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 보여주던 어제의 투명한 구름 같은 건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하늘은 기억이 지워진 얼굴로 낮게 내려와 있고, 공기는 적당한 습기와 침울함을 품고 있다. 며칠째 잠이 모자라 눈꺼풀이 무거워진 나는 아직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빈 아파트에서 대기 상태이다.
휑한 거실 바닥에는 숱한 신발 모양의 자국으로 남아 있는 흙먼지들과 톱밥들과 뿌연 콘크리트 가루들이 아무 뜻 없이 모여 있거나 흩어져 있다. 나를 관통한 시간의 무게와 내 육체의 흔적이 얼룩처럼 패여 있는 낡고 길들여진 가구들과 체온의 부대낌이 채워지지 않은 이 빈 공간에서는 이상한 이명(耳鳴)이 들려오는 것 같다. 딱히 앉을 데도, 기댈 데도 없는, 단지 몇 개의 벽면과 바닥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빈 공간. 아직은 실체를 갖지 못한.

벽과 바닥이 만나서 직각을 이루는 그 지점을 빙 둘러주는 걸 왜 '걸레받이'라고 했을까. 며칠 쫓아다니면서 이쪽 업계의 전문 용어 몇 개를 귀동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시답잖은 궁금증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다. 하기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질문들은 모두 시답잖고 무용(無用)한 것들뿐. 희미한 흔적 같은 것들. 가령 조금 전 여기로 달려오는 길 위에서 본 여자의 사연 같은 것. 여자는 도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한 대 빼물고 있었다. 그 무릎 아래켠에는 뚜껑 열린 소주 한 병. 세파를 많이 겪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그 잿빛 얼굴에는 무언가를 항변하고 싶은, 아니 아무 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도드라진 힘줄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로 지나치면서 얼핏 봤을 뿐이다. 한 5초간...... 그런데도 나는 내내 여자의 사연이 무얼까를 짚어 본다. 누구에게도 의미 없을 궁금증과 호기심. 아주 미미한 슬픔. 여자가 앉아 있던 도로의 아래쪽으로는 바로 강변이다. 그런데도 여자는 굳이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행인들이 힐끗거리며 지나가는 도로변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빼물고 깡소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채 1미터도 안 되는 아래쪽 강변까지 내려가는 것도 마냥 귀찮기만 하다는 듯이. 아니면 뭐 내가 여기서 소주를 병나발 불든, 마리화나를 피우든 니들이 무슨 상관이야, 세상을 향해 침이라도 갈기듯이.
통으로 열려 있는 거실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익숙한 건물과 가게들. 미술학원, 피아노 교습소, ** 치킨, ** 반점, 약국과 빵집, 오리구이 식당과 칼국수집, 세탁소와 화원..... 고만고만한 간판과 지붕들. 그리고 왼편으로 절반쯤은 대숲과 푸른 밭이 펼쳐져 있다. 이제 이 풍경이 내게 주어지는 일상의 '바탕 화면'일 것이다. 일상의 아침을 부팅하면 켜지고, 밤이 오면 페이드 아웃될 바탕 화면. 이제 14층의 높이와 이 통유리창의 크기만큼, 꼭 그만큼의 풍경이 내게 허락되겠지. 나는 서서히 이 풍경에 길들여져 갈 테고, 이 그림을 배경 삼아 또 얼마간은 지루함을, 고단함을, 가벼운 웃음을, 몇 방울의 눈물을 하품처럼 날려보낼 테지. 대나무의 마디가 늘어나는 동안 나는 이 공간에서 몇 그릇의 짜장면과 몇 마리의 치킨과 몇 봉지의 야채 모닝빵을 먹게 될 것이다.

대기 상태의 지루한 공기를 깨고 벨소리가 울린다. 붙박이장을 설치하러 왔다. 야리야리한 체구에 상냥하게 세팅된 말씨를 지닌 청년이 작업 평면도를 보여주며 내게 설명한다. 이제 벽 안에 또 하나의 벽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생활을 위해 설치하는 벽과 서랍들. 열려 있는 공간에 가진 것들을 다 늘어놓고 살기에는 이미 우리는 '미감(美感)'과 '쾌적함'을 위해 가려야 할 것, 닫힌 문 안에 넣어둬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는 자기 안에 감출 것, 가둬 둘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걸까. 그래서, 강변까지 내려갈 이유를 잃어버린 걸까. 사방 열려 있는 길 위에 널브러져 앉아 있던 여자......
Leonard Cohen, Seems So Long Ago, Na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