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만 4천자의 법문을 설파한 부처가 말년에 "나는 한 마디도 설법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혹자는 선불교의 정신을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결국 진리 그 자체인 불법(佛法)은 불립문자일 수 밖에 없으며, 8만 4천자가 된다해도 그것은 진리에 다다르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라는 뜻일 게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을 받아보곤 선(禪)이란 글자에 자꾸 눈이 간다. 이 책은 총 12만 단어로 이루어졌는데 이 12만 단어가 진리에 이르기 위한 방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자꾸 눈이 간다.  

  작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리한다. "진리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꺼져, 나는 지금 진리를 찾고 있어"라고 말하자 진리가 가버리는 꼴이다."(27면)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라고 말한다. 작가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니 나도 작가의 삶을 정리해 본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는 1928년 미국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한다. 지능지수검사에서 170을 기록한 과학 분야의 영재였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하여 한국에서 군복무를 한다. 미국으로 돌아가 철학을 공부하고, 인도에서 잠깐 동양철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대학 강사를 하며 결혼 후 두 아이를 갖지만, 심각한 우울증 증세로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전기 충격 치료까지 받고선 증세가 회복된 후 아들과 함께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난다.  

  무엇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이 수재를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끌었을까? 작가를 너무도 닮은 소설의 주인공은 전기 충격치료를 받기 전의 자신을 '파이드로스'라고 말한다. 파이드로스가 미치게 된 원인을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합리성이라는 유령이 파이드로스의 추적 대상이었으며 그를 미친 사람이 되도록 몰아간 장본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175면)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그 밑절미는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유령일텐데, 그 유령은 자신을 쫓던 파이드로스마저 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자신의 현재 모습을 형성한 장본인이 바로 그 유령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162면)라고 고백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다. 미친 사람이자 유령이 돼버린 자신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다.  

  미국 문학에서 여행 소설 혹은 방랑 소설의 역사는 길다고 하겠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두 방랑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과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은 소년들의 방랑을 다룬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도 방황하는 소년을 다룬다. 이 세 소년은 왜 여행을 떠난 걸까? 마크 트웨인의 두 주인공은 가족들로부터 벗어나려 여행을 떠난다. 헉과 톰은 각각 아버지 팹과 이모 폴리로부터 잠깐이지만 자유를 맛본다. 샐린저의 주인공 콜필드는 학교와 주변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이들 소설과 비교할 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주인공은 꽤 다르다. 이 주인공은 더이상 소년이 아니다. 소년인 아들을 데리고 여행한다. 여행의 분위기가 묵직하고 진중함은 물론이다. 가족인 아들과 동행함은 그가 단지 가족이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로서 여행을 함이 아님을 말해준다. 더 주목할 점은 그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그는 모터사이클과 그 관리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터사이클은 전적으로 이성의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또한 모터사이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는 실제로 합리적 이성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175면) 미시시피 강을 건너려는 허클베리 핀에게 있어 뗏목은 여행의 안위를 책임지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바이커 주인공에게 있어 모터사이클은 합리성의 대표로서 하나의 실험물이다.  

  이 합리성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바로 선(禪)이다. 합리성은 언어에 기반한다. 합리성과 언어가 서로 다르지 않음은 데리다의 주장대로 언어(말씀)가 곧 이성이며, 신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분석한다. "태초에 말씀께서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는 구절에서 그는 서구 '말 중심주의'의 근원을 찾는다.  그런데 동양 철학의 선이란 말이든 글이든 논리의 세계 자체를 무화시킨다. 왜냐하면 동양 철학은 "현실에 대한 언어적 진술을 결코 현실 그 자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258면) 그리고 논리의 세계를 무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훈련 방법이 바로 선이다.  

  합리성의 세계에서 힘겹게 뛰쳐나온 주인공에게 동양적 선은 대안적 삶의 태도로 다가온다. 이것이 옳고 그른지는 내가 판단할 깜냥이 아직 없지만, 그가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 뿌려 놓은 12만자의 단어가 진리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소중한 방법임은 힘겨이 소설을 덮으며 확인하게 된다. 고맙게도 말이다.

