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오뒷세이아_11권 저승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소재는 어느 한 작가의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며 소포클레스가 이 작품을 쓰기 전에도 이미 그 중요한 줄거리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보다 앞선 작가들인 핀다로스의 『올륌피아 송시』에도 '라이오스에게 주어진 신탁과 숙명적인 부자 상봉'이 등장하고,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에서도 오이디푸스가 제 손으로 제 눈을 멀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이 유명한 이야기의 근원을 조금 더 파고 들면 우리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훨씬 더 생생한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가 온전히 '전설 속의 인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어느 정도는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3,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신화와 전설'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그 유명한 이야기가 실제로 19세기 말에 슐리만이 '트로이아와 뮈케네의 옛 성터'를 발굴한 뒤부터 역사적 사실에 훨씬 다 가까이 다가갔던 것처럼, 오이디푸스와 관련된 새로운 기록이나 유적이 발굴된다면 우리는 고대의 놀라운 이야기에 대한 '믿기지 않는 실재성'을 두고 다시금 많은 이야기를 새롭게 쏟아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트로이아 전쟁이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에 힘입어 '어렴풋한 역사적 근거'를 얼마쯤 획득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온갖 흥미진진한 대화와 사건들까지도 모두 '사실'이라고 흔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이리저리 숱하게 옮겨지면서 자연스레 허구가 보태지고 상상력을 더했음은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오래된 신화와 전설의 매력도 바로 그런 점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다. 수많은 세월 동안 그 힘을 조금도 잃지 않았던 옛 이야기의 뿌리깊은 호소력은 결국 그것들을 꾸미고 전해온 사람들 모두가 느꼈던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실제와 허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으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옛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그저 허황된 전설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를 나와 같은 풋내기 독자가 굳이 애써 찾아나설 필요는 없다. 다만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미 어느 유명한 역사가의 책 속에 실제로 등장한다는 사실 하나만 발견하고도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다른 이유를 더 찾을 생각조차 금세 사라졌다. 어느새 오이디푸스는 그저 수없이 되올려진 '무대 속의 배우'로만 머물지 않으며 또한 그가 그저 단순한 '비극 속의 주인공'으로만 여겨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잠시 이 유명한 비극을 쓴 소포클레스에 대해 약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는 호메로스와 달리 여러 문헌에 다양한 활동 기록들이 남아 있고 또 90세까지 오래도록 살았기 때문에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 때 겨우 6, 7세의 어린아이였지만 10년 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쳤을 땐 '전쟁의 승리'를 신에게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선창한 소년합창단 멤버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 끝날 무렵까지도 살아 있었다. 쉽게 얘기하면 그는 '아테나이의 욱일승천과 서산낙일'을 모두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장수한 인물이었다.

그가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참가한 비극경연대회에서 기존의 챔피언이었던 아이스퀼로스를 누르고 첫 우승을 차지한 뒤로 그는 통산 18번이나 우승했고(아이스퀼로스가 13번, 에우리피데스는 5번) 3등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123편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이 책에 실린 비극 7편이 전부다. 그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음에도 그는 높은 관직에도 자주 취임했고 어떤 전쟁에서는 델로스 동맹을 대표해서 페리클레스와 함께 '10인의 장군' 가운데 한 명으로 선출된 적도 있었다. 여기서 이 책의
'옮긴이 해설'에 담긴 한 대목을 인용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소포클레스는 당시의 여러 저명인사들과 접촉했는데, 당시 아테나이 시의 규모나 그의 인기로 보아 자연스러운 일
로 보인다. 그는 페리클레스와 함께 관직에 있었고, 55세에는 역사가 헤로도토스에게 비가를 한 편 지어 헌정했다고 하며, 소크라테스는 이 노(
)
시인에게서 애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얘기는 플라톤의 『국가』1권에 담긴 내용인데, 나는 정작 플라톤의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런 대목이 나오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젠가 나는 이 노시인의 얘기를 엉뚱하게도 키케로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적이 있었고 마침 그때 용케도 어디다 붙들어 매어 놓은 덕분에 이름마저 비슷한 두 사람(소크라테스와 소포클레스) 사이의 대화를 아무때라도 생생하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 · · · · ·
노년에, 말하자면 육욕과 야망, 투쟁, 적대감, 그리고 온갖 욕망에 대한 복무 기간이 끝나, 마음이 스스로 만족하는, 이른바 마음이 자기 자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내 얘기가 어느새 '불행한 오이디푸스의 손아귀'에서 너무 벗어난 듯하다. 다시 그에 관한 얘기로 되돌아 오는 길에 우리는 '옮긴이의 해설'에 슬며시 등장하는 역사가 헤로도토스를 놓치면 안 된다. 그가 '역사의 현장'에서 발굴한 '오이디푸스'에 관한 생생한 얘기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이야말로 '역사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받는 인물인데 그가 바로 자신이 쓴『역사』에서 '오이디푸스 가문'에 대한 얘기를 두 번씩이나 자세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왕가는 [오이디푸스-폴뤼네이케스-테르산드로스-테이사메노스-아우테시온-테라스-오이올뤼코스-아이게우스]로 이어지고, 스파르테의 주요 씨족인 이 가문의 남자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늘 '요절'했으며, 그 때문에 후손들은 결국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원혼(怨魂)들'에게 사당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드넓은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역사 자료'를 손수 채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보이오티아의 테바이 신전에서 직접 보았다는 세발솥에는 오이디푸스의 또다른 손자가 남긴 게 분명한 '라오다마스 왕이 아폴론 신전에 손수 봉헌했나이다'라는 기록까지도 '카드모스 시대의 문자'로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바로 그 무렵 테라스가 다른 곳에 식민시를 건설하려고 라케다이몬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아우테시온의 아들로 테이사메노스의 손자요 테르산드로스의 증손이요 폴뤼네이케스의 고손이었다. 또한 테라스는 카드모스 가(家) 출신으로 아리스토데모스의 아들들인 에우뤼스테네스와 프로클레스의 외숙이었는데, 생질들이 아직 어릴 때는 섭정으로서 스파르테의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

