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설 전날 귀국해 설날에 인사는 다 드렸다. 회사에서 2월 1일 알아서들 쉬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덕이다. 출발 서른시간 전에 부랴부랴 항공, 호텔, 렌트를 모두 예약했다. 따질 여유 없이 검색되는 대로 바로 예약을 했다. 당시 마음이 좀 지쳐 있어 문득 추라우미 수족관에 있는 만타가오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1919년 읽기와 주기율표 읽는 중이다. 임시로 만들어 둔 카테고리 중 오키나와 먼저 채울 생각이다)
[먼저 봄 오키나와]라고 카테고리 명을 달았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발품 카테고리로 옮길 예정이다.)
2월 1일의 오키나와는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먼저 봄을 맞이한 오키나와를 먼저 보고 왔다.
오키나와는 2011년에 이어 두번째다. 첫번째는 유명 여행지를 다녀왔다면, 이번에는 준비없이 날라간 후 예약된 호텔(아래 오른쪽 사진 B와 F사이)을 중심으로 그때 그때 동선을 짰다. 목적은 단순히 유유자적하던 만타가오리가 보고 싶었을 뿐. 그래서 아이들이 큰 규모의 그물놀이터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놀겠다고 했을 때 그냥 놀게 두었다. 아이들은 놀이터만 있으면 될 뿐.
* 왼쪽 지도는 2011년 동선이고, 오른쪽은 이번 2019년 동선이다. 다음엔 남부를 다녀와야 겠다.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은 거대 수조에 고래상어 두마리가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한 블랙 만타카오리가 있었다. 대형 수조 옆에 있는 카페에 앉아 유유자적하는 만타가오리만 한시간 넘게 바라본 듯 하다.
수족관이 꼭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실컷 구경해놓고 이런 말을 하는게 좀 우습지만, 단순 구경꺼리 수족관에 대해서는 꼭 가야할 필요를 못 느낀다. 우리나라 수족관들.
추라우미 수족관은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종에 대한 보존 역할도 한다. 고래상어가 그렇고, 블랙만타가오리가 그렇다. 저 대형수조는 쿠로시오관이라 명명되어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쿠로시오 해류의 그 쿠로시오다. 오키나와 근해로 오키나와 주변 해양 생물들이 연구되고, 교육되고, 보존되는 곳이다. (미국에서 가장 크다는 몬터레이 수족관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눈쌀 찌뿌리는 곳도 있다. 추라우미 수족관이 자리잡은 해양박람회장 앞에는 돌고래쇼를 하는 곳이 있다. 21세기에 돌고래쇼라니.
이번 오키나와는 아무런 계획 없이 다녀왔지만, 우연찮게 오키나와에 있는 성 세군데를 다녀왔다. 의도치 않게 오키나와 옛 성 탐방이라는 테마가 되어 버렸다. 일본 본토의 성들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산성 형태라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각 성들은 오키나와의 옛 역사를 담고 있다.
패총시대를 잇는 시대를 오키나와 역사에서 구스쿠시대라 부르고 있다. 구스쿠로 불리는 서영과 작게 에워싼 거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초기는 원시 사회로 12세기경까지 이어진다.(43쪽)
그 무렵 등장하는 족장적 성격을 지닌 공동체의 수장으로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아지(按司)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
그와 같은 아지들이 활약한 시대가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로 앞에서 서술한 구스쿠시대에 해당한다. 아지들은 구스쿠로 불리는 성역으로 둘러싼 성을 축조하여 토지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하게 된다. (49~50쪽)
잦은 분쟁을 반복하면서 14세기초 오키나와 본도의 중부, 남부, 북부의 세 명의 실력자가 타나내는데, 후세에 산잔시대(三山時代)로 불리게 된다.(51쪽)
아래 사진은 니키진성터, 가츠렌성터, 지키미성터로 첫번째 니키진성터는 산잔시대 중 호쿠잔(北山)세력의 성이었고, 나머지 두개는 츄우잔(中山) 세력의 성이다.
오키나와를 기록해두기 위해 몇 개의 글을 더 남길 생각이다.
두번의 오키나와는 유명관광지들이 몰려 있는 오키나와 중부, 북부지역 중심이었다. 다음에는 남부를 다녀올 생각이다. 남부는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그 때 오키나와를 다룬 몇 권의 책을 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