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창비시선 214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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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네 집>을 본 후, 손에 들게 된 <나무>를 대하면서 잠시 김용택시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밥상같은 단어들만 보여주던 시인의 입에서 포크레인, 불도저 이런 말이 나오는 걸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섬진강시인 요즘은 도시에 산다고 들었는데, 시간 내어 들러본 집 주변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너그들 정말 그렇게 아무 곳이나 올라가 파고, 뒤집고, 자르고, 산을 부술래 이 염병 삼년에 땀도 못 나고 뒈질 놈들아.(나나, 나는 정말 쌍욕을 하고 싶다.) 포크레인이 번쩍일 때마다 나무토막들이 뿔껑 들려져서 반 바퀴 휙 돌아 비탈진 땅에 내동댕이 쳐진다.' - 세한도 중

이런 거친표현들을 통해 김용택시인을 생각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곤 '세계를 향한 분노를 잃어버린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며 세상에 일침을 놓는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 시인에게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이 아닌데....

1998년, 귀향이라는 시를 보면 '가난은 아름다웠지만/고향은 치욕이다'라며 사뭇 현실직시적인 내용들까지 채워낸다. IMF로 대변되는 경제위기속에 잃어져가는 사람답지않음과 개발의 논리로 훼손되는 우리가 딛고 일어설 땅이 없어져감을 시인은 공포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끝없이 무너져버릴....

그렇다고 이 시집이 김용택 시인이 변했다? 는 아니다.

'누구나 해가 해같이 천천히 지는 것을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천천히 오는 어둠속에 꽃이 묻힐 때까지 앉아서 누구나 자기를 보고 싶어한다. 나는 한발 뗄 수 있는 밝음만 갖고 싶다. 그 한줌 빛으로 나는 사랑을 이루고 시를 쓰고 싶다.' - 어둠속에 꽃이 묻힐 때까지 중

여전히 자연과 함께하고 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눈이 오면 참 좋지
그렇잖아
저렇게 깨끗한 것들이 어디에 있다가
저렇게 수도 없이 지상으로 내려오는지
내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일인 날
생이 저 눈송이만큼이나 가벼운
이런 날은 심심해서



해 '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집 보다는 <그여자네 집>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김용택의 시집을 몇 권 대했던 사람에게는 한번 일독을 권하고 싶은 그런책이다.

마지막으로 표제 시 '나무'를 읽어보고 싶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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