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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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한국소설, 한국시, 일본소설, 프랑스소설, 영국소설.

순서를 정한 것은 아닌데 퍼뜩 순서대로 생각나 그대로 써버렸다.  
한국소설을 우리소설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어떤 편협함으로 보일까.
요사이 우리, 라는 말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보는 중.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김혜순의 들끓는 사랑.
유성용의 여행생활자.
D.H 로렌스의 처녀와 집시.
에드워드 호퍼 화집.

김혜순의 스페인 여행기 들끓는 사랑,
EBS 세계테마기행 멕시코 편에서 홀딱 반해버린 유성용의 책,
좀 허기질 것 같아 소설 한 접시도 준비했다.
호퍼의 그림이야말로 여름 휴가의 이면, 고독한 정서와 잘 어울리니까 덥석.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 - 정미경.
 그녀의 소설 앞에선 꼼짝달싹할 수 없다. 
 포로가 된 것처럼,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확인하면서 읽어야 한다. 
 


 좋아하는 작가 2 - 줌파 라히리
 안 좋아하는 작가가 있긴 한데 그들을 꼽는 것보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는 게 매우 힘들다.
 다 적을 수 없지만 다 적지 않았다고 해서
 안좋아하는 건 아니다.
 인도 작가 줌파 라히리, 일단 읽으면 알게 된다.
 내가 왜 좋아하는지. 크크.   

 


 최근 눈에 띄는 작가 - 나가시마 유.
 <맹스피드 엄마> <슈크림 러브> 
 아쿠다가와상 수상작가 나가시마 유. 
 수상 이력을 수식어로만 갖고 있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흠모하기 시작한 작가 - 김소연 시인.
 시인을 사랑하는 일이 좀 허망할 때가 있다.
 연신 옆모습과 뒷모습만 보여줄 것 같은 시인들. 
 사물들 보느라 나 볼 틈 없을 것 같은 이상한 기우는 
 이 시인에게서 더 증폭되었다.
 다행이다. 시인이 여자이고, 나는 남자를 더 좋아하는 여자라서. 키득.

 


 그리고 이언 매큐언씨.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은 올해 만난
 최고의 책! , 중에 하나!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읽(었다고 생각하는) 은 소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삶, 이란 말보다 생, 이라고 해야 더 와닿는다.
 내가 읽은 것은 마당문고의 서적이었고 아직도 갖고 있다. 므흣.
 
 니나, 는 내가 만난 최초의 여성이다. 
 당시엔 왜 그녀가 시타인을 멀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타인의 연정에 더 마음이 갔던듯) 
 지금은 이해한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강석경 <숲속의 방> 
 미양, 이 나와 좀 닮지 않았나 싶다.
 나는 늘 지켜보는 사람이었지 그 일에 관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생을
 그렁그렁 쳐다보고는 있지만, 
 사실 미양은 소양보다 좀 더 강한 인물이다. 
 몸으로 드러내놓고 갈등하고 있는 인물은 어쩌면 자유롭다.
 그조차도 하지 못하는 미양. 감정이입이 좀 심했던 미양...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유디트, 나의 이상형.
  그 남자를 유혹한 유디트.
  그러나 결국 그마저도 물리고 만 유디트.
  파괴적 사랑의 히로인 유디트.
  얼마전 무릎팍 도사에서 노사연씨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좀 문란하게 살고 싶다고, 다시 태어나면.
  문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조금만이라도 비껴갈 수 있다면.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브리짓 민느 <속눈썹 위에 올라앉은 행복>
미하엘 엔데 <렝켄의 비밀>
푸슈킨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열 순으로 나의 세번째 조카인 오빠 딸내미, 다빈.
다빈이는 내년에 중학생이 된다. 다빈이는 놀랍게도 나와 많이 닮았다.
나의 어린시절, 나의 취향, 나의 습관, 동그란 눈까지 ^^
하지만 다빈이가 다행스럽게도 나보단 훨씬 낫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며 예쁘다.
틈틈이 다빈이가 읽을 만한 책들을 보내줬는데 요샌 통 못했다.
다빈이 주려고 모으고 있는 책들.
<속눈썹 위에 올라앉은 행복> 은 이 책을 n님에게 받았는데 그때의 기쁨이란!
읽기만해도 행복해지는 책. 다빈이에게도 전파되기를.