 

                 Robert Maynard Pirsig(1928-)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2-1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만의 업데이트 이네요~ 너무 오랜만 아닌가요? ㅋ

이번주 토요일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관련 펭귄클래식에서 하는

강연회 있던데..... 연말이라 바쁘죠? ㅎㅎ

2010-12-16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탈이 시작됐다 창비청소년문학 28
최인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현실을 뒤쫓을 따름이다. 최인석의 장편소설 <약탈이 시작됐다>를 보며 새삼스런 생각을 했다. <약탈이 시작됐다>는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출간된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최인석은 "내 안에는 아직 그 작고 외로운 소년이 있다. 이 작은 책은 내 안의 그 작은 소년이 쓴 소설이다."라 말하며 청소년과의 회통을 강조한다. 문제는 소설의 소재인데 청소년문학이라 일컫기엔 꽤 문제적이다. 소설의 가장 큰 흐름은 사랑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모습이 문제적이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성준은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의 소꿉친구인 여학생 윤지는 담임교사 봉석을 사랑한다. 어머니와 교사 역시 이들을 사랑한다.  

  교사와 제자간의 성관계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유부녀인 여교사가 남학생과 관계를 갖고, 미혼의 남교사가 여제자와 관계를 갖기도 한다. 최인석 역시 금기의 사랑을 다루지만 이런 현실의 모습과는 썩 다르다. 우선 등장 인물들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네 사람 모두 일종의 경계인이다. 고등학생 성준과 윤지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뛰쳐나가려 하나 쉽지 않다. 담임교사 봉석 역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시인인 그는 언제든 학교를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성준의 친구인 용태의 어머니 금순은 술집을 전전하는 삶을 산다. 친자식이 아니지만 용태를 아끼는 그이지만 용태는 가출을 한다. 금순이 술집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사랑은 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인석은 꽤 오랜 시간 소외 받는 자들의 사랑을 그려왔다. 2002년 발표한 중편 <서커스 서커스>에서 그는 우화를 빌려 와 '우렁이들의 사랑'을 말한다. 우렁이는 소외 받는 이들의 한 비유이다. 소설 속 우렁이의 역할을 했던 승호와 상준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비참한 사랑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우화 속 우렁 각시는 말한다. "사랑이 장꾼을 만들고 나를 만들었으며, 우렁이들의 사랑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 사랑이 우렁이 각시를 사람으로 만들 듯이, 사랑만이 존재의 근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버림 받은 존재들간의 사랑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버림 받은 자들의 사랑을 말함은 최인석 특유의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 이채로웠던 건 '종각'이란 장소이다. 종각은 무법천지이다. 약탈이 수시로 이루어지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약탈에 가담한다. 학교에서 근엄한 척 하던 교장선생은 물론, 늘상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까지 이 장소에선 약탈자로 함께 한다. 이 장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앞서 소설 속 인물들을 경계인이라 말했는데, 이 장소 역시 경계라 말하면 어떨까?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경계는 혼돈의 장소이다. 혼돈 속에선 축제 혹은 혁명이 매일 같이 일어난다. 여기서 바흐친의 생각은 썩 시사적이다. <소설 속의 시간과 크로노토프의 형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 인물-악한, 광대, 바보-은 이 세계 속에서 ‘타자’가 될 권리, 즉 현존하는 인생의 범주들 중 어느 하나와도 협력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 경계라는 공간 속에서만 이 세 인물의 활동이 자유롭다. 소설 속 '종각'을 경계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작가가 '종각'이란 경계 공간을 좀 더 힘주어 밀고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경계는 중심과 주변 가운데 어느 쪽의 힘이 더 센지 겨루는 장소일텐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이를 어떻게 보여줄 지 궁금하다.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1-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석 이라는 작가를 읽어 본적도 없으면서 웬지 청소년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을것같은

선입견의 근거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소설의 소재가 살짝 자극적인게 제가 좋아할만한 내용이네요 ^^ ㅎㅎ

종각을 언급하길래 종로 근처 인가 갸우뚱 했는데 아닌것 같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1:01   좋아요 0 | URL
그동안 써왔던 소설들이 청소년 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죠. 청소년 문학으로선 소재도 파격적이구요. 작가가 열과 성을 다한 작품이란 생각은 안 들더군요.
종각은 말씀하신 곳이 맞아요. 작가가 촛불시위를 염두에 두고 경계 공간을 설정한 것 같은데, 다른 자리를 빌어서 좀 더 상세히 보여주겠죠.

반딧불이 2010-11-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각'이 보신각 종을 치는 그 주변을 말하는 것인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1:0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굳이 종각을 경계 공간으로 삼은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는데, 일종의 결집소 역할이겠죠.

반딧불이 2010-11-26 14:01   좋아요 0 | URL
종각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장소로 모든이에게 각인된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모르겠지만 이런 의미와도 관련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4:3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결집소로서 종각이 갖는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약탈이란 수단이 그렇긴 하지만, 송구영신이란 말처럼 새로운 것을 얻는 것도 종각이란 상징적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요.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이 있는 말씀입니다.

