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보라, 색이 바래가는 다채로운 숲을,
색조 위에 색조가 깊어가 세상이 온통
갈색으로 물드는 것을, 거무스름하고 암갈색,
그리고 희미하게 색이 바랜 녹색에서 숯처럼 검은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색깔로, 무리 지어 있는 나뭇잎들을.

 - 제임스 톰슨의『사계(The Seasons)』중「가을(Autumn)」

 * * *

(아래의 인용글들은『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에서 '따왔다'. 사진들은 어제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며 찍은 것들이다.)


한 해의 꽃, 한 해의 잘 익은 과일인 단풍

도시에 평생 살아서 이 계절에 시골로 와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아주 많은 사람들은 한 해의 꽃을, 아니 그보다는 한 해의 잘 익은 과일인 단풍을 결코 본 적이 없다. 그런 도시 사람과 말을 같이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최고로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에는 약 보름쯤 늦었지만, 단풍을 보고 깜짝 놀라며 더 아름다운 단풍이 있었다는 것을 믿으려 들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그는 이 같은 현상에 관해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읍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단풍을 보지 못했을 뿐더러 해가 지나면 대다수는 거의 기억조차 못한다.(178쪽)





 




마침내는 신화 속으로 편입될 것

아직도 여전히 새파란 다른 단풍나무들이나, 상록수를 배경으로 아주 밝은 선홍색을 발하며 홀로 서 있는 단풍나무 몇 그루는 전체 숲이 점점 물드는 것보다 더 인상적이다. 한 나무 전체가 숙성한 과즙이 꽉 찬 하나의 거대한 주홍색 열매 같고 가장 낮은 가지부터 가장 높은 꼭대기 가지까지 다 불타오르고 있을 때, 특히 태양을 마주해서 그것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풍경 속에서 어떤 물체가 더 두드러지겠는가? 몇 마일 밖에서도 다 보이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같은 현상이 딱 한 번만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승에 의해 후손에게 전해지고 마침내는 신화 속으로 편입될 것이다.(188쪽)





 




 








우리는 언제 빨갛게 되는 거야?

나뭇잎들은 그 나무에게 "우리는 언제 빨갛게 되는 거야?"라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바닷가나 산 혹은 호수로 서둘러 떠나는 여행의 계절인 9월에, 이 겸손한 단풍나무는 1인치도 움직이지 않고서도 그 명성대로 여행을 떠난다-그 언덕 사면으로 주홍색 깃발을 퍼뜨리는데 이는 그 나무가 다른 모든 나무들보다 먼저 여름의 과업을 끝내고서 이제 경쟁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가장 화려하게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아낼 수 없던 그 나무가 이제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 완숙의 빛깔로 그리고 자신의 홍조로 마침내 멀리 떨어져 있는 무관심한 여행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 사람의 생각을 먼지 나는 길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멋진 고독 속으로 이끈다.(189쪽)

 




 
















10월이 한 해의 해질녘 노을이라면

10월은 물든 나뭇잎들의 시절이다. 나뭇잎들이 화려하게 타오르는 색채가 온 세상에 반짝거린다. 과일과 나뭇잎 그리고 한 날도 지기 직전에 화려한 색을 띠는 것처럼, 한 해도 저물 때가 가까우면 화려한 색을 띤다. 10월이 한 해의 해질녘 노을이라면 11월은 더 늦은 황혼녘이다. (180쪽)





활활 타올라라!

활활 타올라라! 포탑에서 굽이치는 더러운 깃발들이 한 마을이 전시할 수 있는 색채 전부이어야 하겠는가? 계절을 알려줄 이런 나무들 없이는 마을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읍내 시계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 나무들이 없는 마을은 잘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드러날 것이다. 나사가 풀리고 중요한 부품이 빠져 있는 셈이다.(206쪽)









경치라는 순수한 자극제들이 있어야 한다

마을에는 우울과 미신을 막아줄 이처럼 밝고 기운을 돋우는 경치라는 순수한 자극제들이 있어야 한다. 나무로 활력을 얻으며 10월의 모든 광휘로 불타는 한 마을과 그저 허접스러운 쓰레기와 나무도 없는 황무지, 혹은 자살하는 데에 쓸 나무 한두 그루 밖에 없는 두 마을을 내게 보여다오. 그러면 나는 극도로 굶주리고 맹신적인 광신자와 가장 절망에 빠진 술주정뱅이가 후자의 마을에서 발견되리라고 확신한다. 모든 빨래통과 우유통 그리고 비석들이 다 드러날 것이다. 거주자들은 마치 바위들 사이 사막의 아랍인들처럼 갑작스럽게 곳간과 집 뒤로 사라질 터인데 그들 손에는 창이 들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가장 어리석고 비참한 교리-세상은 순식간에 멸망할 것이고 혹은 이미 멸망했다거나 혹은 그들은 스스로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마른 관절을 금 가게 하고서는 이를 영적인 교제라고 부를 것이다.(207쪽)