- 나는 다빈이에게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모든 책을 다 주고 싶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저기 저 너머, 푸른집에 살고 계시는 그분께.

 사찰 지도만 쏙 빼놓고 제작되었다는
 우리나라 어떤 지도 이야기, 비보를 들으셨는지?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김려령 <완득이> - 아주 오랜만에 밥 먹으면서, 티비를 꺼버리면서 읽었다.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 눈물과 웃음속으로 동시에 입수.
도리스 되리 <나 이뻐?> - 발칙하고, 깜찍하고, 닮고싶고, 언제나 읽고 싶은 그런 책.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어찌 로맹 가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나가시마 유, <슈크림 러브> 123쪽.
애인은 배신하지, 부부는 사랑이 식지, 가족은 부담스럽지.

정미경, 내 아들의 연인 중 <매미> 에서
사람은 낯선 이에겐 얼마나 관대한 존재인지.

코맥 맥카시, <로드> 에서
거울에서 그들 자신과 마주쳤을 때 남자는 권총을 들어올릴 뻔했다.
아빠, 소년이 소곤거렸다. 우리예요.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이 세 권의 책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다.
2000년 2월 18일, 종로서적 오후 6시.
남편을 기다리면서 헐 값에 판매하는 이 책들을 그저 싸게 판다는 이유로 사들였다.
그즈음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가 추천했던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책꽂이에 꽂아만 놓고 읽지 않았었는데 3년 후, 이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로 만들기 시작했다. 자주, 종종, 들여다보는 책들. 최근에 재출간되어 나온 카버의 책들도 좋지만,
내겐 이 책들이어야 한다. 오역조차도 내겐 진실이었을터이니.

 

 

** 오랜만에 책들을 나열해놓고 보니 참 보기 좋다. 이세상 어떤 그림 보다 더 멋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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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멋진 그림을 같이 보고 있자니 푸근해요. ^^

플레져 2008-07-02 14:12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
서울에도 비가 오시나요?
여긴 막 빗방울이 푸근하게 톡톡 두드리고 있는 중이어요.

2008-07-03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8-07-0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플레져님 정말 오랜만이어욧. ㅜㅜ

플레져 2008-07-03 15:12   좋아요 0 | URL
꺄! 낡은구두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찌 지내신거에요? 저는 잘 ^^;

다락방 2008-07-0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플레져님!
저 이 페이퍼에 있는 책에서 일곱권이나 읽었네요!! 그냥 막 기뻐요. :)

플레져 2008-07-04 11:50   좋아요 0 | URL
와우. 저두 기뻐요!
같은 학교 나온 동창보다
같은 책 읽은 동지가 더 반가워요.
이게 바로 알라딘 마을의 공통된 정서일지도 ^^!

2008-07-04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09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4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6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7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7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9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가시마 유의 <슈크림 러브> 를 읽다가 찔끔 촉촉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금세 먹어버린, 하지만 남아있는 양이 많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싱글컵사이즈 아이스크림처럼.

결혼, 별거를 거쳐 이혼한 젊은 부부. 그남자 시치로는 이혼을 했지만 아내를 전처라고 부르지 않고 아내라고 부른다. 이혼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새로 시작한 연인이 아직 없어서다. 남자의 친구 츠다는 정력적인 사업가에 호색한 기질이 다분하다. 여러 여자들을 전전하고 원성을 듣고 결혼할 뻔한 순간에 이르지만 정작 결혼은 하지 못한다. 여자들 역시 츠다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 사랑이나 결혼에 능수능란한 듯 논리를 펴는 츠다는 결혼에 대한 책임, 현실이 두렵다. 고요한 일상 속에서 츠다와 시치로는 아내와 여자들, 일에 녹아들었다 스스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벼랑 끝에 서야 위기가 아니다. 벼랑으로 가는 동안도 위기의 순간이다.