2010-11-2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6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게 있어요. 혹시 황석영, 문익환목사 가 북조선에 갔던 이유를

아시나요?

이재록에 관한 문의 다음으로 쌩뚱맞다고 핀잔 들을지도......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2 17:43   좋아요 0 | URL
목사와 작가의 의식이 사뭇 다르겠지만, 통일에 대한 선취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루쉰P 2010-12-0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서평을 읽으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데 책 자체는 취향이 아닌지라 ㅋㅋㅋ 전 역시나 한국 소설은 영 별로 입니다. 그래도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서평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한국 소설에 대해 알게 되서 감사하네요. 뭐랄까 지금 서평도 읽었지만 주제라든가 그리고 그 글을 써 내는 것이라든가 뭔가 쓰기 위해 쓰는 듯한 느낌을 저는 받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실례가 되겠지만요.^^ 전 역시나 고전이나 읽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3 19:06   좋아요 0 | URL
어려운 고전을 더 좋아하시다니요, 대단하세요^^
꼭 무슨 비율을 맞춰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 창작되는 소설들도 충분히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각자의 취향이 더 중요하겠지만요!

루쉰P 2010-12-06 07:57   좋아요 0 | URL
하하 고전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려운 책이 아닐진데 마치 너무 고상한 사람이 된 듯하네요. 전 이해 못하고 읽는 책들이 많습니다.물론 고전도 그렇구요. 게다가 독서력도 형편 없어서 많이 읽지도 못합니다. 주로 읽는 작가에 한정돼 있죠. 마치 고전만 좋아하는 그런 고상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 만화를 더 많이 읽어요.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6 18:37   좋아요 0 | URL
만화도 만화 나름이겠죠. 저는 가장 좋아하는 책의 첫머리에 <슬램덩크>를 둡니다.
고전이란 게 필요에 의한 책이 아닐진데 아껴 읽어가는 듯해 말씀 드려 봤습니다^^ 루쉰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루쉰P 2010-12-07 10:18   좋아요 0 | URL
제 사상 형성의 근본은 대 사상가 후루야 미노루 선생의 <이나중 탁구부>입니다. 미노루 선생은 <슬랭덩크>가 일본을 휩쓸고 있던 시절 유일하게 <슬램덩크>를 누루고 일본 만화 1위의 기염을 토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저 <이나중 탁구부>라고 합니다. 이건 미노루 선생의 오타쿠들만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ㅋㅋ 신빙성은 없습니다. 요즘은 프리모 레비를 정리도 하지 못한채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크흑....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7 21:39   좋아요 0 | URL
미야모토 무사시라면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베가 본드>로 그려낸 그 사람 아닌가요? <베가 본드>는 아주 감명 깊게 읽었는데 말이죠.
이런 교집합이 또 있군요? ^^

루쉰P 2010-12-09 20:5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배가본드'의 뜻이 '방랑자'라고 저는 알고 있거든요.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일본 만화가 중 특히나 '배가본드'를 그리는 그림체는 제가 볼 때 최고의 그림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가본드'와 '미야모토 무사' 원작과는 이름만 같은 사람이 나올 뿐 그 내용 구성에 있어서 차이가 많아서 같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배가본드'도 열심히 읽고 있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사사키 고지로와 원작의 사사키 고지로는 그 인간상이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ㅋㅋㅋ 전 원작을 더 좋아합니다. '배가본드'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미야모토 무사시'입니다. 그 속에 또 다른 맛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참 이 달의 영화리뷰에 당선 되셨더군요. '거북이 난다'로요. 왕 왕 축하드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0 16:55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베가 본드> 보며 미야모토 무사시에 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서점에 가보니 그가 쓴 <오륜서>가 번역돼 있더군요.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여하튼 이노우에의 만화가 다리 역할을 해준 듯 해요.
지난 달엔 책 리뷰와 영화 리뷰가 하나씩 당첨 되었어요. 오늘 확인해보니 이번달에도 책 리뷰가 당첨되었네요^^ <시인의 죽음> 서평인데 전공 관련한 책이라 기분이 좋네요!
루쉰전집이 그린비에서 출간되고 있네요. 말그대로 전집을 출간할 모양인데 우선 3권이 출간되었군요. 기대 되는걸요^^

루쉰P 2010-12-11 10:38   좋아요 0 | URL
아니!!그런 놀라운 소식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린비로 해서 검색을 해 봐야 겠네요. 정말 좋은 소식 너무 감사합니다. 역시나 파고세운닥나무님의 리뷰가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당첨 아닐까요? ㅋㅋ 전 조정래 작가 소설 리뷰가 당첨돼서 알사탕 천개를 주더군요. <시인의 죽음>으로 책 리뷰가 당첨되신 걸 보니 다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중국 문학을 통해 일본 사회와 문학을 비평 했듯이 파고세운닥나무님도 한국을 중국 문학으로 거울 삼아 마구 비평 해주세요.전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 같은 작품이 한국에도 꼭 나왔으면 합니다. 뭐랄까?

