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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
박경미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4월
평점 :
제목에 대해서 우선 말을 꺼내본다. <마태복음> 6장 24절이다. "그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쪽을 미워하고 저쪽을 사랑하거나, 혹 이쪽을 받들고 저쪽을 멸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말인데, 마몬은 부나 재물을 상징하는 아람어이다. 하나님과 마몬은 함께 섬길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다. 주인이 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선명한 이 논리는 '마몬의 시대'를 힘겨이 살아가는 나에게 '생명의 논리'란 무엇인가 고민케 한다.
저자는 기독교학과 교수이다. 주로 종교와 신학 관련 서적을 번역하는데, 나는 <녹색평론>에 기고하는 글을 종종 보았다. 이 책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과 종교 관련서 역자 해설을 묶어 놓았다. 시사 관련한 글도 보이는데, 현 정부와 한국 교회에 대한 쓴소리가 돋보인다. 저자는 근래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새로운 배움과 사귐을 가졌고, 진실한 말과 글에 대한 절박함도 가졌다고 한다. '책머리에'서 박경미 교수는 학자로서 글을 쓰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
"논문이란 형태의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행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과거의 축적물들을 뒤져서 이리저리 각을 떠 '말길'을 찾아내고 미래의 있을 수 있는 모든 반론들을 앞당겨 격파하면서 글을 쓰기에는 한마디로 체력이 달렸고, 처음의 문제의식을 놓치기 일쑤였다. 대학시절 신학의 길로 이끄셨던 돌아가신 허혁 선생님은 "베끼지 않고는 논문을 쓸 수 없어서" 좋은 책을 번역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미련하게 표절이 들통나게 논문을 쓰지는 않았지만, 엄밀히 말해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도 표절이라 본다면 내가 쓴 논문 중 베끼지 않은 논문은 없고, 표절 아닌 논문도 없다." 이만한 지적 염결함을 근래 나는 보지 못했다. 교수 출신의 정부 각료 후보자들이 논문을 표절했니, 안 했니 하는 소동이 우습게 여겨질 만큼 저자의 염결함은 높이 사두고 싶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해서 알량한 논리라며 비판한다. "이반 일리치의 말대로 비가 오는데 우산을 만들어 비를 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비 자체를 없애려 하는 것이 근대산업주의의 오만이다. 유전자조작과 우생학,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공학적 접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예로는 한반도대운하 같은 것이야말로 이러한 근대적 오만과 어리석음의 극치이다."('이른바 '실용주의'의 내면성에 대하여' 중) 홍수로 수해를 입는다며 멀쩡한 강을 메우고 괜한 물길을 내는 게 이 정부의 실용주의이다. 내면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실용주의이다.
교회 다니는 이로서 이런 말은 정말 가슴 아프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랜드 전 직원 앞으로 "불법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임금)에 불만을 갖지 않는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하도록" 기도하라는 기도제목을 하달했다."('예수의 교회, 마몬의 교회' 중)
김두식 교수가 한 강연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님은 한국 기독교 전통이 낳을 수 있는 최대치의 인물입니다. 미국 기독교 전통이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구요. 상향성의 한국 기독교 문화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델이 이명박 대통령님입니다." 주목할 건 '상향성'이라는 말인데, 상향성의 교회를 박경미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마몬의 교회이다. 결국 상층엔 권력과 더불어 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상층 지향과 마몬의 현신인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 시대는 정말 마몬의 시대이다. 누구보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예수가 우리에게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난 어떤 생명의 논리로 마몬의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할까? 예수의 선명한 논리를 두고 다시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