시치로의 아내 역시 시치로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인이 있긴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 사랑에 안착하지 못한다. 시시때때로 시치로에게 문자를 보내고 안부 전화를 건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치로는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자 긴장하기 시작한다. 혹시 무슨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싶어 시치로는 그 밤에 아내의 아파트로 향한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은 꿈쩍하지 않는다. 결국 아내에겐 별 일 없었다는 걸 알게 된 시치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선다. 시치로는 혹 아내가 죽었을까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아내의 불륜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편협함을 탓하며 아내의 아파트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어떤 해방감에 젖어 아내에게서 한발짝 물러났다. 그후로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아도 긴장하지 않으며, 아내의 문자가 와도 바로 답하지 않는다. 서서히 아내와 분리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

이혼한 후에도 친구로 지낸다는 말을 나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와 가슴이 혼연일체가 되려면 달팽이가 백미터 달리기를 20초 안에 끊는 것과 같은 궤에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시키는 일을 단박에 자르거나 유지시키지 못하는 것도 실은 머리 탓이지 가슴 탓은 아니다. 머리와 가슴의 부조화는 사랑, 결혼... 같은 청춘의 건널목에선 유독 심하다.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이혼은 끝이 아니다. 한번 맺은 인연 어찌 쉽게 끝내리... 같은 구구절절한 대목이 나가시마 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로 정제되어있다. 인연이란 서정적이고 운명적인 말보다는 일상에서 주체적이지 못하고 나약한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슈크림처럼 달콤한 사랑과 결혼, 애인을 기대하지만 현실의 슈크림은 재료 배합이 문제인지 잘 녹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다. 하지만 결국 시치로와 아내에게도 (시치로는 맨 마지막에서야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책 속에 있다 ^^ ) 마지막장면 같은 순간이 온다. 그런데 난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부르는 처음으로만 보였다. 이를테면 이혼 후 시즌2, 같은.

 

 <낯선 여인과의 하루>
헬레나 본햄 카터 양의 부스스한 머리가 인상적인 영화. 아무리 분장이고 설정이라도 그렇지, 머리가 헝클어졌는데도 어쩜 그리 이쁜지. 며칠전 한밤중, 알러지가 생겨 붉은 드레스를 입은 눈을 하고도 또랑또랑하게 읽어내린 영화다. 이 영화는 보는 재미가 아니라 읽는 재미가 있다. 화면을 분할해 놓아서 조금 어지럽기도 한데 상징적인 의미로는 그럴듯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언젠가는 저 화면이 하나로 합쳐지겠지 하는 망상이 죽어도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것. 감독은 보기좋게 배신하지만.

어느 행복한 결혼식장. 담배 피울 장소를 찾아 헤매는 여자. 그 여자를 매우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자. 알고보니 그들은 12년만에 해후한 전남편, 전처사이. 어린 시절에 결혼한 그들. 그리고 헤어짐. 이 남자에게선 요즘 우리세대의 '전남친' 의 후광이 보인다. 새벽 한 두시에 문자를로 '뭐해?' 라고 보내는 전남친들, 니가 행복하면 됐다고 썩소의 문자도 날려주시는 전남친들의 후광이 이 남자에게도 살아있다. 남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를 질투하고, 여자의 남편을 질투하고, 여자에게 다시 돌아오라며 애원한다. 그러나 여자는, 보기좋게 아웃을 날린다.

