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나오키의 홈피(www.naokis.net)에 들어갔다가-- 나오키, 나는 뒤늦게 그를 알게 됐지만, 이 홈피로 제법 많이 알려진 사람인 듯하다. 일본인의 문화와 시각에서 체험하는 한 국의 생활상이 제법 정감 있으면서도 예민한 데가 있고, 무엇보다 '외국인스러운' 한국어 표현과 문장들이 독특한 재미와 묘미가 있다. 시시콜콜하면서도 꼼꼼한 일상의 스케치들을 보고 있자니, 나오키란 이 남자,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오늘 그의 '식사일기'를 기웃거리다가 '오코노미야키'를 만났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마치 유행가에 실려 있는 '한 시절에 대한 환기력'과 같이, 단번에 생생한 맛과 냄새와 그때의 분위기까지가 모두 뒤섞여 있는 어떤 시간, 어떤 공간으로 우리를 실어다준다.
7년 전, 그러니까 1997년 3월에서 6월까지 석 달간 일본의 오카야마란 작은 도시에 머무른 적이 있다. 남편이 그곳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받게 돼서 3개월간 체류하게 됐다.
다들 알다시피 일본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물가가 높은 나라인 데다, 연수생 신분으로 외국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는 가난했다. 무엇보다 교통비가 부담스러워, 일본에 가자마자 우리는 중고 자전거점에 가서 낡은 자전거를 하나씩 구입했다. 그때 자연스레 확인했다. 몸으로 한번 익힌 것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흐른 뒤라도 재생, 복기(服忌)된다는 것을. 열 살 무렵 익혔던 자전거 타기, 그 뒤 십 수 년을 한번도 자전거 타볼 일이 없었는데 나는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집 앞 슈퍼까지, 삼사십 분 거리의 기차역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일본 체류 기간 중 그래도 일본 음식을 한두 가지쯤은 제대로 습득해 가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미각에 짧은 이국 생활의 추억과 체험을 담아가리라는 게 내 야무진 계획 중 하나였던 것. 자전거 타기에서 보듯이 몸에 남긴 기억은 그 생명력이 길고도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유난히 새로운 음식에 대해 도전 의식과 탐구심이 있는 나로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종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탐색 중이었다. 살던 동네 어귀의 그야말로 '동네 우동집'의 수타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나기는 했다. 허나 집에서 가끔 별미로 해 먹기에 수타 우동은 그리 적합한 메뉴가 아니었다. 스시 초밥도, 돈까스도 나름대로 '일본 음식의 대표 주자' 격이지만, 나만의 레시피로 삼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 그러다 오코노미야키를 발견했다. 이탈리아에 피자가 있고, 한국에 파전 또는 빈대떡이 있다면, 일본의 그것은 오코노미야키(お好み燒き, おこのみやき).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에 따른 부침' 정도의 뜻...... 워낙 갓 부쳐낸 부침개 종류를 좋아하는 내 기호에 딱 맞았다. 오코노미야키, 그래 이거다!
우리나라에서 파전 같은 부침개가 서민들이 간단한 요기나 안주거리로 친숙하게 먹는 음식이듯이, 일본의 오코노미야키도 그리 고급스럽거나 값비싼 요리는 아니다. 이름 그대로 제 입맛에 맞게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단 다 구운 위에 반드시 가다랭이포를 살랑살랑 얹어 주고, 우스타 소스 비슷한 소스와 마요네즈로 격자 무늬 장식을 해 주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뜨거운 오코노미야키의 몸체 위에 가다랭이포를 뿌리면 마치 얇고 투명한 깃털들이 하늘거리듯, 그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연살구빛 생선포가 열기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 순간이 오코노미야키 시식 과정의 백미!
그리하여, 나오키상 덕분에 잠시 회상 속의 여정을 순례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오늘 저녁 메뉴는 자연스럽게 오코노미야키로 결정됐다!
자, 요리 시작!
오늘 내가 준비한 재료는 양배추와 새우와 오징어. 양배추는 항상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돼지고기나 베이컨이나 낙지 등을 쓰기도 하는데 좀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해물 두 가지를 주재료로 선택. [새우 3000원 어치, 오징어 두마리에 2500원...]
일본에서는 오코노미야키용 반죽 밀가루[마를 갈아 넣고, 가다랭이 우린 물을 섞은 것이라고 함...]가 따로 시중에 나와 있지만, 오늘은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반씩 섞은 뒤 달걀 두 개를 풀어서 반죽했다.
그 반죽에 준비한 재료들을 뒤섞어 준다. [이렇게 재료를 한데 뒤섞어 요리하는 것이 '오사카식'이고, 재료들을 하나씩 단게적으로 익혀나가는 방식을 '히로시마식'이라고 한단다. 어찌 됐든 간단한 것이 좋은 법!]
반죽을 후라이팬에 얹는다.[철판구이집처럼 널찍한 철판이 있으면 금상첨화이지만...]
두 번째 부칠 때는 응용편으로 김치를 얹어 보았다.[역시 이 편이 우리 입에는 덜 느끼한 것이 맛있었다.]
다 부친 뒤에 그릇에 옮겨 담고, 이걸 잊어 버리면 안돼요! 가다랭이포를 그 뜨거운 위에 듬뿍 뿌려주세요! 가다랭이포의 팔랑거리는 춤을 잠시 감상하면서.....
우스타 소스와 마요네즈로 적당히 모양을 내 준 다음,
자, 이제 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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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