낙엽들은 우리에게 죽는 법을 가르친다

갓 떨어져서 빳빳하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덮인 바닥 위를 걷는 일은 즐겁다. 그 잎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자신들의 무덤으로 가는가! 얼마나 부드럽게 자신들을 눕혀 흙으로 돌아가는가? 수천 가지 색을 띠고 있어,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한 잠자리를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잎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가볍고 경쾌하게 무리 지어 간다. 어떤 상복도 입지 않고서, 자리를 고르고 지점을 선택하여 땅위로 즐겁고 재빠르게 떨어지는데, 철제 담장을 요구하거
나 그 일에 관해 온 숲에다 소곤거리지도 않는다. 어떤 나뭇잎들은 그 아래서 사람들의 시체가 썩어가는 지점을 선택해 중간쯤에서 시체들과 만나기도 한다. 무덤에 조용히 안식하기 전에 나뭇잎들은 얼마나 많이 팔락팔락하는가! 그렇게 높이 솟구쳤던 것들이 높은 곳에서 펄럭일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만족해하며 다시 흙으로 돌아오며,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나직이 누워 나무 발치 아래에서 썩어가며 제 동족의 새로운 세대에게 영양을 공급하려고 몸을 맡기는가! 낙엽들은 우리에게 죽는 법을 가르친다. 불멸에 대해 큰소리치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낙엽만큼 완숙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누울 날이 오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머리카락과 손톱을 버리듯 인디언 서머같이 고요하게 자신들의 육체도 벗어버릴 수 있을지 말이다.(200쪽)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혹은 얼마나 가까이 좁게 보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자연현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이런 이유로 인해 사는 동안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는 단지 자신의 정원만 본다.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공급은 수요에 응한다.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 풍경은 우리가 소중히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한 티끌의 더도 아니라-의 아름다움만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어떤 사람이 한 특정한 언덕 꼭대기에서 보게 될 실제 사물들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될 사물과는 바라보는 사람이 다른 것만큼 상이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 진홍참나무가 이미 당신 눈 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어떤 것을 볼 수 있다-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것은 거의 볼 수 없다.(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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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1-0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잎을 저리 찍으니, 다시 겸손해지네요... ^^
호수 공원에서도 찍으신거 맞나요, 맞나 아닌가 갸우뚱해지네요.
제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해요.

좋은 글과 사진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oren 2013-11-04 16:27   좋아요 0 | URL
연잎이 바싹 마른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낼 만큼 애처롭다 싶더군요.

사진들은 시간대별로 먼저 찍은 사진들부터 쭈욱 올렸는데, 앞부분 사진들은 제가 사는 동네 주변이구요, 연잎 풍경을 포함한 마지막 여섯 장은 오후에 '호수공원'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이 맞답니다.

마고님 말씀처럼 저 역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보는 풍경이 맨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해요. 어떨 땐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로 다 담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있고, 또 더러는 카메라에 달린 '단순한 눈'으로 바라볼 때가 더욱 아름답다 싶을 때도 있고요.

세실 2013-11-0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들이 '우리는 언제 빨갛게 되는거야....'하고 물어본다는 글이 참 예뻐서 상상해 봅니다.
소근 소근, 바스락 바스락!! ㅎㅎ
때로는 눈으로 보는 시선보다 앵글속 시선에 한참을 머물게 됩니다.
사진 참 좋아요!

oren 2013-11-05 10:27   좋아요 0 | URL
나무들이 소곤대는 '가을의 속삭임'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고 싶은 계절이에요.
소로의 말처럼 '특히 태양을 마주해서' 앵글 속에 들어오는 단풍을 바라보면 가끔씩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을 지경일 때도 있어요.

숲노래 2013-11-0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가을빛 한껏 누리셨네요.
앞으로 겨울이 오기까지
이 빛들
늘 곱게 누리셔요~

oren 2013-11-05 10:32   좋아요 0 | URL
이 아름다운 가을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수는 없겠지요. 나무들이 잎들을 다 떨구고 이제 홀가분한 기분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동안 우리는 다가올 추위 때문에 더욱 두터운 겨울옷들을 갖춰 입어야 되겠지요.

cyrus 2013-11-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만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아니라 가을에도 이런 붉으스름하게 변한 나뭇잎과 낙엽을 보더라도 여름 못지 않게 활활 타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지네요. 가을은 아늑하고, 고요스러운 느낌이 나서 좋아하는 계절이었는데 각양각색의 가을나무를 보게 되면, 꼭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

oren 2013-11-05 10:36   좋아요 0 | URL
가을에 온통 빨갛게 물든 단풍숲들을 보노라면 불이 붙었다 하더라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겠지요.
저마다 고운 빛깔을 맘껏 뽐내는 나무와 풀들이 이 계절을 얼마나 기다려 왔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프레이야 2013-11-0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수공원의 가을 풍경이군요. 사진 분위기에 풍경에취합니다. 저번달에 처음으로좋은벗들과 그곳엘 갔더랬지요. 십일월의 단풍은 시월의 그것과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더 깊어지는 달, 좋은날보내세요^^

oren 2013-11-05 10:42   좋아요 0 | URL
지난달에 호수공원에 오셨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따사롭고 싱그러운 가을 풍경들을 만끽하실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지난 주말의 단풍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깊어진 듯해서 저도 놀랐어요. 이제 고작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계절은 금새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지 않을까 싶어요. 황혼녘처럼 금새 사라질 늦가을, 프레이야님께서도 좋은 시간들 듬뿍 누리시길 바래요.

timeroad 2013-11-0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못에는 가을 옷을 입은 백조도 보이고 미운오리 새끼들이 더 많이 보이는 듯, 연꽃의 씨앗 하나하나를 보주(요의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기들이 집적된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걸까요, 머리가 무거워 물속에 머리를 들이민 풍경들, 보기 좋습니다. 연못에 연이 없어도 연못이라고 부릅니다. 참 이상하지요? 정말 오랜 만에 써보든 댓글입니다.

oren 2013-11-05 22:17   좋아요 0 | URL
연못에 연이 없어도 연못이군요. 참 이상하다 싶다가도, 연꽃이 때만 되면 언제든 또 피어날 테니 잠시 연꽃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걸 '연못'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싶기도 하네요.

onsangggochi 2013-11-1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아름다운 글들과 가울정취들!

oren 2013-11-15 12:11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셔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