연인들이 헤어지고 난 후, 여자는 금세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한다. 손가락이 전남친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있을지라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순식간에 현실 탑승이 이뤄질 수 있다. 어떤 남자들은 다시 그 현실을 환상으로 재창작한다. 전남친들은 밤이면 전여친들 휴대폰을 향해 행진곡을 울린다. 전남친에게 전화 걸고 싶다는 여자들을 뜯어말리는 또다른 여자들은 그래봤자 너만 다친다는 야멸찬 경고를 날린다. 헤어지고난 후, ex가 되버린 연인에게 다시 한번 로그인 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건 익숙한 질문 유형이다. 잘되면 세계 평화를 찾게 될 지언정 잘 안되면 나 혼자만 자폭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그 질문의 답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찔러보고 싶은 유혹, 뭔가 그때 완벽하고 충만한 사랑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미련. 아마도 남자들은 구면이 있는 여자에게는 엄청난 자만감과 자신감을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 끝난 사랑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감수성과 지금 생활의 리듬을 깨는 게 귀찮은 (하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귀찮은이 더 우세가 아닐까) 여자의 마음을 모르면 늘 씁쓸한 남자가 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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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득, 섬진강이 보고싶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봄을 보냈던 날이. 그게 언제였더라. 4월과 함께 병원 출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른 섬진강. 한번도 가본적 없는 강. 바다를 보고 싶었던 적은 있지만 강을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없었기때문에 '문득' 떠오른 섬진강에 괜한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깊이 생각해보면 섬진강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착각만이 있다. 몇 년 전 노량진에서 혼자 살던 선배 언니네 작은 방 책꽂이에는 파니핑크 비디오와 함께 이생진의 <그리운 성산포> 가 꽂혀있었다. 들쑥날쑥한 책꽂이에 꽂혀있던 그 푸른색 책등. 성산포가 섬진강으로 바뀐 이유는 단순한 착각일 터, 착각이 섬진강에 가고 싶은 바람이 되었다.

섬진강을 검색하다 섬진강이 있는 곳이 곡성이며, 곡성에는 <섬진강 기차마을> 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곡성 관광청에 신청해서 지도를 우편으로 받아보았고 남편은 대전에서 곡성으로 가는 빠른 길을 검색했다. 지난 주말, 생일을 보낸 다음날, 섬진강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곡성, 에 관한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새학기. 어깨까지 내려온 부스스한 머리의 한 여자아이가 우리반에 전학을 왔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자기 소개를 하라 했고, 그 아이는 가방을 양 어깨에 짊어진 채 바닥을 보며 입을 떼었다. "저는 전남 곡성에서 온 *귀녀 입니다... " 그 아이의 성이 황씨였는지 오씨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이의 부스스했던 머리만큼은, 풀죽은 눈빛과 새빨간 가방 어깨끈 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처음 '곡성'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이렇게 먼 곳에서 서울에 왔겠구나 싶어서 조금 센치해졌다. 단거리 달리기보다 마라톤이 더 조마조마한 것처럼.

곡성에 가기 전 남원을 거쳤다. 춘향전 등장인물들이 남원의 간판마다 살아있었다. 춘향택배회사 부터 식당까지. 남원은 진입로부터 쭈욱 춘향이로 통했다. 다시 오기도 힘들터이니 광한루에 들렀다. 춘향이 아니라 팥쥐가 그네를 타고 있었어도 반하지 않았을까. 사랑은 바람처럼 느껴야 하고 바람처럼 사랑은 마음으로 스며든다. 때이른 초여름 날씨를 무색하게 할 만큼 광한루는 시원했다. 핏빛으로 보이는 저 붉은 철쭉은 좀 섬뜩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금세 지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질투는 시도때도 없이 삐죽거린다.

 



남원에서 놀고 간 탓에 곡성에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증기기관차는 이미 매진이라 탈 수 없었다. 그래도 기적 소리는 실컷 들었다. 참 잘생긴 증기기관차.

