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괴물이나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많이 그런 일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인가! 우리 손에 잡히는 대부분의 사물들에 관한 지식이라는 것은,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장님이 손으로 더듬듯 얼마나 컴컴한 구름 속을 거쳐서 잡게 되었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참으로 우리는 지식보다도 습관에 의해서 이런 일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도 보아 싫증이 나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빛나는 창공을 쳐다볼 생각도 않는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이런 사물들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더라면, 우리는 다른 어느 것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이런 일이 믿을 수 없이 보였을 것이다.

이제 이 사물이 처음으로 인간들 앞에 나타나서
마치 그것이 갑자기 그들 눈앞에 놓여졌다고 상상하라.
이보다 더 기적에 비할 만한 일이 있을까?

그것을 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루크레티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 * *

영화 <그래비티>를 본 탓일까?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그리 낯설지 않은 어느 가을날의 해 질 녘 모습이,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심연 속으로 자꾸만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갑자기 무중력의 공간에 내던져진 듯,
발 아래가 자꾸 허전하다.

중력이 우리를 지구 표면에 꼼짝없이 꽉 붙들어 매어 놓았는데,
왜 중력보다 더한 어떤 힘이 있어 우리를 단 한 순간만이라도 멈추게 하지는 못할까?


 


Shooting Date/Time 2013-10-21 오후 5: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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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oting Date/Time 2013-10-21 오후 5:40:29



 * * *

 

대지·태양·달·바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단일하기는커녕 반대로 무한수로 존재한다.                            (루크레티우스)



 

만일 우주가 여럿 있다면

그런데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등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생각한 바와 같이, 만일 우주가 여럿 있다면 그 진리와 규칙들이 다른 우주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인지 누가 알 일인가? 다른 우주들은 아마도 다른 모습과 제도를 가졌을 것이다.



 

극히 짦은 한 중단임에 불과한 이 순간을 가지고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명인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죽음인지 누가 아는가?      (에우리피데스)

그것도 그럴듯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우리가 이 영원한 밤의 무한한 흐름 속의 한 섬광이며, 우리에게 영원히 계속되는 자연 조건의 극히 짧은 한 중단임에 불과한 이 순간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자격을 얻을 것인가? 죽음은 이 순간의 앞과 뒤의 전부와, 이 순간 자체의 상당한 부분까지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자들은 멜리소소의 추종자들처럼 운동이라는 것은 없으며,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왜냐하면 이 우주가 하나밖에 없다면, 플라톤이 말하는 천체의 움직임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움직임도 여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자연에는 생산도 부패도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히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출생한 일이 결코 없었고, 영원히 끝이 없을 것이며, 시간이 그것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는 일이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 움직이는 사물이며, 항상 그림자같이 나타나고, 그 재료는 항상 흐르며 유동하고, 안정해서 머무른다든지 항구적인 것이 없고, 그것에 '전에', '뒤에', '있었던 것', '있을 것'이라는 말이 해당되는 것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닌 것을 단번에 보여 준다. 왜냐하면 아직 존재로 있지 않은 것, 또는 이미 존재로 있기를 멈춘 것을 존재한다고 말함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고, 아주 확실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그것으로 시간의 이해를 세우며 유지하는 것같이 보이는 '현재'·'순간'·'지금' 같은 말로 말하면, 이성은 그것을 발견하며, 당장에 그것을 부숴 버린다.

이성은 즉석에 그것을 쳐서 미래와 과거로 갈라 버린다. 마치 필연적으로 둘로 갈라 놓고 보려는 식이다. 자연을 측량하는 시간에서와 같이, 측량당하는 자연에게도 일은 마찬가지로 되어 간다. 자신에게도 머무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지속되는 것도 없고, 그 반대로 거기서 모든 사물들이 출생되었거나, 출생하고 있거나,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치가 그러하니 단 하나 존재하는 신을 가지고, 그가 전에 있었다든가 장차 있으리라고 말하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지속할 수 없거나 존재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의 변화·통과·변천 등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신 혼자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어느 시간의 척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겪을 수 없고 움직임이 없으며, 시간으로 측량되지 않고, 어떤 쇠퇴도 당할 수 없는 영원성에 따라서 존재한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뒤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더 새롭다는 것도 최근의 일이라는 것도 없고, 단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유일한 '지금'을 가지고 영속을 채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는 있었다'라거나, '그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이, 그 신 하나밖에는 진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지어야만 할 일이다.

