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너무나도 거대해보이는 남극. 삶의 흔적이라곤 단순히 빙하의 움직임과 알을 품은 펭귄의 모습만이 떠오르는 곳. 질리도록 몰아치는 밤의 장막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도록 질리도록 계속되는 낮. 생각마저 극한에 몰려버릴 그 곳.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남극산책'은 우리에게 극한 속에 숨겨진 풍성함을 던져준다.

아름다운 남극의 풍광이 담긴 사진들이 나를 먼저 찾았다. 천천히 숨고르며 넘기는 사진들은 극한 너머 극미(極美)를 전해준다.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남극에 대한 견고함이 장막을 친다. 마음껏 한가로운 웨델해표의 졸음이 사진을 보는 나의 눈길을 타고 흐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긴장감이 풀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불어닥치는 블리자드는 흐트러진 마음의 지퍼를 단속하게 만들고 서울에서 17,240km라는 이정표는 곧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곳이라는 표식에 다름아니다. 마음 가둬두고 멀리서 에둘르는 남극은 바로 극한, 극미, 장엄으라는 단어들만이 어울리는 곳이다.

그 남극에 지은이의 마음에 내 마음 얹어 글과 함께 들어가 보았다. 이제 커다랗게만 보이던 남극은 지은이의 글자를 통해 내 마음에 속삭인다. 눈을 너머 마음으로 다가가는 순간 남극도 그렇게 마음을 내 보이며 거울처럼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경외감으로 바라보면 스스로 담을 쌓아버렸던 나에게 내가 담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어본다. 블리자드라는 거대한 눈폭풍이 시간과 공간을 모두 얼려버렸지만, 실상 차와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가는 서울의 모습은 바로 블리자드의 그 모습이다. 서울에서나 남극에서나 내 손발을 묶었던 .. 블리자드가 부는 곳은 서울도 아니고 남극도 아니다. 바로 내 마음이다.(37쪽)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니 이제는 남극에도 눈이 돌아간다. 우리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사회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피상적으로 나와 관계없는 타자로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내 자신을 돌아봤을 때 비로소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남극잔디라 불리는 '남극 좀새풀' 최근 세종기지 주변 기온이 상승하고 얼어 붙은 땅이 녹으면서 남극좀새풀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백색의 대륙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초록. 생명의 빛깔인 초록이 남극의 생명을 조금씩 위협하고 있다.(121쪽)

한 없이 강해보이기만 했던 남극 이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에 의해 상처입고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내 자신마저 돌아보지 못했을 때는 그 상처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나와 너에게 마음이 가니 관계가 드러난다. 나와 너의 관계는 소중함을 잃는 순간 깨져버린다. 남극의 돌 틈은 바람과 얼음에 의해서 거칠게 부서진다. 단단한 바위 틈 사이로 새어 들어간 물이 얼면서 판상으로 쪼개져 버린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바위처럼 단단한 관계라도 조그마한 균열이 생기면 그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간다. 그러다가 혹한의 시련의 닥치면 침투한 물이 얼면서 바위를 쪼개는 것 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쪼개져버린다.(123쪽) 다시금 우리를 잃고 세상에 매몰되어 살 때, 우리의 관계가 의미없어질 때 작은 균열이 우리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곤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이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여질지. 해안 빙벽은 마치 푸른 피가 흐르는 근육의 단면처럼 보인다. 빙벽은 끊임없이 푸른 빛을 변주한다. 빙벽이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가시광선의 푸른 영역을 산란시켜서 밖으로 튕겨내기 때문이다. 실상 푸르다는 것은 푸른 빛을 거부한다는 것.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자신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빛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143쪽)

그렇듯 지은이의 사색은 어느새 독자의 사색이 되어 버렸다. 글자와 사진은 그렇게 불협하며 어울린다. 처음 사진만으로 호흡할 때 어느 새 우리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겉모습만 남게 된다. 그런데 마음 싫어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는 그 겉모습과 이별을 하게 된다. 다시 사진과 글을 하나로 한장 한장 마음과 눈이 하나가 되어갈 때 어느새 우리가 되어 있게 된다.

남극산책을 덮고는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지은이가 남극에서 서울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했던 것 처럼 나도 모르게 잠시 남극에 다녀왔던 것이다. 눈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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