곡성역과 나란한 영화 세트장에 들렀다. 가게와 가게 사이의 통로, 좁은 골목. 어린 아이들이 줄지어 지나갈 수 있는 좁디 좁은 골목에서 소꿉놀이 한 판 하고 싶다. 더워서 머리를 올렸더니 순천옥에 출근하는 분위기다. 호호.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소홀했던 내 몸을 좀 더 보듬고, 단련시키고 싶다. 너무 아껴서 약해진 것은 아닐까 싶은. 너무 몰라서 약해진 내 부실한 몸. 부디 이 봄이 잘 지나가기를 바란다. 욕심이 아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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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저...마네킹.....대략 뻘쭘....
순천옥 앞에서 사진 찍으신 마담(프랑스에서 말하는 그 마담, 우리나라에서 쉴 거나하게 취한 주당들이 부르는 그거 말구..)은 누구신지..??=3=3=3=3

플레져 2008-04-22 00:59   좋아요 0 | URL
플마담이라고... 아시는지요? :)

2008-04-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2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8-04-2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여행 수필같아요 멋지네요

플레져 2008-04-22 01:01   좋아요 0 | URL
아직 안주무셨네요?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kimji 2008-04-2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원에서 추어탕은 드셨는지요.

플레져 2008-04-22 11:56   좋아요 0 | URL
남원을 찍고, 아니 광한루만 찍고 간 거라서요 ^^

2008-04-22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8-04-2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픔 없는 봄이란 정말 요원한 일이죠.
가끔 생각해요.
혹시 엘리어트도 알레르기 천식이 있었을까?

플레져 2008-04-22 12:02   좋아요 0 | URL
4월이 지독하지요.
드러낼수없는 아픔이 있지않았을까요...

2008-04-22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2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8-04-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몸도 끊임없이 돌보고 관심 갖고
단련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즐거운 생각 많이 가지시길요.
멋진 여행기에요.^^

플레져 2008-04-22 23:17   좋아요 0 | URL
골골... 팔십년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훌쩍.
봄이 참 긴 것 같아요.

미설 2008-04-2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 자락이 저희 친가쪽이라 저는 어릴 적도 그렇고 요즘도 종종 섬진강을 갑니다. 섬진강 갱조개국(재첩국)도 끝내주는데요^^
몸이 어찌 안 좋으신건지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저기 마담 분위기의 사진 참 멋져요~

플레져 2008-04-25 18:43   좋아요 0 | URL
미리 정보를 좀 더 얻고 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
계절에 적응하는 게 좀 힘드네요.
플마담 집에 놀러오세요!

2008-04-24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5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재가 생겼지만 서재에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 후딱 밥을 먹고 도서관엘 간다.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정말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져서 벅차다. 그러니까 뭔가를 정기적으로 보거나, 먹거나, 집을 꾸미라고 권유 하는 사람들의 방문은 이해는 한다만. 지치지도 않고 방문하는 모 단체의 활동에 조금 질렸다. 나의 종교를 강조해도 귓등으로 듣는다. 하여, 따스한 햇살이 넘쳐나는 거실을 뒤로하고 도서관엘 간다. 굳이 그때문은 아니지만 일조는 했다. 하자보수도 마무리 되었고, 택배는 경비실에서 보관하여 주시니 가능한 일. (한동안 이 두가지가 되지 않아 방콕-_-) 집에서 나설땐 너무 환해서 햇빛을 좀 꺼주고(혹은 보관해두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햇빛이 넘쳐난다. 동향집에서 살 땐 동향이 최고라고 하더니 이젠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간사함이란.

서재라고 하기엔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마음같아선 편안한 일인용 소파와 작은 협탁이 있었음 좋겠다. 그게 안된다면 철제 화이트 벤치라도. 그게 안된다면 폭신한 호빵 방석이라도. 집에 있으면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일단은 보류다. 경제 사정도 생각해야하고 이렇게 비어있는 공간을 누리기로 했다. 메탈 블라인드로 했더니 제법 때깔난다(고 생각한다 ^^) 거실에도 메탈 블라인드. 조금 차가워 보이나 불빛이 반사되면 간접 조명이 달린 것처럼 분위기 있다.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을 생각할 땐 이런 차가운 소품으로 조절해주는 것도 좋을듯 싶다.