테라스의 아들이 아버지와 동행하려 하지 않자, 테라스는 아들을 '늑대 떼 속의 양'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말 때문에 젊은이는 '오이올뤼코스'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는데, 그는 본명보다 이 이름으로 더 잘 통했다. 이 오이올뤼코스의 아들이 아이게우스였는데, 스파르테의 주요 씨족인 아이게이다이 가(家)는 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이 가문의 남자들에게 태어난 자식들은 늘 요절했다. 그래서 신탁의 조언에 따라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원혼(怨魂)들에게 사당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제명대로 살았는데 테라에 살던 아이게이다이 가의 후손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Ⅳ권 147장∼149장

나는 실제로 보이오티아의 테바이에 있는 아폴론 이스메니오스의 신전에서 카드모스 시대의 문자를 본 적이 있다. 그 문제는 세발솥들에 새겨져 있었는데 대체로 이오네스족의 문자와 비슷했다. ······

세 번째 세발솥에도 다음과 같은 헥사메트론 시행이 새겨져 있었다.

    라오다마스 왕이, 시력이 뛰어나신 아폴론 신이시여, 그대의 신전에 

    더없이 아름다운 장식이 되게 나를 손수 그대에게 봉헌했나이다.


에테오클레스의 아들인 바로 이 라오다마스의 치세 때 카드모스의 자손들은 아르고스인들에게 쫓겨나 엔켈레이스족에게 피신했고, 한편 뒤에 남았던 게퓌라이오이 가는 후일 보이오티아인들을 피해 아테나이로 갔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신전들을 세웠는데, 다른 아테나이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었다. 그중 하나가 데메테르 아카이아의 신전인데 그곳에서는 비밀 의식이 행해졌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Ⅴ권 59장∼6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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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되는 오이디푸스

 


 -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인물인 오이디푸스 왕과 그의 딸 안티고네

 


 - 테바이 왕가의 가계도.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 및 두 딸이 맨 끝줄에 등장한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와 아내로 '두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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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비극 작품으로 되돌아 올 차례다.『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20년대에 초연된 작품이다. 무대장치와 음악은 물론 무대 위의 배우도 겨우 세사람쯤 등장할까 말까 한 이 고대의 비극이 디오뉘소스 비극경연대회에서 무려 15,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관객들 앞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공연되었을지를 상상해 보는 일도 즐겁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비극시를 쓴 시인의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음미하는 일이 가장 흥미롭다.

사실 오이디푸스로서는 '단순 과실' 말고는 다른 잘못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소포클레스의 또다른 작품인『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만나게 되는 '오이디푸스의 변명'을 통해 누구나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굳이 그의 죄를 추궁하자면 애초에 그가 스핑크스가 던지는 놀라운 질문에 대해 '감히' 너무 쉽게 덤벼들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왜 신탁은 오이디푸스 뿐만 아니라 안티고네를 비롯한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힘든 가혹한 운명의 쇠사슬로 그토록 억세게 옭아 맸을까. 그리고 그런 절망적인 운명에 맞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옳은 일일까.
 
