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제주도에 세번정도 다녀왔다. 처음 제주도에 놀러갔을 때는 김영갑이라는 사진가에 대해서 몰랐을 때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번은 두모악갤러리에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도통 사진에 관심없던 아내와의 짧은 여행동안 두모악갤러리행 시간을 내기에는 빠듯한 여행이었고, 마지막 세번째는 아이들(조카)과 함께 한 가족여행이라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아쉬움이 남는 제주도행이었다. 모 카메라 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두모악갤러리를 볼 때마다 그 아쉬움이 기억난다.

사진에 관심을 조금 두면서 사진 관련 서적을 가볍게 한 두권 읽다 중 김홍희의 "나는 사진이다." 이라는 책에서 김영갑이라는 이름을 발견하였다.

 "그는 어느 매체에 발표하거나 유명세를 얻기 위해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왔고, 결국 아무도 찍을 수 없는 바람소리까지 사진 속에 끌어다 넣었다. 먹고사는 일보다 한 통의 필름이 더 소중했던 그는 최소한의 생계와 삶 이외에는 모든 것을 사진에 투자했다. 자신의 청춘과 열정, 그리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사진에 투자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의 제주도를 재창조해낸 유일한 사진가라고 생각한다."(15쪽, 18쪽 '나는 사진이다' 중)

바람소리까지 사진 속에 끌어다 넣었다라는 말이 나에게는 굵은 글씨로 읽혔다. 어떻게 바람소리를 사진속에 넣을 수가 있을까라는 궁금한 속에 김영갑이라는 사진가를 찾아 보았다. 그 순간 김영갑이라는 사진가는 김춘수의 시 '꽃' 처럼 의미있는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듣게 된 김영갑 사진가의 사망소식, 그제서야 나는 바람소리에 가려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뒷부분을 읽게 되었다. 사진에 모든 것을 건 그의 삶.

 "그런 그가 지금 병들어 몸을 제대로 쓸 수도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손목과 손가락 정도다. 그지경이 되도록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찾아 온몸으로 인생을 살았다. 사진에 모든 것을 건 그의 삶."(18쪽 '나는 사진이다' 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면서 그리고 사진을 응시하며 나는 제주도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을 바람소리를 듣기 위해 가만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관광수준의 제주도 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유명한 관광지들을 도장 찍듯 방문하고 달리는 렌터카에서 스쳐 지나갔던 제주도의 모습을 그의 사진에서 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통해서.

 "사진은 이미지의 미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그런 분위기에 빠져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136쪽)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180쪽) 

김영갑은 그런 사진을 위해 전화를 반납했고, 어떤 편지에도 답장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치열한 외로움으로 몰아갔다.불현듯 만나게 될 순간을 위해 그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이 바로 제주도의 분위기와 소리와 바람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한 삶은 예술적 치열함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사진 찍겠다고 찾아든 제주도, 주민들이 보기에 그는 수상쩍은 사람일 뿐이었다. 간첩으로 몰려 신고당하길 여러차례. 여름이면 찾아드는 습기와 곰팡이의 공포,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필름을 그렇게 그는 잃어야 했다. 폭우로 삼년동안 고생한 필름이 없어지는 경험까지.

결국엔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가 문을 열었고, 그의 사진이 그 갤러리에 걸렸다. 그리고 지쳐버린 그의 체취는 사진속에 남겨두어야 했다.

 "병원에서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 내 생의 유효 기간이 정해졌을때,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은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필름들이었다. 내가 죽고 나면 그것들을 나만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205쪽)

바람소리에 매몰되어 있던 내게 그는 그의 사진에 대해 들려준다. 어떻게 사진을 봐야 할지.

 "그릇의 쓰임이 빈 공간에 있듯, 사진 속의 공간도 최대한 비워놓는다. 도예가가 찾잔을 만든다. 그 잔을 쓰는 사람이 물을 담으면 물잔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된다. 옛날 옹기들이 장독대에서 이제는 방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꽃병이 되기도 하고, 우산꽂이가 되기도 한다.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나 자신을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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