어젯밤부터 서재에 머무는 연습을 한다. 서재라고 부르는 것이 처음 만난 남자친구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어색하다. 공부방이 그저 내겐 딱인듯 싶고. 서재(든 공부방이든!) 창 밖으로는 아파트 후문과 마트가 보이고, 천변 산책로 한쪽에는 올망졸망한 초중고 학교들이 보인다. 고등학교엔 불이 환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숙직실로 짐작되는 곳만 불이 켜져있다. 때로 그 숙직실에선 텔레비전 불빛만 비추기도 한다. 이제 막 문을 연 학교들이어서 운동장은 작고 건물은 아담하다. 수업 종소리가 들리면 나도 괜히 쉬거나 책을 펼치거나 하면서 착한 학생 흉내를 내기도 한다. 지각생들은 어김없이 혼쭐이 나는 것도 같고, 체육 시간은 그다지 활기차보이지는 않는다.

비가 오거나 남편이 아프지 않는다면, 산책로를 5km 이상 걷는 것도 거르지 않는다. 한시간 남짓 걷고 운동기구도 이용하고 돌아오면 뿌듯하다. 요샌 바람이 많이 불어 걷는게 벅차기도 한데 걷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동네 칸트는 못되어도 오후엔 꼭 산책. 도서관엘 다녀오는 날엔 더 바쁘다. 해치워야 할 일거리가 있는 날엔 부러 여유를 부리며 산책. 호사스러운 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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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3-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명이 분위기 있어요.. 오... ㅎㅎ

플레져 2008-03-26 11:01   좋아요 0 | URL
세일할때 지른건데 나름 괜찮지요? ^^
밤엔 두 개의 조명을 켜둬야 눈에 좋다네요.

울보 2008-03-2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부럽습니다,

플레져 2008-03-26 11:02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늑한 느낌도 날 것 같아요 ^^

하늘바람 2008-03-2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고 멋지고 아~ 침굴꺽입니다

플레져 2008-03-26 11:02   좋아요 0 | URL
블라인드 덕분인듯 싶어요 ^^;;

조선인 2008-03-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칸트 플레저님~

플레져 2008-03-26 11:02   좋아요 0 | URL
오후에 아무때... 저는 나갑니다. 밖으로...ㅎㅎ

잉크냄새 2008-03-2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네요.
저 서재의 로그인은 어떻게 하시는지?

플레져 2008-03-26 21:01   좋아요 0 | URL
이미 회원 가입 완료상태입니다 ^^
방 한 개 더 생기면 그때 회원을 받지요...ㅎㅎ
잘 지내시지요?

2008-03-26 1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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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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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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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2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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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8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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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9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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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9 17: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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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1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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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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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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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페이퍼를 쓴 지 어언 반 년이 흘렀다. 9월, 나는 대전에 내려왔다. 그동안 서울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았다. 시댁에서 지내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무지 나는 이 한적하고 조용한 이 곳 어디에도 내 자리 한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차츰차츰 내 발자국을 찍었고 내가 살아가게 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사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았다. 아파트는 입주 기간이라 붐비고 낮에는 공사 소음도 심하다. 오늘 아침에도 드릴 소리에 잠을 깼다. 그래도 얼추 이사 마무리가 되어가고 내가 살 집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내가 사는 층에도 네 집 중에 세 집이 들어왔다. 살아보니 대전은, 주거 환경으로는 그만이다. 넓고 쾌적하고 청정하다. 구의 슬로건처럼 청정하다.