소포클레스의 이 유명한 비극은 불행한 인간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드러내 준다. 곧 진실을 외면하고 파멸을 피할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명예와 내면적 가치를 위해 결연히 운명과 맞서 싸우는 불굴의 의지를 인간은 결코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인간의 의지와 신이 내린 운명의 대립' 속에서 저항하고 절망하고 고뇌하고 다시 일어서려다 끝내 파멸하지만 그래도 결국 '인간이 주역'임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드라마다.

소포클레스의 일곱 작품에서 만난 인상적인 싯구절을 가득 베껴 놓았는데 오이디푸스 왕에게 너무 쎄게 붙들려 내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말았다. 독자가 주절거리는 얘기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단 한 가락의 운율조차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위대한 옛시인이 들려주는 노래조차 우리는 이미 그 옛날의 멋진 운율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토록 곤란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고대 시인이 쓴 멋진 시'를 통해 오이디푸스의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어볼 수는 있다.  그의 목소리를 얼마나 뚜렷하게 들을 수 있을지는 오로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 * *
 

 테이레시아스

아아, 슬프도다!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가 아무 쓸모없는 곳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잘 알면서 내가
왜 잊었던가!

 - 《오이디푸스 왕》316∼318행



 

 테이레시아스

단언하건대, 그대가 위협적인 말로
라이오스의 피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하며
아까부터 찾고 있던 그 사람은 바로 여기 있소이다.

그는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머지않아 토박이 테바이인임이 밝혀질 것이오.
하지만 그는 그런 행운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오.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부자 대신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같이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의 형이자
아버지이며, 그를 낳아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그의 아버지의 침대를 이어받은 자이자 그의 아버지의
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이오. 안으로 드시어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오. 그러고도 내 말이 틀렸거든
그때부터는 내가 예언에 관해 무식하다고 말하시오.
(테이레시아스는 소년에게 인도되어 퇴장하고 오이디푸스는 궁전으로 퇴장한다)

 - 《오이디푸스 왕》449∼462행



 

        코로스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 오만은 시의에
적합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부(富)로
헛되이 자신을 가득 채우고는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가
가파른 파멸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네.
거기서는 두 발도 무용지물이라네.

 - 《오이디푸스 왕》872∼878행



 

    오이디푸스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오, 햇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구나!

 - 《오이디푸스 왕》1182∼1185행

 



        코로스 

아아, 그대들 인간 종족들이여,
헤아리건대, 그대들의 삶은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노라.
대체 누가 행복으로부터,
잠시 보이다 사라져버리는
행복의 그림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가?
그러니 불행한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운명을 거울 삼아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않으리라!

 - 《오이디푸스 왕》1186∼1195행



 

        코로스 

하나 지금은 누구의 이야기가 이보다
더 비참할까? 누가 삶의 굴곡에서
이보다 더 잔혹한 재앙과 고통의 동거인이
될 수 있을까? 명성이 자자한 오이디푸스여,
그대에게는 단 하나의 항구가
어찌나 넓었던지 아들과 아버지가
신랑으로서 들어갈 수 있었노라.
아아, 어찌하여 그대의 아버지가
씨 뿌리던 밭이 아무 말 없이,
가련한 자여, 그대를
그토록 오래 견딜 수 있었을까?

 - 《오이디푸스 왕》1204∼1212행



 

           사자 

그분께서 마님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드시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시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예요.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
이런 노래를 부르시며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기 눈을 찌르셨어요.

 - 《오이디푸스 왕》1268∼1274행



 

   오이디푸스 

하지만 내 이 두 눈은 다른 사람이 아닌
가련한 내가 손수 찔렀소이다. 보아도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진대,
무엇 때문에 보아야 한단 말이오!

 - 《오이디푸스 왕》1331∼1335행


 

 

   오이디푸스 

모든 재앙을 능가하는 재앙이 있다면,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몫으로 주어졌던 것이오.

 - 《오이디푸스 왕》1365∼1366행



 

   오이디푸스 

오오, 삼거리여, 그리고 후미진 골짜기여,
너희들은 내 손에서 내 자신의 피인 내 아버지의
피를 마셨으니, 아마 기억하고 있으리라.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으며,
그 뒤 또 이곳에 와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오오, 결혼이여, 결혼이여, 너는 나를 낳고는 다시
네 자식에게 자식들을 낳아줌으로써 아버지와 형제와
아들 사이에, 그리고 신부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근친상간의 혈연을 맺어주었으니,
이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난 가장 더러운 치욕이로다.

