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래요

정 재 학

 

저녁 굶고 술 마셔요 늘 그래요 TV는 계속 짖어대요 혼자 두어도 잘 놀아요 가끔은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요 보지 않아도 TV를 끄지 않아요 그때의 정적이 싫거든요 시월이 오면 손에서 땀이 흘러요 종이가 찢어져 편지조차 쓸 수 없어요 늘 그래요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어요 생각해 보니 연락이 안 온 지 꽤 되었어요 그냥 무덤덤해요 내일은 영화나 한 편 보려고 해요 늘 그래요 웃다가 내가 왜 웃었는지 까먹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덮어두기로 했어요 늘 그래요 집에 들어와 보니 피아노가 부서져 있었어요 피아노 속에는 묵은 기침이 가득하고 책에서 쏟아져 나온 글자들이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어요 눈썹에서 물감이 묻어 나와요 나는 허공에 검은 물감을 풀어 넣어요 늘 그래요 회색 물방울들이 날아다니며 기타 줄을 건드려요 꿈은 언제나 명확해요 사람들은 왜 자신이 하나의 꿈이라는 걸 믿지 않을까요 가방에서 잉크가 새고 있어요 옷이 더럽혀졌어요 사람들이 모래처럼 휘날려요 늘 그래요

-- 정재학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민음사)

 

 

 

 

 

 

 

 

 

 

 

 

 

 

 

오늘 만난 
시 한 편

"사람들은 왜 자신이 하나의 꿈이라는 걸 믿지 않을까요"

......... 

이 말 한마디로 족하다!

 

 

I Pooh / 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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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7 0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4-10-07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이라 하기엔 너무 악몽이라서요^^

로드무비 2004-10-0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래요, 시 참 좋네요.
아니, 피곤하셨을 텐데(다시 올라가 올리신 시간 확인해봤어요)
두 시까지 안 주무셨구만.
친구여, 잠은 맛있게 잤나요?

에레혼 2004-10-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늘 그러셨군요...^^

물만두님, 그 악몽이 유쾌하고 발랄해요!

로드무비님, 어제는 정말 많이 고단했는데, 막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바로 그때를 놓쳐 버리고는 괜시리 서재 문 열어놓고 꾸벅꾸벅 졸았답니다 ^^;;
덕분에 잘 자고 지금 또 상쾌한 새 아침을 맞았습니다! 자, 오늘도 아자 아자 홧팅!!

urblue 2004-10-0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아자 아자 홧팅~~

내가없는 이 안 2004-10-0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속에서 나오는 묵은 기침이라니... 시가 한걸음에 들어오네요. 추천도 합니다!
이사모드시라구요? 좋은 계절에 이사하시네요. 묵은 먼지 털어내는 좋은 기회여요. ^^
저도 이사해야 하는데 요즘 시기가 너무 안 좋더군요. 고민고민.

hanicare 2004-10-0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가 아직까지도 내 품에 안겨있다면 지독한 권태/ 남의 품에 안겨 있다면 슬픔/
후훗 어떤 것이 나을까요? 사이좋게 불화하는 권태와 슬픔.

에레혼 2004-10-0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오늘도 아자 아자 홧팅!입니다~
이안님, 추천까지 해주시고 ㅎㅎㅎ 좋아라~! 요즘 시기가 쫌 안 좋지요, 놀러 다니기 정말 좋은 계절이라서, 이사 모드에 매이기는 너무 아까워요^^
하니님, 내가 아직까지도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 가벼운 권태/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있다면 아주 짧고 신선한 설렘/ 이 아닐까요..... 어느 쪽을 선택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