어 소개된다. 역설적으로 우리사회가 이런 감정노동이라는 부분을 감당하기에 너무 폐쇄적인 노동윤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백화점 등 캐셔들에 대한 노동문제가 이슈화된 것이 바로 2~3년 전의 일이니 우리도 이제는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고,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손님은 왕이라는 논리에 밀려 웃음을 파는 서비스직을 당연시 여기는데 이런 생각이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박노자도 여러번 지적했던 바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서비스직들은 웃음까지 팔지는 않는다.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에 젖어든 사람들이 유럽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상당히 기분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유럽의 경우 본인이 사장인 경우 왕왕있어 친절하지만 점원들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파리의 점원들은 지독하게도 불친절하다. 그들의 논리는 바로 상품을 파는 것이지 웃음까지 팔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3117.html
특이하게도 2월에는 기독교를 다룬 책이 3권이나 소개되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김두식 지음/홍성사·1만3000원
그동안 기독교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해왔던 김두식교수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들고 나왔다.
"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지금까지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슬픔·절망·희망을 담은 책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펴냈다. 그에게 교회는 기쁨의 원천이면서 슬픔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은 쓰고 싶어서 쓴 책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쓴 책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책은 제목처럼 세상 속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속의 세상이 돼 버린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세상 속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과 구별돼야 하는 공동체가 어느새 철저히 세속화해 ‘교회 속에’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오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속화된 교회는 날로 그 힘을 축적해,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까지 시작한다. 반공·친미·기복의 기독교를 비판하면 당장 친북·친공·불신의 기독교인으로 낙인찍힌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역할을 국가와 보험회사에 빼앗겨버렸다. 교인들 모두 부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눠주자는 메시지는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자는 메시지는 없다. 이처럼 샬롬 공동체의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 교회도 세상도 아닌 중간적 의미의 조직이 급증했다. 기독교 대학, 기독교 기업, 기독교 로펌, 기독교 정당, 기독교 시민단체 등 ‘기독교+거시기’를 만드는 것이 마치 기독교인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3104.html
<한국의개신교와반공주의> 강인철 지음/중심·2만9000원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는 2월에 출간된 책은 아니다. 장정일의 책 속 이슈라는 칼럼에서 소개된 책이다.
"강인철의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 2006)는 우리나라의 ‘개신교 보수주의’는 신학적·정치적 보수주의가 아니라 ‘개신교 반공주의’의 틀로 보아야 깊고 넓게 보인다고 말한다. 한국 개신교에서 반공이 최초로 명문화된 곳은 1932년 초, 교회 내의 보수주의자들과 자생적인 기독교사회주의자들 사이에 타협책으로 제정된 12개조의 ‘사회신조’(社會信條)다. 여기서 한국 개신교는 “일체의 유물교육·유물사상·계급적 투쟁·혁명수단에 의한 사회개조와 반동적 탄압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넣어, 반공주의를 교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교회가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이유로 무신론과 같은 신학적 이유야 당연히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6·25를 전후해서 북에서 월남했던 목사들의 김일성에 대한 증오를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승만과 미국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시민종교’가 되어버린 반공주의와 한 몸이 되는 게 ‘선교적 이익’에 부합했던 사실이 크다. 월남한 목사들은 반공주의의 시민종교화에 기여하면서 하나같이 초대형 교회를 일으켰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7079.html
한국의 개신교는 이와 함께 개발독재의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압축성장과 똑같이 성장해왔다. 노동탄압 속에서 한쪽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권리를 외쳤지만 다른쪽의 노동자들은 일요일 교회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하며 기복신앙이 자리잡으면서 교회는 군사정권에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이반 일리히의 유언〉데이비드 케일리 엮음, 이한·서범석 옮김/이파르·1만5000원
신문기사에선 이반일리히의 책을 기독교문명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이반일리히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반 일리히는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사상가인데 <학교없는 사회>, <그림자노동> 등 그의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 교회가 생산·소비의 실물경제에 녹아든 지 오래이며, 대형화·관료화함으로써 복음조차 제도화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은 한낱 ‘서비스에 대한 요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일리히의 진단이다. 이미 60년대에 일리히는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진 ‘미국식 선교화’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최선이 타락한 것’의 모델이라고까지 말한다. 거기엔 무비판적인 신앙이라는 기독교인의 치부가 있다는 지적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7089.html
2월에 소개된 책들은 재밌는 현상이 하나 있다. 기독교를 비판한 책들이 3권 소개가 되었는가 하면 윤리적 소비를 소개하는 책과 비판하는 책이 있었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천규석 지음/실천문학사·1만5000원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을 통해 철학적 논쟁을 불러왔던 천규석씨가 이번에는 윤리적 소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왔다.
"기호식품은 상품화 역사 자체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수탈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전세계 기호식품 주요 생산지들에는 서구 열강들이 무자비한 수탈을 위해 생필품 중심의 자급적 전통농업을 철저히 파괴한 뒤 건설한 기호식품 단작 플랜테이션(모노컬처), 도태당한 현지 노동력을 대체한 추악한 아프리카 노예무역 등 원주민 절멸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천규석도 공정무역이 상대적으로 공정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일품목 경작 때문에 외부 의존형으로 바뀐 원주민들의 삶을 온전하게 복원시켜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 이득을 얻는 쪽은 지금의 뒤틀린 국제분업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기업 등 자본, 그들과 결탁한 지배그룹이 사실상 사유하는 국가다. 게다가 원거리 공정무역은 운반과 이동 등에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함으로써 지구 생태계 파괴를 가속시키고, 자원 거래를 장악하고 있는 강자들의 이익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런 불평등·생태파괴 구조를 온존시킨 채 “사실은 자신들의 기호적 필요와 이익사업을 위해 (공정무역을) 하면서도 마치 시혜를 베풀듯”하는 공정무역의 위선을 천규석은 질타한다. 결과적으로 “공정무역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세계시장체제에 예속된 농업의 국제분업을 기정사실화하고 거기로부터 차선이라도 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의 자기위안 행위일 뿐이다.”
대안은 그가 지난 수십년간 계속 주장해온 지역적 자급자치 소농공동체의 복원이다. 소비도 “자급자치적 소비보다 더 높은 윤리적 소비는 없고”, 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급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식민지·신식민지 수탈 출발점은 바로 이 자급체제를 강제로 무너뜨려 외부의존체제로 만드는 것이다. 자급이 무너지면 자치도 무너진다. 자급자치 소농공동체를 무너뜨린 이 외세의 대변자, 착취의 실행주체는 자본가와 관료 등 지배세력이 사실상 사유화한 국가다. 제국주의 일본도 외세였지만,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도 자급적 소농공동체에겐 외세였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4523.html
<윤리적소비> 박희진·김유진 지음/메디치·1만1000원
아주 짧게 소개 된 이 책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양적·질적 만족을 얻는 합리적 소비가 과연 최선일까? 생산과 유통, 소비뿐만 아니라 재생까지도 염두에 둔 소비,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화장품 하나로 누군가의 비참한 삶을 개선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비라면?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꾸는 소비가 바로 윤리적 소비다."가 책 소개의 전부이다. <천규석의 윤리적소비>와는 차별화된다는 것을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69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