 - 《오이디푸스 왕》1398∼1408행



 

   오이디푸스 

그러나 불쌍하고 가여운 내 두 딸들은
밥상을 따로 차리지 않고 늘 이 아비와
함께하면서 무엇이든 내가 먹는 것을
나눠 먹었으니, 그 애들은 자네가 잘 돌봐주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이 두 손으로 그 애들을
만져보고 내 슬픔을 실컷 울도록 해주게. 허락해주게.
왕이여! 허락해주게, 마음이 고상한 자여. 내 이 두 손으로
그 애들을 만질 수만 있다면, 내 눈이 보이던 때처럼
그 애들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련만!

 - 《오이디푸스 왕》1462∼1470행



 

   오이디푸스 

재앙이 빠짐없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느냐! "너희들의
아비는 제 아비를 죽이고, 저를 낳아준 여인에게
씨를 뿌려 제가 태어난 바로 그 밭에서 너희들을
거두었지." 이런 비난이 너희들에게 쏟아지겠지.
그러니 누가 너희들과 결혼하겠느냐? 천만에.
그럴 사내는 아무도 없지. 얘들아, 필시 너희들은 자식도
못 낳고 처녀의 몸으로 시들어가겠구나.

 - 《오이디푸스 왕》1496∼1502행



 

        코로스 

내 조국 테바이 주민들이여, 보시오. 저분이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는 더없이 권세가 컸던 오이디푸스요.
어느 시민이 그의 행운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보시오, 그런 그가 얼마나 무서운 불운의 풍파에 휩쓸렸는지!
그러니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하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 《오이디푸스 왕》1524∼1530행(마지막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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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1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은 물론 이거니와 정성만으로도 어머이징하시네요.. 우아. .. ~~

oren 2014-01-18 13:13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 님께서 반가운 첫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이번에『오이디푸스 왕』을 읽고 나서 이 글 속에 '스핑크스'를 둘러싼 얘기를 조금 더 늘어놓고 싶었는데 너무 길까봐 생략했어요. 사실 오이디푸스 왕이 스핑크스와 만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도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듣거나 읽은 듯한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2008년 봄에 이집트로 여행을 갔을 때 저는 이집트의 그 어떤 유물보다도 스핑크스에 가장 호기심을 느꼈더랬어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와 피라밋, 파라오의 무덤과 아부심벨 대신전도 스핑크스보다는 기대가 덜 될 정도였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오이디푸스 왕』을 읽고 나니 과연 '그리스의 스핑크스'가 먼저냐 '이집트의 스핑크스'가 먼저냐 하는 궁금증이 문득 생기더군요. 그런데 막상 알고 봤더니 두 스핑크스는 똑같은 괴물이 아니더라구요.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파라오를 수호하는 태양신 라의 사자'였고, 오이디푸스가 퇴치한 스핑크스는 이집트를 여행한 그리스 사람들이 그걸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고 하구요. 사실 이집트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 되었으니 충분히 수긍이 가는 얘기인 듯해요.

이왕 얘기가 이집트까지 흘러갔으니 제가 직접 찍은 '이집트의 스핑크스' 사진도 몇 장 덧붙여 봅니다.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스핑크스의 이미지




 


 - Gustave Moreau 작품

<이집트의 스핑크스>

  










 


다크아이즈 2014-01-1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재앙을 능가한 재앙이 오이디푸스의 몫, 맞는 말이네요.
서재 올라오는 고전들을 정리, 분석하시다 보면 막 헛갈리실 것 같은데, 어쩜 그리 적재적소에 알맞는 얘기들을 배치하시는지... 오렌님이 전하는 고전이라, 이제 안 올라오면 서운해질지경이 되었어요.^^*
주말 알차게 보내시어요.

oren 2014-01-18 13:26   좋아요 0 | URL
팜므 님 반갑습니다. 저도 이번에 『시학』을 읽고 나서 '플롯'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았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는 말을 염두에 두면서 저도 '미약한 플롯'이나마 꾸며볼 궁리를 해 본 것이지요.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여러 비극작품들을 읽어보니 과연 '플롯'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겠더군요. 제가 『시학』에서 인상깊게 읽은 몇 대목을 이 비좁은 공간에 옹색하게나마 조금 덧보태 봅니다.