콘솔과 액자가 있는 곳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맞닥뜨리는 곳. 왼쪽으로 방 두 개와 공동욕실이 있고 오른쪽으로 방 두 개, 주방, 거실...등이 있다. 공간이 독립적이라는 점, 기다란 복도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복도는 일명 앤틱스트리트, 라고 이름지었는데 마감재나 여러가지 기본 인테리어 컨셉이 앤틱스타일. 남편의 고집으로 가구와 가전은 아주 모던한 것들로 마련하는 바람에 이 공간만이라도 내 의지대로 꾸몄다. 마치 오래된 유럽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양면 시계도 걸어두었고 작은 콘솔과 그림도 그런 분위기로 걸어놓았다. 콘솔 옆에는 숯이 든 단지.




블라인드만 하면 얼추 집 꾸미기는 마무리 될 것 같다. 안방엔 침대 하나 달랑 있을 뿐이고, 서재도 이제 막 책정리를 했을 뿐이다. (책정리 하다 몸살났다...) 정남향집이라 낮에는 햇살 포식이다. 남편의 숙원이었던 와인셀러를 장만하고, 그동안 모아둔 와인잔도 장식장에 넣어두었다. 아. 이게 정말 내 집이구나 싶은것이,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벅차다. (와인셀러 옆엔 공기청정기 ^^;;) 유리도마는 이쁘긴한데 실용성은 떨어진단다. 하여, 장식용으로 놔 둘 생각. 친구가 만들어 준 예쁜 리스는 작은방에 달려있고, 역시 작은방 벽에도 선물받은 이스라엘 산 거울. 전화는 아직 연결할 계획이 없어 장식용으로 두었다.



거실만 확장 공사를 했다. 안방과 작은방에 딸린 베란다에는 옛마루를 깔았는데 여기가 명당이다. 여름엔 무지 덥겠지만 봄엔 따뜻한 햇살 받으며 독서하기 딱이다. 안방 입구에 걸린 리스와 십자수 웨딩 액자. 서울에 살 때부터 걸어두었던 것인데 여기에 오니 더 달라 보인다 ^^ 특히 저 웨딩 액자는 큰언니가 내 결혼을 앞두고 삼개월간 수놓은 작품이다. 그땐 몰랐다. 저 작품이 얼마나 눈물겨운 흔적인지. 그러고보니 결혼할 때 세심하게 준비해준 언니한테 너무 못하고 살았다.

남편이 고른 소파와 식탁. 식탁은 강화 유리인데 역시나 모던한 분위기에는 그만이다. 먼지가 잘 타는 게 흠이지만... 좀 더 꾸미고난 후에 공개하고 싶은 서재. 아늑한 분위기가 참 좋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온 것이 서럽고 불행했던 지난 가을.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자처해서 내려온 주제에 참 불평불만이 많았다.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봄' 이 온다는 말을 실감했다. 정말이지 나는 3월이, 봄이 올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집없는 천사처럼 지내는 게 괴롭고 슬퍼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서울이 그리워 도망치듯 새벽에 KTX를 타고 올라간 적도 있다. 서울역에 내리면 찬공기가 얼굴을 스치는데도 마냥 좋았다. 아. 이 공기. 이 매캐한 공기가 그렇게 그리웠더란 말이지...하며 버스를 타고 쌩. 건재했던 숭례문을 보며 서울역으로 향할땐 마음이 착잡해 버스에서 울곤 했었다. 그런 날들이 사무친다.

물 한방울이라도 튀기면 낼롬 닦고, 먼지가 보인 곳은 참지 못하는 요즘의 날들. 아. 정말 이런 날이 오긴 오는 구나. 긴 터널을 지나 봄을 맞이하러 나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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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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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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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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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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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6 1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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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6 2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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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2-26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아주 멋진 보금자리에요^^
축하해요, 플레져님. 행복하시겠어요.
와인셀러가 같아요^^

플레져 2008-02-26 23:58   좋아요 0 | URL
아. 혜경님댁에도 저 와인셀러가 있군요!
가정용치고는 너무 커서...좀 부담스러웠는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

2008-02-27 2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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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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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1 0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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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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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4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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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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