루쉰P 2010-12-11 10:41   좋아요 0 | URL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은 그 내용 면에서는 이미 지금에 나오는 평전들에 비하면 객관적 사실의 내용은 부족하지만 그 속에 있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절절함이 한 문장, 한 문장 속에서 느껴진다고 할까요?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우라가 깊이 녹아져 있기에 지금도 <루쉰>에 대한 평전류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까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그 작품만의 강한 아우라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꾸 읽게 되는 것도 있구요. 파고세운닥나무님도 리뷰가 당첨되는 서상을 보니 반드시 그런 길을 걸으실 수 있다고 생각 듭니다. 전 이번 겨울 루쉰 선생 전집을 다시 보며 가구 공장에서 열심히 일 해야 겠습니다. 후후후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1 12:15   좋아요 0 | URL
격려가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쑨꺼라는 중국의 학자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이란 책을 썼어요. 얼마전에 구입했는데 읽어보고 얘기 나눴으면 좋겠네요.
루쉰전집 읽어가시면 제게도 좋은 말씀 나눠 주시구요^^

2010-12-13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5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바쁜가요? ^^ 업데 가 시간차가 있길래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5 16:50   좋아요 0 | URL
요새 다른 일들로 많이 바쁘네요^^;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충격과 교감- 한 프랑스 비평가의 한국문학 읽기
쟝 벨망 노엘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1월 2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12월 03일에 저장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1월 25일 (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0년 11월 27일에 저장

독서의 알레고리
폴 드 만 지음, 이창남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10년 11월 27일에 저장
절판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동아시아의 사상은 가능한가?
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 그린비 / 2007년 2월
17,900원 → 16,110원(10%할인) / 마일리지 8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1월 25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11월 27일에 저장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논쟁과 상처 - 우리 시대 문학의 주요 논쟁에 대한 탐사!
권성우 지음 / 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의 이른바 '문학권력논쟁'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논쟁의 입각점이 여럿이었지만 내 관심은 진보를 자처하는 에콜과 예술주의를 표방하는 비평가들의 행태에 있었다. 논쟁 속의 문제 제기가 지금 의미가 있달 수 있을까?  며칠 전 발간된 <창작과비평> 겨울호에서 이 잡지의 주간 백영서는 통권 150호를 맞는 <창작과비평>을 이렇게 자리매김한다.  

   
  도리어 <창비>의 영향력을 무겁게 보면서 창비가 '문화권력'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 '권력화'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은 물론 창비가 나태해지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다그치는 고마운 채찍질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창비가 쌓아올린 성취에 합당한 영향력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지는 않으며 오히려 최대한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실제로 <창비>는 보수적 주류언론에 대항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로부터 소외당하기 일쑤라는 점에서 여전히 비주류의 위치에 있지 않은가.  
   

 내게는 이 말이 비주류 창비가 아직 문화권력이 아니라는 소리로 들린다. 창비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나? '소외'를 어떤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창비와 창비의 좌장격인 백낙청의 운신을 <한겨레> 못지 않게 보수언론도 주워 섬긴다. <창비> 통권 150호 발간도 <한겨레>엔 기사가 아직 없지만, <조선일보>는 기사를 실었다. 보수의 이데올로그라 자처하는 안병직도 자신이 펴내는 <시대정신>을 <창비>의 위상만큼 끌어올린다는 다짐을 해대니 창비를 비주류라 일컫는 건 마땅치 않다.

  예술주의를 표방하는 에콜 <문학과사회> 동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인 이광호가 지난해에 펴낸 비평집 <익명의 사랑> 서문이다. 내가 대학에서 비평 공부를 게을리하기도 했지만, 난 이 서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회통불능의 자폐적인 비평을 주워섬기는 비평가들도 여전하다. 

   
 

 동시대의 소설에서 읽은 것은 무심함의 존재 미학과 자기 연출법이었고, 시에서 읽은 것은 탈현대성의 언어가 익명성의 공간으로 존재를 이동시키는 장면이었다. 오늘의 시에서 비인칭성의 언어를 읽었고, 소설에서 초연성의 존재 미학을 읽었다면, 그것은 시가 언어(감각)의 국면과 관련되고, 소설이 인간(윤리)의 국면과 더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은 일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현대 이후의 다른 삶의 '정치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어떤 젊은 텍스트 속에서는 거꾸로 소설의 비인칭성과 시 언어의 초연성을 읽었다. 동시대 문학의 무심함과 익명성으로부터 다른 사랑의 사건을 만났다. 놀랍게도 지난 시대의 빛나는 텍스트들 역시, 명사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동시대성을 보존하고 있다. 다른 삶(인간, 언어)의 가능성을 꿈꾸지 않는 문학은 불온하지 않다. 비평은 저 매혹적인 텍스트들, 그 몸의 일부가 되고 싶다.