* * *

비극의 제1원리

그러므로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라도 아무렇게나 칠한 것은 흑백의 초상화만큼도 쾌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53쪽)


플롯의 구성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생물이든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물이든 간에 그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56∼57쪽)


전체와 부분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 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61쪽)

페크(pek0501) 2014-01-1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구경 하고 갑니다, 오렌 님...
그동안 글을 많이 올리셨군요.
천천히 구경하러 다시 와야겠어요. ^^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눴던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님의 필력을 많이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oren 2014-01-19 15:43   좋아요 0 | URL
페크 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쓴 글들은 마치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잔뜩 등에 떠메고 다니는 모양이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조차 얼마쯤 함께 '낑낑거려야 할 수고'를 부담시키지 못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니 한가할 때 힘이 좀 나시거든 쉬엄쉬엄 읽으셔도 좋아요. ㅎㅎ

기왕 댓글을 늘리기로 작정한 마당이니, 페크님께도 '대화 한 편'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면 어떨까 싶어요. 페크 님께서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글도 자주 많이 올려 주세요~

* * *

예끼, 이 사람. 그런 말 말게.

그래서 내가 말했네. "케팔레스 옹, 나는 연로하신 분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오. 우리는 그분들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마치 어쩌면 우리도 지나가야 할 길이 어떠한지, 거칠고 험한지, 아니면 쉽고 순탄한지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간 사람들한테서 배우듯이 말이오. 그대는 지금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이라고 말하는 그런 연세가 되신 만큼, 나는 무엇보다도 그대의 심경이 어떠하신지 듣고 싶어요. 산다는 것이 힘드신가요? 아니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케팔로스 옹이 말했네. "제우스에 맹세고, 내 심정이 어떠한지 그대에게 말하겠소,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또래의 늙은이들 몇 명과 가끔 모이곤 하는데, 옛 속담 그대로지요. 우리가 만나면 대부분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해요. 그들은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그리워하며, 연애하고 술 마시고 잔치에 참석하던 일 등등을 회상하지요. 그러다가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크나큰 상실로 여기고 화를 내곤 하지요. 그때는 잘 살았는데 지금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들 중 몇몇은 자기들이 늙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괄시받는다고 투덜대며, 그래서 온갖 참상이 다 노년 탓이라고 읊어대곤 하지요. 그러나 소크라테스 선생, 이들은 탓해서는 안 될 것을 탓하고 있는 듯해요. 그게 정말 노년 탓이라면, 나도 노년과 관련하여 똑같은 경험을 했을 테고, 다른 노인들도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겠지요. 그러나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을 나는 여럿 만났소. 예컨대 누가 시인 소포클레스에게 '소포클레스 선생, 그대의 성생활은 어떠시오? 그대는 아직도 여자와 동침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소포클레스 님은 '예끼, 이 사람. 그런 말 말게. 나는 거기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꼭 미쳐 날뛰는 포악한 주인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니까'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때도 그분의 대답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때 못지않게 그렇다고 생각하오. 노년이 되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런 감정들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아주 편해지니까요. 욕망들이 한풀 꺾여 귀찮게 조르기를 멈추면 소포클레스가 말한 그대로 우리는 미쳐 날뛰는 수많은 주인에게서 해방된다는 말이지요. 이 점에서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나 탓할 것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노년이 아니라 성격이라오, 소크라테스 선생. 사람 됨됨이가 반듯하고 자족할 줄 알면 노년도 가벼운 짐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소크라테스 선생, 노년뿐 아니라 젊음도 견디기가 힘들다오."
- 플라톤, 『국가』제1권

yamoo 2014-01-2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국가에 소포클레스의 내용이 나오는 줄은 첨 알았네요. 국가 읽은지가 10년도 넘으니까 세부적인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렌님 때문에 언제나 몰랐던 걸 아주 많이 알아 고맙습니다~^^

oren 2014-01-20 17:5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뒤늦게나마 이런 저런 고전이나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플라톤'을 가끔씩 혹은 자주 만나다 보니까 겨우 그 철학자의 낯을 이제 조금쯤 익힐까 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yamoo 님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 옛날에 그를 민낯으로 대뜸 만나러 갔다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말고는 그리 큰 소득을 얻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 또한 1981년에 철학개론 리포트를 쓸 요량으로 그의 책을 빌려 봤다가 1983년이 되어서야 그 책을 직접 사서 읽었었는데 쉽게 읽히는 '대화체'여서 고개를 끄덕이며 술술 읽었던 듯한데 그가 전하려고 했던 '끝도 모를 깊은 뜻'을 헤아리는 데는 정말 여러모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던 듯싶어요.

ssjo223 2014-04-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과제때문에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너무 유익하네요! 스핑크스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해주셨다면 좋았을텐데!
아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 들릴게요^^

oren 2014-04-14 15:29   좋아요 0 | URL
무슨 과제인지는 몰라도 유익하다고 하시니 그저 다행입니다.
아무튼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