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엔 러시아 월드컵을 즐겼다. 러시아 문화라는 큰 주제를 생각하고, 러시아역사를 읽어보는 한 축, 러시아 예술 특히 음악을 한 축,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러시아 문학이라는 산맥을 이번에는 등정해보자고 생각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로쟈의 러시아문학강의>를 중심으로 푸쉬킨에서 레르몬토프까지 넘어갔다가 이번에 산울림극장에서 진행중인 <산울림고전극장- 러시아 문학, 연극으로 읽다>에 다시 러시아문학이라는 숙제를 들춰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런 류의 말을 태생적으로 싫어해서인지, 사실 푸쉬킨은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만 여기 저기서 러시아문학의 시초 푸쉬킨이 거론되길래 가볍게 지나치려 했는데, 그간 푸쉬킨을 오해했다. 러시아라는 공간적 차이와 200년에 가까운 시간적 괴리를 감안했을 때 그를 통해 러시아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고,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푸쉬킨은 또한 작은 주제인 러시아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차이코프스키와도 많은 면에서 엮인다. 푸쉬킨의 작품 중 14편이 오페라화되었는데, (셰익스피어에 견줄만) 그 중 <예브게니 오네긴>과 <스페이드 여왕> 등 3편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했다. 

* <푸슈킨과 오페라>라는 책과 <러시아 문학과 오페라>라는 책이 있다. 


연극 <스페이드 여왕>은 소설 <스페이드 여왕>을 생동감있게 잘 표현했는데, 연극 소개는 아래에 따로 링크를 ..


<스페이드 여왕>에서는 주인공인 게르만이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게르만은 러시아에 귀화한 독일인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유산을 조금 남겼다 . 자기의 독립을 확고히 해야 할 필요성을 굳게 믿고 있어서 게르만은 이자도 건드리지 않은 채 급료만으로 살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조금도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 게다가 그는 내성적이고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그의 동료들이 도가 지나친 자신의 절약에 대해 비웃을 만한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그는 강한 열정과 불타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으레 빠져드는 경솔한 행동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 그래서 , 예를 들어 마음 속으로는 도박꾼이면서 한번도 카드를 손에 쥔 적이 없었다 . 왜냐하면 잉여적인 것을 얻으려는 바람 때문에 필수적인 것을 희생할 처지가 아니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 ( 그는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다 ) 그렇지만 꼬박 며칠 밤을 도박판에 앉아서 열병 같은 전율을 느끼며 도박의 승패를 지켜보곤 했다 . 143


당시 러시아에서 그리고 있는 독일인들의 이미지를 엿볼 수도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게르만은 자기 절제가 분명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자기절제가 어떤 도덕성 보다는 확률적으로 현재의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게르만이 계속 했다 .
「 제게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는 이 3장의 카드를 지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
 백작 부인은 말이 없었다 . 
 게르만은 계속했다 .
「 누구를 위해서 당신의 비밀을 지켜야 한단 말입니까 손자들이요? 그들은 그것이 없어도 부자예요 . 그들은 도대체 돈의 가치도 몰라요 . 당신의 카드 3장으로도 낭비벽이 있는 사람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 아버지의 유산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악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 속에 죽게 될 것 입니다 . 제겐 낭비벽이 없습니다 . 저는 돈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 당신의 카드가 저에게 오면 헛되지 않을 것 입니다 . 자 ! …… 」 154쪽

단순히 일확천금, 도박, 돈에 대한 욕심, 가증스런 인간의 욕망 등으로 쉽게 설명하는 건 좀 식상하니 건너뛰고, 게르만의 이런 모습이 인상깊게 남는 것은 지금 우리도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종교인들, 자기계발인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라는... 금욕이나 절제 이런 부분은 철저하게 성공을 목표로 하고, 사회적 구조상의 문제에는 관심없이 사회 모순속에 운좋게 돈이나 명예를 얻었을 때, 당연히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 5월에 오페라 <스페이드 여왕> 극장판을 상영했는데, 모르게 지나쳤던 게 좀 아쉽다. 
  연극은 이미 지나갔지만 소개 영상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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