 
   

  <논쟁과 상처>에서 권성우는 열심히도 논쟁을 하고 비평을 썼다. 그가 싸웠던 남진우, 류보선, 윤지관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창비>와 <문사>의 요즈음의 모습에 권성우가 겹쳐 보인다. 그는 여전히 쓸쓸한 모습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지 2010-11-2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두 글 다 심각해 보이는군요... 하나는 옹색하고 하나는 수사뿐인..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5 11:00   좋아요 0 | URL
창비는 피해의식이 있는 듯도 하구요, 문지는 여전히 독야청청하고 있네요.
권성우가 문학동네와도 열심히 싸웠는데, 문학동네는 달리 더 할 말도 없구요......

다이조부 2010-11-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인용문은 갸우뚱 거려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먹겠는데,

두 번째 글은 독해 자체가 안되네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안들어요 ㅋ

이광호 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비평이 왜 독자와 멀어졌는지 생각하게 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5 11:04   좋아요 0 | URL
인용한 이광호의 글 말미에 '텍스트의 일부가 되고 싶다'라는 말이 있죠. 비평을 향해 해설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건방진 메시지만을 줘서도 안 되겠죠. <문사> 동인들이 주워섬기는 비평가 김치수가 '공감의 비평'을 말하던데, 전혀 공감이 안되는 비평을 쓰고 있으니 말이죠.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나 보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 선생의 유언을 처음 접한 건 한 일간지를 통해서였다.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며 유언장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그 글자들을 난 눈물바람으로 맞았다. 다시 유언장을 대해도 역시 눈물바람이다. 2007년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부랴부랴 <우리들의 하느님>을 찾아 들었다. 당시 책은 초판본이었는데, 이번엔 개정증보판을 읽는다. 개정판엔 비록 선생의 글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글이 세 편 추가돼 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책 소갯글과 선생의 지인인 김용락 시인과 고교 교사 이계삼씨의 추모글이 실려있다. 세 편 모두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잘 담고 있다. 

  선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난 그 분의 이름 속에 한 방법이 있다고 본다. 정생(正生), 바른 삶이다. 이토록 바르게 살아간 삶이 몇이나 더 있을까? 그의 삶을 바로 세운 힘은 무얼까? 선생의 삶을 여러 존재가 지나갔을테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는 예수일테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육신과 마음의 고통은 그를 예수에게로 인도했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게된다. 헨리 나웬의 말처럼 예수가 '상처입은 치유자'라면, 권정생 역시 일평생 얻은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선생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는 그였고, 제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말기를 당부한 그이였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달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권정생(1937-2007)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0-11-2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일요일 아침부터 살짝 눈물바람이어요.

(아까 쓴 댓글 다시)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아이구 ^-^;; 귀여운 권정생 선생님.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1 10:47   좋아요 0 | URL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선생은 끝내 유머와 귀여움을 잃지 않으셨네요. 근데 그 유머와 귀여움이 눈물을 자아냅니다. 슬프게도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 쌤 책을 읽어본게 없네요.

읽으면 무척 좋을것 같은 예감이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2 11:21   좋아요 0 | URL
누가 그러더군요. 권정생 선생은 기독교 급진주의자라구요. 타당한 면이 있는 게 선생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예수님도 "여러분의 말은 다만 '예'는 '예'라 하고,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옳고 그름에 있어 단순하고 진실함을 말씀하십니다. 크리스천들이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구요.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으로는 <우리들의 하느님>이 유일합니다. 동화나 소설 읽기가 저어하시면 이 책이 좋을 듯 합니다. 저도 그랬구요^^

반딧불이 2010-11-2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분의 글을 편편으로만 접하고 책 한권 갖지 못하고 있어요. 날잡아 읽으며 이 리뷰를 기억할 날이 곧 오겠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2 14:26   좋아요 0 | URL
우리 곁에 '귀여운' 성자로 살다간 선생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강아지똥>이 실려 있더군요. 몇 년 전이니 지금의 교과서 체계로 바뀌기 전일 거에요. 부고를 듣고 얼마 안되어서였는데, 그 글을 읽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2010-11-23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