"만일 인간이 인간성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오, 인간이란 얼마나 비굴하고 더러운 사물인가!" (세네카)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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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10-2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가 아름다운 무한수의 자연 풍경을 실제와 똑같은 사진을 봤다면 엄청 놀라고, 흥분했을겁니다.

oren 2013-10-23 20:02   좋아요 0 | URL
cyrus님 덕분에 제가 잘 몰랐던 화가인 프리드리히라는 인물이 그린 그림을 여러 점 살펴볼 수 있었네요.

그의 그림을 보고 난 뒤에 '그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감성이 미묘한 전이를 겪는 시간, 새벽과 석양이 주를 이루고······' 라는 설명글을 나중에 읽어 보니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저같은 사람도 조금쯤은 그의 그림을 이해할 만하다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숲노래 2013-10-2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날 노을은
다른 어느 철보다
빛깔이 짙고 냄새도 느낌도 훨씬 보드랍구나 싶어요.
이런 가을날에
저녁빛을 놓칠 수 없겠지요~

oren 2013-10-24 10:10   좋아요 0 | URL
철마다 해 뜰 무렵과 해 질 녘 모습이 그만큼 다르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세실 2013-10-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했습니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데 정작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오늘 저녁 석양은 잊지 말고 봐야겠습니다.

oren 2013-10-28 11:13   좋아요 0 | URL
날씨가 차츰 아침 저녁으로 추위를 느낄 만큼 변해 가면서 따뜻한 저녁 노을을 볼 날도 그리 많지 않을 듯싶어요. 깊어가는 가을, 좋은 풍경들 자주 마주하시길 바랄께요~

transient-guest 2013-10-2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의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서 소중함을 보는 oren님의 비전이 참 좋습니다. 올려주신 사진은 계속 봐도 질리지가 않네요.

oren 2013-10-28 11:16   좋아요 0 | URL
나이를 먹을수록 주위의 풍경들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또 자연은 언제나 조금도 사소하지 않고, 우리 인간들이 오히려 훨씬 더 사소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13-11-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롭게 산책하기엔 해질녘이 최고죠.
오렌 님도 해질녘을 좋아하시는 것 같군요.^^

oren 2013-11-01 15:19   좋아요 0 | URL
해가 저물 무렵이 하루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때가 아닌가 싶어요. 해가 뜰 때도 가끔 찬란하긴 하지만요.

yamoo 2013-11-0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크레티우스, 몽테뉴의 글들이 아름다운 석양 사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네요~
나중에 여행기 사진을 모아서 읽었던 책의 인용구를 이런 페이퍼 식으로 조합하면 좋은 책한권이 그냥 탈고될 거 같아요~^^

oren 2013-11-04 00:09   좋아요 0 | URL
yamoo님의 권고대로 '그렇게 쉽게 탈고되는' 책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책이 과연 한 권이라도 팔릴까 그게 걱정이지요.

몽테뉴의 말대로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 올리는' 그런 글을 단 한 줄만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책 한 권' 써 볼 욕심을 내어 볼텐데 말입니다.

* * *

그들의 언어는 지조 있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충만하며 벅차다. 그들은 꼬리뿐만 아니라 머리와 배와 다리 전부가 풍자시이다. 거기에는 억지가 없고 길게 잡아 늘린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태세로 진행된다. "그들의 사상은 남성적 미의 상징이다. 그들은 단지 말을 꾸며서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것은 가시 없는 무른 웅변이 아니고, 힘줄이 박히고 담담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보다는 채워서 황홀하게 하며 가장 강력한 정신들을 감복시킨다. 이러한 훌륭한 문체가 그렇게 생기있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말이 잘됐다고 하지 않고 생각이 잘됐다고 말한다.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올리는 것이다. "웅변을 만드는 것은 흉금이다."(뮌틸리아누스) 우리네는 속이 찬 개념들을 판단력이니 언어니 아름다운 문장이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묘사는 숙련된 문장력으로써 되는 일이 아니고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다. 갈루스는 단순하게 말한다. 그것은 그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호라티우스는 피상적인 표현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가 마음먹은 것을 말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물을 더 명확하게 더 멀리 내다본다. 그의 정신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말과 모양의 곳간 전체를 뒤져서 옭아내 온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예사로움을 벗어나므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언어가 필요하다. 그는 사물들을 통해서 라틴 말을 본 것이라고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 몽테뉴